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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드라큘라(2)





 2. 왈라키아의 등장  

 블라드 드라큘라는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루마니아의 애국자였다라는 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살았던 15세기엔 루마니아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명칭도 존재하지 않았다. 루마니아는 라틴어 로마누스(romanus)에서 비롯된 단어로 그 의미는 로마의 시민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기원은 16세기 르네상스 시절의 인문주의자들이 트랜실바니아, 왈라키아, 몰다비아 세 지역을 여행하면서 붙인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훗날 19세기에 이 지역의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오스만으로 부터 독립을 하면서 루마니아라는 명칭은 공식적인 국가명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드라큘라의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단어였다. 


(1600년경 왈라키아, 트랜실바니아, 몰다비아 지역.  The three Romanian principalities of Wallachia, Moldavia, and Transylvania in 1600. 


 그런데 로마에서는 한참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의 주민들이 로마 시민이라 불리게 된데는 그만한 역사적인 사정이 있다. 과거 구석기 시대는 물론 신석기 시대에도 루마니아 지역에는 물론 사람이 거주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로마 제국 시절이다. 

 106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Trajan)는 이 지역을 정복한 후 여기에 다키아 속주 (Dacia) 를 건설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과거 갈리아 속주와는 달리 로마 정복 이후 급속한 이민이 이뤄지게 된다. 다키아 속주의 풍요로운 토지를 찾아서 로마 제국 각지에서 65만에서 12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루마니아 주민들은 갖은 외세의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로마계 주민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 제국 시절의 다키아 속주. Roman province of Dacia, part of modern day Romania and Serbia, from the conquest of Trajan in 106 AD to the evacuation of the province in 271 AD. Roman settlements and legion garrisons with Latin names are included in the map, as well as the Costoboci, Carpi and Free Dacians. 

 로마 제국이 잘 나가던 시절 다뉴브강 너머의 다키아 속주는 풍요로운 토지를 지닌 행복한 동네였다. 사람들은 이를 행복한 다키아(DACIA FELIX)라 불렀지만 불행히도 행복은 영원할 순 없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로마 제국이 3세기 후반 점차 몰락하기 시작하자 다뉴브강 너머 지역까지 통치하긴 어렵다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서기 271년 이후 로마 제국은 이 지역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이후 고트족을 비롯한 북방 민족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 서기 332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고트족을 공격해 잠시 이 지역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로마 제국의 해체와 멸망이라는 시대적인 변화는 바꿀 수 없었다. 고트족의 지배 이후 이 지역은 훈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비잔틴 제국의 영향아래 놓이기도 했다. 

 중세 시기인 7세기 이후 왈라키아 지방 (즉 지금의 남부 루마니아)은 1차 불가리아 제국의 지배아래 놓이게 된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 불가리아 제국, 그리고 헝가리의 마자르족의 침입까지, 그 혼란스런 역사에서 왈라키아는 여러 통치자를 거치게 되다가 11세기 말 남부 러시아에서 건너온 쿠만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렇듯 왈라키아는 발칸 반도 중간에 위치하면서 접근이 용이한 평야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독립은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는 역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이어질 역사적 특징이기도 했다. 그런 왈라키아가 독립 세력을 이루게 되는 계기는 바로 몽골족의 유럽 침공이었다. 

 칭기즈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 칸은 주치의 둘째 아들인 바투에게 명해서 러시아와 그 서쪽 지역에 대한 대규모 원정을 실시했는데 이로 인해 사실상 러시아는 몽골 제국의 직간접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또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쿠만족 세력도 몰락하면서 왈라키아는 독립의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 1241년, 몽골족이 칸의 사후 분열된 것이 이들 세력이 몽골족의 지배에 놓이지 않게 하면서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몽골 제국의 13세기 진출 방향  Mongol Empire, 13th century. 


 동유럽의 주요 세력들이 몽골 제국에게 큰 피해를 입어 생긴 힘의 공백을 틈타 최초의 왈라키아 군주(voivodes)가 탄생한 것은 아마도 13세기 후반으로 생각된다. 왈라키아 평야 지역에 등장한 것은 사실 단일 왕국은 아니었고 몇개의 나눠진 작은 세력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이들이 하나로 세력을 뭉치기 시작한 것은 1270 년에서 1280년 사이로 보인다. 

 루마니아 연대기에서 왈라키아를 건국한 인물은 라두 네그루(Radu Negru  검은 라두라는 뜻)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헝가리의 침공을 막아내고 왈라키아를 건국했다고 한다. 그 시기는 1289년에서 1290년대 쯤이다. 다만 당시 왈라키아에 대한 기록 자체가 적어서 이 시기의 역사는 확실하지가 않다. 

 진정한 의미의 왈라키아의 시조는 바사라브 1세 (Basarab I the Founder 혹은 Basarab I the Great, Basarab cel Mare)이다. 그는 1310년에서 1352년 사이 왈라키아의 군주로써 첫번째 왈라키아 공(prince of Wallachia)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왈라키아는 외세의 간섭을 받게 된다. 

