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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사 - 알비주아 십자군 1






 

 1. 카타리파의 등장 


 중세 시대 교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부패와 자정운동이다. 당시 교회는 큰 재산과 권력을 가지고 세속 사회에도 지대한 간섭을 하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세속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마는 속성이 있다. 막대한 재산을 사심없이 관리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모두가 계속 그럴 순 없는 법이고 결국 이와 같은 재산이 투명하고 공정하게만 관리될 순 없는게 세상사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세 시대 지금 같은 회계 감사가 있던 것도 아니고 성직자 선발 기준도 모호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교회 권력이 부패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이와 같은 교회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개혁운동에 뛰어들었다. 


 한편 중세 교회는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단일 신앙 체제를 이룩하고 있기는 했으나 교황의 명령이나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르려 하지 않는 이단들이 항상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앞서 언급한 교회의 부패를 질타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신자들의 영혼을 구제하지 못하는 당시 교회의 무능을 비판해서 큰 인기를 끈 인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단들은 12 세기 전까지는 주로 작은 집단에 불과했다. 12세기에 중세 사회가 좀 더 고도화 되고 도시와 교통이 발전하면서 이들 이단 종파들도 점점 그 크기가 커지게 된다. 그리고 교회와 영주가 지배하는 중세 사회에서 이들을 부양하면서도 이들로부터 외면받고 고통받은 농민들이나 혹은 새롭게 생겨난 도시 주민들이 기존의 종교 질서를 거부하고 이단 종파들을 지지하면서 점차 그 세력이 커졌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왈도파 (Waldensian) 과 카타리파 (Cathar) 였다. 알비주아 십자군의 무대가 되는 카타리파는 남서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이단 분파였다. 카타리파는 새로운 마을이나 도시화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이단 종파로 12세기 불가리아에서 유래한 보고밀파라는 이단 종파와 아르메니아의 바울파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났다. 


Cathar 는 그리스 어의 순수를 뜻하는  καθαρὀς = katharos 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들의 교리상의 특징은 영지주의 (靈智主義) 로 번역되는 그노시즘 (Gnosticism) 과 이원론 (Dualism) 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카타르파나 혹은 청정무구를 주장했다고 해서 청정파라고도 한다) 


 영지주의는 그리스어의 지식을 의미하는 단에서 나온 뜻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고 자신의 자아와 하나님 신성은 한가지라는 정통 교리에서는 인정받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교리는 삼위일체론이 정통으로 인정 받은 4세기 이후 이단으로 탄압받았지만 후세에 등장하는 이단 종파에서 가끔씩 다시 등장한다.


 이원론은 세상에 두가지 신. 즉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다고 믿는 것으로 이 물질적 세계와 속세의 권세는 렉스 문디 (Rex Mundi 라틴어로 세상의 왕이란 뜻) 라는 악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그가 육체와 권세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선한 신인 하느님은 순수한 영혼을 구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들은 이런 배경에서 육식이나 결혼, 재산소유를 배격하고 순수한 영혼의 구제를 믿는 엄격한 금욕주의가 특징이었다. 다만 대개의 기독교 교리에서 그러하듯 이들 사이에도 또 다시 분파가 있어 세부적인 교리는 이들마다 차이가 존재했다. 


 아무튼 이들은 교회 자체도 물질적 상징으로 여겼고 특히 화려한 로마 교회는 악의 신인 렉스 문디의 화신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이들을 매우 위험한 이단 교리로 간주했다. 1140년 이후 본격 조직화된 카타리파는 12 세기 후반 프랑스는 물론 북이탈리아와 서부 독일의 라인란트 지방까지 확산된다. 전성기 그들은 11개 주교구를 설치했다. 이에 긴장한 교황청은 카타리파 대책마련에 고심하게 되었다.    



 2. 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응 


 카타리파는 유럽 여러지역으로 확산되기는 했지만 가장 성공을 거둔 지역은 툴루즈를 포함하는 프랑스 남부의 랑그도크 지역이었다. 랑그도크는 남프랑스의 옛 지명으로 아래 지도의 지역을 포함한다. 



