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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드라큘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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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랬동안 역사 부분 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는데 물론 바쁘다는 핑게 때문입니다. 본래 주업(?)으로 삼는 IT 및 과학 부분 뉴스가 하루에 몇 개씩 포스트를 작성해도 모자랄 만큼 뉴스들이 넘처나는 것도 이유가 될 순 있겠죠. 아무튼 간에 나중에 가도 시간이 없기는 매한가지고 하려면 지금 안하면 나중에는 기회가 없겠단 생각이 들어 충분히 준비가 된 건 아니지만 역사속 ​드라큘라라는 주제로 연재 포스트를 작성해 볼 생각입니다. 시간에 쫓기면서 쓰는데다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의 글을 쓰게 되므로 일부 신뢰성 없는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연재 포스트의 주인공은 블라드 3세 혹은 블라드 드라큘라 (Vlad III, Prince of Wallachia, Vlad Dracula 혹은 Vlad Draculea)입니다. 블라드 체페쉬(Vlad Țepeș, Vlad the Impaler)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국내에는 소설 드라큘라에 영감을 준 인물이자 루마니아의 애국자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지에 대해서 한번 보기로 하죠. 편의상 경어는 생략하고 진행합니다. 





(블라드 체페쉬의 초상화. 작자 미상) 


 1. 드라큘라 이전의 세계 - 오스만 제국 


 블라드 드라큘라(정확하게는 드라큘라 혹은 드라큘레아라고 해야겠지만 여기서는 혼란을 없애기 위해 드라큘라로 통일)의 이야기를 하면서 루마니아도 아니고 갑자기 오스만 제국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뭔가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오스만, 왈라키아, 그리고 서방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면 블라드 드라큘라라는 인물을 성립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드라큘라 역시 당시 자신이 살았던 환경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주변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정말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을 하기 힘들 것이다. 


 드라큘라가 살았던 시절 그의 나라인 왈라키아에 가장 큰 위협은 오스만 제국이었다. 오스만의 팽창 정책을 길목에 그의 나라가 있었기에 그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되어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번째는 오스만 제국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비록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블라드가 선택한 길은 후자였다. 


 오스만 제국의 초기 역사는 사실 일부 전설이 섞여 있어 다소 불명확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1299년, 오스만 1 세라고도 불리는 오스만 가지(Osman Gazi)에 의해 세워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도 오스만은 그의 아버지의 죽음 이후 1280년대 부터 자신의 투르크계 부족을 이끌었던 것 같은데 당시 이들이 살았던 지금의 터키 일대는 혼란스런 상태였다. 

 이 지역의 혼란상의 기원은 만지케르트 전투 (Battle of Manzikert, 1071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비잔틴 제국 황제 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 (Romanus IV Diogenes)는 셀주크 투르크의 알프 아르슬란(Alp Arslan)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치명적인 패배를 당해 아나톨리아 고원 지대를 거의 대부분 적에게 내주게 된다. 

 하지만 이후 투르크계 부족들 역시 심각한 분열상을 보이면서 상호간의 전쟁과 내분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현재의 터키 중심 지역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주변부를 제외한다면 룸 술탄국 (Sultanate of Rum)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 룸 술탄국 역시 1300년을 전후로한 시기에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왜냐하면 13세기 중반에 몽골 제국에 대패하면서 세력이 쇠락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오스만 가지는 비잔틴 제국(이라기 보단 그 흔적에 가까운 국가) 에 가까운 위치에서 새롭게 발흥했다. 


(오스만 1세 시절 영토 확장. 


 1200년대 후반에는 룸 술탄국이 몰락해서 여기서 여러 부족들이 반 독립적인 국가를 건설했다. 아마도 오스만 가지 역시 1299년 쯤 해서 자신의 나라를 세웠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제대로 된 국가를 건설한 것은 오스만 1세의 아들 오르한 1세(Orhan Gazi)이다. 그는 1326년 이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의 부족을 통솔했는데, 이해에 비잔틴의 도시인 부르사(Bursa)를 손에 넣고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로 삼았다. 


 오르한 1세는 빠른 속도로 영토를 확장했는데 이중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압박해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던 니케아(Nicaea, 터키명 이즈니크)를 1331년에 정복하고 다시 니코메디아(Nicomedia, 터키명 이즈미트)를 1337년에 정복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유럽쪽의 교두보까지 마련했는데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갈리폴리(겔리볼루) 점령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오르한 1세 시절 영토 확장.

 1360년 오르한 1세를 이은 무라드 1세 (Murad I)는 유럽쪽으로 더 크게 파고 들어가 장차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3 대륙에 걸치는 대제국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1383년 오스만의 정예부대인 예니체리를 설립한 것은 물론 수도를 새로 정복한 아드리아노플(Adrianople, 터키명 에디르네 Edirne)로 옮겨 점차 발칸반도로의 확장을 진행했다. 이미 비잔틴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속국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무라드 1세의 영토 확장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오스만 제국에도 어려움이 닥친다. 1389년 무라드 1세를 이은 술탄 바예지드 1세(Bayezid I)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유럽과 아시아 양쪽으로 영토를 확장해서 '번개(이을드름, Yıldırım)이라는 별명을 가진 군주였다. 하지만 하필이면 당시 티무르가 오스만 제국을 침공해 바예지드 1세를 사로잡고 제국을 산산조각내 버린다. (1402년) 


 이후 오스만 제국은 대혼란에 빠져 다시 회복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1402년에서 1413년 사이 바예지드 1세의 네 아들은 서로 전쟁을 벌였는데 결국 승리한 것은 메흐메트 1세(Mehmet I)이다. 메흐메트 1세의 아들인 무라드 2세(Murad II)는 뛰어난 군인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 여러 차례 승리해 오스만 제국의 기틀을 다시 잡았다. 


 특히 무라드 2세는 발칸 반도 중심까지 침공해 오스만 제국의 북진을 막기 위한 범유럽 십자군을 바르나 전투(Battle of Varna)에서 격파하고 (1444년)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의 우위를 다시 확립했다. 물론 왈라키아에 대한 우위 역시 변함이 없었다. 우리의 주인공인 블라드 드라큘라의 운명 역시 변함이 없었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오스만 제국의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드라큘라의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라드 2세의 뒤를 이을 메흐메트 2세(Mehmed II) 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정복자이자 블라드 드라큘라의 숙적인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본론으로 넘어가 계속할 것이다. 이제 다음 이야기는 드라큘라의 나라인 왈라키아(Wallachia)와 그 주변국에 대한 내용이다. 


 다음 이야기  http://blog.naver.com/jjy0501/220236637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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