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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사 - 5차 십자군 7






 14. 성 프란체스코 


 성 프란체스코는 사실 중세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인이자 수도승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들에게 친숙한 이 성인의 이름을 딴 도시로는 샌프란시스코가 (영어식 발음) 있으며 중세는 물론 근현대에 까지 수많은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또 성 프란체스코회 (프란체스코 수도회) 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도하는 성 프란체스코. 16 세기말 Cigoli 의 작품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in the United States, and those countries with a copyright term of life of the author plus 100 years or fewer. ) 


 그는 1181 년에서 1182 년 쯤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태어나 수도승이 된 이후에는 당대의 관습에 따라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 (한국 카톨릭 교회 표기) 로 불렸다. 하지만 본명은 지오바니 프란체스코 디 베르나도네 ( Giovanni Francesco di Bernardone ) 이다. 아버지인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인으로 아버지 덕에 그는 꽤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방탕하고 사치스런 생활 끝에 종교에서 구원을 얻고 다시 신앙인으로 거듭난 성 프란체스코는 모든 재산을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 이 때문에 아버지와 법정에서 재판까지 벌여야 했다 ) 누더기 같은 수도복 하나만을 가지고 유럽을 전전하며 자신의 신앙을 전파했다. 청빈과 결혼했다는 그의 선언처럼 그는 모든 재물을 거부하고 구걸을 통해 얻은 돈은 성당을 수리하는 데 사용했다. 


 당시의 사치스럽고 부패한 종교계의 타락에 염증을 느꼈던 많은 이들이 프란체스코 주변에 모여들면서 일종의 신앙 공동체가 생겨났는데 이를 작은 형제회라고 불렀고 각자 독립적인 조직으로 발전해 이를 1회 (작은 형제회, 꼰벤투왈 프란치스코회, 카푸친 작은 형제회), 2회 (클라라 수녀회), 3회 (수도 3회, 율수회, 재속 프란치스코회) 로 나누어 불렀다. 이들은 프란체스코 수도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성 프란체스코는 4차 십자군 시절 십자군에 직접 참전하려고 한 적도 있으나 오히려 여기서 계시를 받고 아시시로 돌아갔다고 한다. 사실 4차 십자군이 한 일을 생각해 보면 이런게 정말 신의 계시일 것이다. 덕분에 성 프란체스코는 그 명성에 큰 흠집이 날 일을 피한 셈이니까 말이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다미에타의 5차 십자군을 방문한 것은 아마도 두가지 목적이었을 것이다. 첫번째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성 프란체스코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이는 이교도는 악마 추종자라고 생각한 중세 시대의 다소 광신적인 분위기와는 달랐고 무엇보다 교황으로 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추기경 펠라기우스의 의견과는 상이하게 달랐다. 그러나 지금 관점에서보면 성 프란체스코야 말로 참된 종교인의 자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막대한 인명을 잃고도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추기경과는 달리 평화를 진정으로 원했다. 


 성 프란체스코의 두번째 의도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이슬람 원리 주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당시 이슬람 교도들은 이교도에게 훨씬 관대해서 수많은 토착 기독교 종파 및 기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슬림 군주 밑에서 살고 있었다. 사실 이들은 인두세를 바치는 주요 세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도 이들에게 로마 교황의 영향아래 놓이는 카톨릭 신앙을 전파한다는 것은 특히 십자군 전쟁 중임을 고려하면 웬만한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성 프란체스코가 행한 여러 기적 가운데 으뜸은 그가 이집트에서 무사히 살아 나와서 예루살렘 까지 순례했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연대기 작가들에 의하면 성 프란체스코는 직접 술탄 알 카밀과 면담을 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한가지 의문점은 동시대 아랍 연대기 기록에는 전혀 그의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아마도 여러 기록들을 조합하면 성 프란체스코가 면담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누더기를 걸치고 온 수도승을 본 알 카밀은 아마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술탄 알 카밀과 성 프란체스코. 후세의 신화 중 하나는 성 프란체스코가 알 카밀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불속에 뛰어들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진위 여부는 알기 힘들다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in the United States, and those countries with a copyright term of life of the author plus 100 years or fewer.  )


