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학자금 대출 부채 위기 (student loan debt crisis)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역시 대학 등록금이 경제 성장율이나 물가 상승율 보다 훨씬 높습니다. 지난 30 년간 물가 상승율로 보정했을 때도 미국 사립대 등록금은 3.68 배 상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기부금과 연방 및 주 자금이 대학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결국 여전히 학생들이 많은 등록금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는 건 앞서 설명한 대로입니다.
현재 미국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student loan) 총액은 거의 1조 달러 수준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연방 자금으로 주는 대출이든 아니면 사적 금융에서 조달한 것이든 간에 이 액수는 사실 한국의 전체 가계 부채 보다 더 많은 액수입니다. 이에 대해 학자금 대출 부채 시계 (Student loan debt clock) 를 제공하고 있는 FinAid 에 의하면 추정된 미국 대학 학자금 대출 총액은 이글을 쓰는 시점에서 9656 억 달러 입니다. 한화로 1000 조원이 넘는 천문학 적인 액수인 셈입니다.
2000 년 6월 당시 졸업생들의 미국 학자금 대출 규모는 1983 억 달러 수준이었으나 9 년 후에는 8329.9 억 달러로 9 년만에 4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와 같은 증가 추세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의 경제 성장율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액수입니다.
오늘날 전체 대학 졸업생의 2/3 가 대학 학자금 대출을 지닌채 사회문을 두드리고 있고 대학 등록금을 대신 내줄 수 있을 만한 부모님이나 혹은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은 꽤 축복 받은 그룹에 속합니다. 초창기 대학 학자금 제도가 도입됐을 당시엔 돈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늘리고 내가 교육받는데 쓰인 돈의 일부는 내힘으로 갚는다는 긍정적인 기능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1조 달러에 육박한 대학 대출금 부실 문제가 미국의 주요 사회문제로 등장했습니다.
사실 문제는 학자금 대출 제도라기 보다는 통제할 수 없이 급증하는 대학 등록금입니다. 대학 교육이 공공제라는 개념으로 무상이나 비교적 저렴한 교육이 가능한 유럽 복지 국가에서는 대학이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정부에서 가격 통제가 가능하지만 미국 처럼 사립대가 많고 대부분 정부의 간섭없이 운영되는 경우 정부에서 가격인상을 직접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립 및 공립대의 실질 등록금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사립대 등록금은 살인적으로 높아진 것입니다. (한국은 희안하게 공립대 등록금이 사립대를 추격하는 구조)
교육 역시 의료처럼 필수적인 우등재로 기본적으로 더 우수한 것을 누리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공공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서비스는 서비스를 받는 쪽이 고객으로 우대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비스를 꼭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따라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 가격을 부담없이 올릴 수 있어 경쟁에 의해 가격인하가 잘 발생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이 사실은 5000 개의 대학이 있다는 미국이나 전체의 80% 가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 모두 등록금이 비싸다는 데서 증명합니다. 공급은 넘처나는데도 가격인하는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시장 원리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반증입니다.
아무튼 이 문제가 올해 미국에서 더 심각하게 부각된 것은 이미 부채 총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해서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측면도 있지만 더 나아가 경제 위기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올해 월스트리트점령 시위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막대한 빚을 졌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학자금 대출 부채 자체도 많지만 이걸 갚을 수 있게 취직을 할 수 없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 집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될 즈음 미국의 실업율은 9% 였고 1400 만명에 달하는 미국인이 직장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은 많은 학생들이 막대한 빚을 지고 졸업했는데 이를 갚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항상 수백만명에 이르는 대학생 졸업생이 이런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분노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슈중에 하나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미국의 학자금 대출 문제나 혹은 한국의 대학 등록금 문제가 결코 불황 때문에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 등록금 인상 속도가 경제 성장율과 물가 상승율을 훨씬 앞질러 버렸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것을 그냥 손놓고 보고만 있기로 결정한 것과 같아서 시장 자율에 의한 가격 통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소득 증가율 보다 등록금 증가율이 훨씬 높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부담할 수 있는 한계 수준에 도달할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못견디겠다는 저항과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올해 발생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나 기타 대학생 부채 문제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은 미국은 장학금이나 기부금이 많아서 대학 등록금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게 해줍니다. 만약에 그래도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면 차라리 구글에서 Student loan debt crisis 로 검색해서 영문 기사를 검색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 문제에 대해서 간단한 해결책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 (주로 대학측) 의 주장처럼 대학 등록금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기부금이나 정부 지원금이 이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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