 왈라키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외세로는 당시 헝가리가 가장 큰 세력이었다. 당시의 헝가리는 지금의 크로아티아는 물론 루마니아 북부인 트랜실바니아까지 합친 대국으로 발칸 반도의 강국이었다. 1308년부터 1342년 헝가리를 지배한 찰스 1세 (Charles I of Hungary)는 올리가쉬(oligarch)로 알려진 대귀족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그 후 폴란드까지 지배한 루이 1세(Louis the Great)에게 든든한 기반을 마련했다. (루이 1세에 대해서는 이전에 이반 뇌제에서 잠시 설명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jjy0501/100178703924 ) 



(루이 1세 시절 폴란드와 헝가리를 지배하고 몰다비아, 왈라키아 등을 봉신으로 거느린 헝가리의 치세. 14세기 후반. 붉은 색은 직접 통치, 옅은 붉은 색은 봉신 관계 Between 1370-1382 Hungary was in a personal union with Poland (red territories). Louis's vassal (or dependent) territories are coloured coral pink. Sources: KNIGHT KINGS,THE ANJOU- AND SIGISMUND AGE IN HUNGARY (1301-1437), Encyclopaedia Humana Hungarica 03.,Budapest, 1997,) 

 현재의 헝가리를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14세기 헝가리는 동유럽의 강대국이었다. 그런 만큼 신생 왈라키아 왕국 역시 헝가리 국왕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바사라브 1세는 초기 헝가리 왕국의 제후로 있었다. 이런 역사가 바뀐 것은 1330년에 있었던 포사다 전투(Battle of Posada) 였다. 

 이 전투에서 헝가리 군대는 좁은 길을 지나다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왈라키아 군대에 참패를 당했다. 헝가리군의 수는 3만 정도였고 왈라키아 군의 숫자는 7000 에서 1만 정도였으므로 정면 대결을 했다면 패배가 어려웠던 상황이지만 바사라브 1세와 왈라키아 병사들은 지형을 이용한 전술로 큰 승리를 거두고 왈라키아의 독립을 지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헝가리는 강대국이고 왈라키아는 소국이었으므로 계속 적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다. 결국 그는 1344년 이후 다시 헝가리와 화해하고 손을 잡았다. 헝가리 역시 신성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라 왈라키아와 굳이 더 싸우려고 하지 않았기에 평화는 쉽게 달성될 수 있었다. 


 1352년 바사라브 1세는 아들인 니콜라스 알렉산더 (Nicholas Alexander)에게 군주의 자리를 물려주었으며 1364년 왈라키아 공위는 다시 블라디슬로프 1세(Vladislav I)로 넘어갔다. 블라디슬로프 1세는 다시 1377년에 동생인 라두 1세(Radu I)에게 공위를 물려줬다. 여기까지 바사라브 왕조(House of Basarab)는 그럭저럭 내분없이 잘 지내왔지만 이후가 문제가 된다. 


 라두 1세의 아들인 단 1세 (Dan I)는 1383년에 공위에 올랐다. 그리고 아마도 전쟁 중에 암살을 당한 듯 한데 이후 이복 동생인 미르세아 1세(Mircea I)가 1386년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군주의 자리에 오른 미르세아 1세는 대 미르세아(Mircea the Elder, Mircea cel Bătran) 라고 불리는데 그가 바로 블라드 드라큘라의 할아버지이다. 


(미르세아 1세 시절인 1390년 왈라키아의 영토.  Wallachia under Mircea cel Bătran, c. 1390


 그런데 문제는 단 1세에게도 아들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 1세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왈라키아 군주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왈라키아는 심각한 내분에 빠지게 된다. 미르세아 1세의 아들인 블라드 드라큘(Vlad Dracul, 블라드 2세) 계통의 바사라브 가문은 드라쿨레스티 (House of Drăculești) 로 불리웠고, 단 1세의 아들 이후의 계통은 다네스티(House of Dănești)라 명명되었는데 이 둘은 서로 하나인 왈라키아 군주 자리를 놓고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바사라브 가계도. DA라는 표시는 다네스티, DR은 드라쿨레스티.  클릭하면 원본. 출처: 위키)  


 그 자세한 과정까지 설명한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므로 이는 생략하고 아무튼 이로 인해 왈라키아 왕위는 싸워서 이기는 자가 돌아가면서 차지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 두 파벌이 서로 외세를 끌여들였다는 것이다. 결국 한 가문이 서를 죽이고 뺏앗는 과정에서 왈라키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속의 드라큘라는 인간의 피에 대한 갈증과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속의 인간들은 권력과 재물에 대한 갈증과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가공의 존재인 흡혈귀보다 실존하는 인간의 탐욕이 더 잔인하고 무서울 수 있다. 사실 왈라키아 내부의 권력 다툼 역시 그렇다는 것을 우리의 주인공인 블라드 드라큘라가 앞으로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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