 복음을 전파하려던 성 프란체스코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아무튼 알 카밀은 다른 이유에서 평화가 간절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루살렘 뿐 아니라 베들레함과 나사렛 같은 주변 지역도 양도하겠다는 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 제안을 받은 펠라기우스는 더 기고만장해져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을 하는 이유가 그만큼 알 카밀이 궁지에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유럽에서 프리드리히 2세만 건너오면 이집트 정복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는 펠라기우스의 상상 때문에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거기에 펠라기우스는 이교도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펠라기우스를 비롯한 주전파의 의견에도 약간 일리는 있었다. 예루살렘만 돌려받아서는 예루살렘 왕국을 재건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안정적으로 성도 예루살렘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펠라기우스의 상상과는 달리 프리드리히 2세는 5차 십자군에 참전하지 않을 것이었으며 알 카밀 역시 그렇게 까지 궁지에 몰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15. 다미에타 함락 


 1219 년에 평화를 위한 마지막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시 지루한 다미에타 공방전이 이어졌다. 당시 이집트에는 기근에다 전염병 까지 돌아서 그때까지 남아있는 십자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들에게 한가지 다행인 점은 적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이미 수많은 생명을 무의미하게 잃었지만 펠라기우스의 지칠 줄 모르는 전쟁 수행 의지 때문에 잔존 십자군 병력은 아무튼 다미에타에 대한 최종공세를 시작했다. 그런데 1219 년 11월 4일 십자군이 다시 공세를 재개했을 때 그들은 다미에타의 견고한 요새가 거의 텅 빈 상태임을 알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정은 이랬다. 다미에타의 요새에는 아직도 많은 식수와 식량이 남아있고 일부 외각 지역이 점령당했어도 성채는 완전히 건재했다. 따라서 사실 수비할 사람만 있으면 요새는 1220 년까지 충분히 버틸만 했다. 그러나 수많은 십자군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 성안에도 돌기 시작하더니 결국 수비대 대부분이 쓰러질 정도로 유행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기와 식량이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방어에 성공할 수 없었다.


 아무튼 다미에타를 점령하는데 마침내 성공하자 십자군내의 묵은 갈등이 다시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다미에타 포위전에 가장 큰 공이 있는 장드 브리엔과 그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항상 주장해온 펠라기우스가 도시의 통치권을 두고 다툼을 벌인 것이다. 장 드 브리엔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고 자신이 예루살렘 국왕으로써 다미에타의 통치권을 가져야 한다고 좋게 말로 이야기했다.


 솔직히 항상 발목만 잡은 펠라기우스가 작은 도시 하나까지 자신이 다 가지려 들었기 때문에 여론이 매우 좋지 않았다. 결국 추기경은 다른 기사단이 모두 장 왕을 지지했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2세가 도착할 때 까지만 이란 단서를 달고 장 드 브리엔의 통치권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1218 년부터 거의 1년 반 남짓해서 얻은 것은 다미에타 항 하나 뿐이었다. 그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반환하겠다는 협상을 두번이나 거부하고 얻은 전리품 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그래서 이제 잔존한 십자군 - 펠라기우스는 말할 것도 없고 장드 브리엔과 주요 기사단들 - 은 지금까지 희생의 댓가로 더 큰 것을 원할 만 했다. 따라서 이집트 정복을 위해 내륙으로 진격하는 일이 이 재앙같은 5차 십자군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 도시가 카이로 까지 가는 관문이라고 해도 그때까지 희생이 엄청나게 컸는데다 모두들 내심 프리히드리 2세가 대군을 이끌고 오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일단 십자군은 다미에타에서 더 진격해 들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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