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이슈는 올해 한국에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솔직히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부터 이런 식으로 등록금 오르면 언젠간 연간 등록금 1000 만원 시대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있던 시절부터 대학 등록금 인상은 항상 물가 상승율의 몇배나 되었고 이런 상황은 대학 자율화 시기 이후 부터 대학들의 자율성이 (?) 강화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어 상당수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등록금을 울며 겨자먹기로 내가며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시절에 듣던 이야기 중에 하나는 "미국은 대학 등록금이 더 비싸지만 기부금이나 장학금이 많아서 괜찮다. 우리도 기부금을 늘려야 한다 " (그리고 더 나아가 기여 입학제도 도입해야 한다) 이야기 였습니다.
사실 저는 미국 유학도 다녀본 적 없고 한국 대학 등록금만도 비싼 상태에서 해외 유학 따위를 할만한 재력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한국에서 그려려니 하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내용 중에 상당수는 사실이 아닌 걸 알게 되었죠. 앞서 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올해 가을 세상을 놀라게 만든 분노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미국의 높은 대학 등록금과 이로 인한 막대한 학자금 대출입니다. 미국 역시 지난 수십년간 대학 등록금 상승율이 물가 상승율의 몇배에 달했고 그 결과 지금은 세계에서 대학 등록금이 제일 비싼 나라가 되었습니다. GDP 를 감안해도 미국의 등록금은 세계 최고입니다. (한국이 그 뒤를 쫓고 있지만 아직은 넘기 힘든 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당시 한 학생이 자신이 2만 5천 달러의 학자금 대출이 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학 등록금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면 이 청년은 뭘까요.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얼굴을 일부 가림 CCL 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시 저자 David Shankbone )
이와 같이 과도한 대학 등록금과 미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학 진학율 (약 50%) 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문제는 바로 늘어나는 학자금 대출(Student loan) 로 이제 미국 사회에서도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들어 연방정부의 권한이 막강해 졌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인 전국민 의료 보험이 아직도 미국에서는 잘 도입되지 않고 거대한 민간 보험이 존재합니다. 의료와 더불어 대표적 공공재로 인식되는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등록금의 막대한 재원이 일부 한국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장학금이나 기부금, 정부 및 주 보조금으로 다 충당될 순 없습니다.
일단 저는 대학 기부금 문제가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이야기 하고 그 다음 미국의 심각한 학자금 대출 문제를 말해 보겠습니다.
1. 대학 기부금과 등록금 문제
한국에는 대학이 많이 존재하고 각 학교들의 재정상태가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수천억원의 사립 재단 적립금이 있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적립금이 거의 0 원에 가까운 대학이 존재합니다. 이 점은 대학이 더 많은 미국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사립 명문 대학들은 재정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적립금이나 기부금도 꽤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등록금이 저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장학금 혜택이 상당한 점은 사실입니다.
2010 - 2011 년 미국 사립대학 등록금은 연간 평균 28500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교재비, 기숙사비 등 부대 비용 제외한 금액, 통계자료에 따라서는 이걸 포함하기도 하기 때문에 기사에 따라 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함) 하지만 세계에서 역대 기부 적립금이 가장 많은 대학인 하버드 대학의 경우 명목 등록금이 평균 연간 42000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참고로 CNBC 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싼 대학은 Sarah Lawrence College 로 56500 달러 였습니다.
미국 대학들이 받는 기부금 액수 자체는 매년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누적된 기부금 펀드 (Endowment Fund) 규모로 보면 (2010년 기준) 1위는 하버드 (276 억 달러), 2위 예일 (167 억 달러), 3위 프린스턴 (144억 달러) 입니다.