( 붉은 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랑그도크. 알비 (Albi) 시가 카타리파의 중심지였다.    CCL   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시   저자 Hardouin   ) 


 이 지역에서 카타리 파의 세력은 매우 커졌다. 특히 랑그도크의 도시인 알비 (Albi) 시는 이들의 중심지여서 카타리파는 다른 말로 알비주아 (Albigensian) 파라고 부르며 십자군에서는 알비주아 십자군이란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알비주아라고 불린 또 다른 이유는 교회가 이들을 이단으로 명시한 1176 년 칙령을 이 도시 근처에서 발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히 교회에서는 이 이단 종파를 척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대개 중세 이단 심판하면 생각하는 고문과 화형식 부터 시작한 건 아니었다. 1198 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Innocent III) 는 카톨릭 신앙으로 복귀하지 않는 신도들에게 우선 전도사 부터 파견해서 이들을 회유하도록 설득했다. 아직까지는 대규모 마녀 사냥이나 이단 심문관들이 이단들을 고문한 다음 화형장으로 보내지는 않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해결책은 아주 소수의 길잃은 양만을 정통 신앙으로 복귀시켰을 뿐이었다. 랑그도크 지방에서는 이 이단 종파가 꽤 자리잡아 귀족들까지 카타리파로 전향해서 이들을 전통 신앙으로 복귀시키기 쉽지 않았다. (가진것이 별로 없는 농노들이 아니라 귀족들까지 전향했을 정도면 카타리파가 당시 얼마나 큰 세력을 형성했는지 알 수 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현지 영주와 귀족들이 카타리파에 협조적이거나 카타리파였다는 사실이 의도치 않게 프랑스 왕실의 남부 정복의 단서가 된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황은 우선 카타리파 귀족들부터 파문했다. 그리고 카타리파 억제에 협조적이지 않은 영주들 역시 파문으로 위협했다. 당시 이 랑그도크를 비롯한 남부 프랑스지역은 아라곤 왕국과 툴루즈 백작령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의 툴루즈 백작은 레몽 6 세 (Raymond VI) 였다.  


 (레몽 6세의 조각상. 물론 후세의 상상도 이기 때문에 진짜 이렇게 생겼는지는 알 순 없지만 중세 프랑스 백작이라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긴한 조각상.  CCL 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지   저자   Guerin Nicolas )   


 레몽 6 세가 있던 당시의 랑그도크 지방은 프랑스의 일부이긴 하지만 워낙 카페 왕조의 영향력이 미약하던 시절이라 솔직히 남프랑스는 거의 독립 영주 국가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필립 2세 시절부터 프랑스 왕권이 서서히 강화되던 시절이라 레몽 6세는 자신의 영지에서의 권한을 지키고 세금을 피하기 위해 주변의 간섭을 매우 싫어했다. 


 우리가 중세 시대에 대해서 흔히 오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현대와 같이 고도로 중앙 집권화된 국가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이 착각은 세속 군주는 물론이고 교황에 대해서 마찬가지인데 사실 교황권이 절정이던 시절에도 모두가 교황 명령에 쉽게 복종한 것은 아니었다. 각지의 국왕이나 황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영주들도 교황에 대들던 시절이었다. 


 후세에 교황권에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던 인노켄티우스 3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가장 큰 적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해결되었지만 (이전 포스트 참조 http://blog.naver.com/jjy0501/100132239294  ) 그렇다고 다른 중세 군주들이 자신의 명령에 순한 양처럼 따랐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자신의 영지의 독립성을 침범하는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런 문제로 인노켄티우스 3세와 레몽 6세는 대립하게 된다. 레몽 6 세 자신이 카타리파였는지 아니면 단지 카타리 파에 동정적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교황의 간섭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교황은 이에 자신의 특사인 피에르 드 카스텔뇨 ( Pierre de Castelnau) 를 현지에 파견에 반항적인 영주들을 회유하고 이단을 개종하도록 명령했다. 


 툴루즈 백작 레몽 6세는 교황의 특사와 1208 년 1월에 면담했는데 둘 사이에는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리고 다음날 피에르 드 카스텔뇨가 암살되자 많은 이들이 레몽 6 세를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더 이상은 평화적 해결책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인노첸시오 3세는 이제까지 어느 교황도 한적이 없는 방법으로 이 이단들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것은 이단을 대상으로 하는 십자군의 조직이었다. 후세에 알비주아 십자군이라고 알려진 이 십자군은 결과적으로 남북 프랑스 귀족의 대립으로 변질된다. 처음에 이 십자군에 흥미를 느끼지 않던 프랑스 왕실은 결국 여기에 끼어들어 가장 큰 전리품을 챙기게 된다. 파문당한 툴루즈 백작 레몽 6 세 본인은 다시 교황에 복종하는 제스춰를 취해 먼 훗날 파문이 철회되긴 하지만 알비주아 십자군은 수십년간의 전화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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