미국에는 수천개의 대학이 있고 이들 가운데는 기부금은 거의 엄두도 못내는 마이너 학교들이 있는 반면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엄청난 기부금 적립 펀드를 가지고 있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대개 대학에 대한 기부금은 특정 학교, 특히 명문대에 많이 몰리는데 이것은 사회에서 성공한 동문 선배를 많이 배출한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또 기부자도 자신이 기부한 돈을 확실한 곳에 주고 싶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부금은 특정 대학에 몰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부금이 대학 등록금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든 대학들이 그 혜택을 볼 수도 없고 실제 기부금이 많은 대학들이라고 해서 그 기부금을 모두 학생들의 장학금이나 기타 혜택으로 돌리지는 않습니다. 대학들도 연구 투자나 기타 시설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부금에 등록금도 더 받으려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참고로 한국에서 2010 년 기부금 1위는 고려대였고 2위는 연세대 였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한국에서 등록금이 1,2 위로 저렴하진 않았습니다. 사실 이들의 실질 등록금은 중간 정도 입니다. 2010 년 한국내 93 개 대학의 실질 등록금 (명목 등록금 - 장학금) 순위는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2292496 )
미국의 대학 관련 및 등록금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CollegeBoard ( http://www.collegeboard.com ) 에 의하면 2011 년 현재 4년제 공립 대학의 대학 등록금 (College Tuition and fees) 은 주 내에서 교육 받는 학생 (In state student) 의 경우 8244 달러, 주 밖에서 온 학생 (Out state student) 의 경우엔 12526 달러 입니다. (연평균)
이 정도는 한국보다 아주 비싼 등록금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공립대 보다 더 많은 미국 내 4 년제 사립대의 연평균 등록금은 28500 달러 입니다. 유럽 대학들의 값싼 등록금에 비교하면 확실히 입이 벌어지는 수준의 등록금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미 공립(주립) 및 사립대 등록금은 명목 등록금 (Published tuition and fees) 으로 여기에 이런 저런 부대 비용 (교재비, 기숙사비 및 교육받는데 필요한 기타 비용) 은 더 비쌉니다.
그렇다면 실제 등록금 부담 (Net Tuition and fees) 는 얼마일까요. 미국의 경우 학생에 대한 장학금, 재정 보조금, 주 및 연방 보조금 등이 2010 - 2011 년 학기에 1780 억 달러나 지금되었습니다. 그런 막대한 액수가 도입된 결과 미국 대학생들도 등록금이 반값 (?) 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클릭하면 원본. 11-12 년 학기에 4년제 공립의 실질 등록금은 2490 달러, 4년제 사립은 12970 달러가 된 것을 알 수 있음 )
(인플레율을 감안했을 때 30 년간 대학 명목 등록금 인상 속도. 물가 상승율로 조정해도 사립대 등록금이 3.68 배 증가됨. 이는 미국 대학 등록금 역시 한국처럼 거의 자율화 되어 있어 매년 물가 상승율과 경제 상승율을 넘어서는 속도로 늘어났기 때문. 이와 비슷한 양상을 대학 자율화 이후 한국에서 볼 수 있음. 참고로 1978 년 이후 미 대학 등록금은 명목상 900% 증가)
여전히 부대 비용을 합치면 그래도 꽤 비싸긴 하지만 실질 등록금은 제법 내려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일단 본래 비용이 비싼데다 사립 대학들이 많아서 많은 학생들이 4년간 실질 등록금만 5만 달러이고 대게 매년 경제 성장율이나 물가 상승율을 뛰어넘는 등록금 상승율을 보이고 있어서 나머지 부대 비용 (주로는 주거 비용)을 합치면 어쩔 수 없이 졸업때까지 5 - 10만 달러 정도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장학금이나 기부금이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덜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런 기부금이나 장학금은 일부 대학과 학생에 편중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실제 명목 등록금에 근접하는 비용을 실제로 부담해야 합니다.
그러면 대체 이 막대한 비용 (한화 5000 만원에서 1억에 달하는 비용) 을 과연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만약 부모님이 이 등록금을 대주지 않는다면 결국 학생들이 전액이나 일부를 학자금 대출 (Student loan) 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학자금 대출이 꽤 일반적입니다. 일단 개인의 성공은 개인의 책임이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는게 미국의 덕목인 점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일은 당연해 보입니다. 또 교육의 직접적 수혜자인 대학생이 100% 는 아니지만 일부라도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게 합당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함정은 대학 등록금이 앞서 언급했듯이 물가 상승율은 물론 경제 성장율을 훨씬 앞서는 만큼 가면 갈수록 상식적으로 부담할 수 없을 만큼 이 부담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나중에 수혜를 받는다고 해도 언젠가 이런 식이면 학자금 대출을 10만 달러, 20만 달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미래 사회 초년생인 대학졸업자들은 엄청난 빚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도 대학 졸업자의 2/3 이 2만 4천달러의 빚을 지고 대학문을 나섭니다. 그리고 이 액수는 점차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정상일까요 ?
그리고 일부 한국 대학들이 주장하는데로 정말 대학들이 기부금 많이 받고 정부 보조금 받으면 등록금이 저렴해질 까요 ? 제 생각엔 그들이 하자고 할 때 보이는 미래가 바로 현재의 미국입니다. 왜냐하면 대학들의 평균 등록금 인상은 (비록 지난 수년간 정부에서 억제해서 크게 더 올리진 못했지만) 물가 상승율과 경제 성장율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뭔가 이 인상폭을 학생들이 상식적으로 부담이 가능할 선에서 억제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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