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류 가운데서 붉은 고기(red meat)라고 불리는 소고기, 돼지고기는 맛있기는 하지만 많이 먹는 경우 암의 발생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를 들어 대장암과 대장 용종의 발생률은 육류 섭취와 연관성을 보입니다. 여러 역학 연구를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연구자들이 왜 그런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직 그 메카니즘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미 국립 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는 과거부터 고기속 암 유발 물질로 알려진 Neu5Gc(N-Glycolylneuraminic acid)가 어떤 경로를 통해 암을 유발할 수 있는지를 검증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Neu5Gc의 분자 구조. 출처: wikipedia)
Neu5Gc는 시알산(Sialic acid)의 하나로 아미노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에서 흔하게 발견됩니다. 인간의 경우 이 물질을 만드는데 필요한 CMAH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서 이 물질을 생성하지 못하는 대신 이와 유사한 물질인 Neu5Ac(N-acetylneuraminic acid)을 더 많이 만듭니다. 왜 그런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면역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그럴 듯 합니다.
Neu5Gc를 비롯한 성분들은 병원체가 들러붙는데 필요한 타겟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가 인체에 침투해서 표적 장기에 붙으려면 뭔가 결합해줄 물질이 필요한데 Neu5Gc에 달라 붙는 물질을 표면에 가지고 있다면 더 편리하겠죠.
인류의 조상은 대략 300만년 전쯤 이 물질을 더 생산하지 않게 된 것 같은데, 인류의 조상이 회피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병원체는 아마도 말라리아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말라리아 원충 역시 같이 진화를 해서 오늘날의 말라리아 원충들은 Neu5Gc가 없어도 개의치 않고 인간 적혈구에 침투하지만, 과거에는 꽤 쓸만했던 전략이었는지 현재 우리는 모두 이 물질을 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물질이라곤 해도 우리가 이 물질에 노출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포유동물의 고기를 섭취할 때 우리는 이 물질을 몸으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소고기나 돼지 고기를 먹을 때 체내에 흡수되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인체의 면역 시스템은 우리 몸안에서 합성되지 않는 이 물질을 이물질로 파악하고 여기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면역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면역 반응이 각종 염증 반응을 유발해서 암, 동맹경화, 2형 당뇨병들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캘리포니아 대학의 아지트 바르키 교수(Ajit Varki, MD, Distinguished Professor of Medicine and Cellular and Molecular Medicine and member of the UC San Diego Moores Cancer Center)와 그의 동료들은 동물 모델을 통해 Neu5Gc의 염증 가설이 옳은지 검증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것은 유전자를 조작해서 Neu5Gc를 체내에서 만들지 못하게 한 실험용 쥐입니다. 이 쥐에게 Neu5Gc를 먹인 결과 실제로 염증 반응이 유도되면서 암의 발생률이 최대 5배까지 증가했으며, 동시에 암 조직에서 Neu5Gc 의 농도도 높게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 연구는 Neu5Gc 의 면역 반응이 암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기존의 가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과하면 좋을 건 없겠죠. 소고기나 돼지고기 모두 좋은 음식이지만 이를 과량 섭취할 경우 원치 않는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동시에 균형잡힌 식단을 가진 사람은 암은 물론 각종 질환의 발생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편식하지 않는 식습관이 가장 좋은 것이죠.
Journal Reference:
- Annie N. Samraj, Oliver M. T. Pearce, Heinz Läubli, Alyssa N. Crittenden, Anne K. Bergfeld, Kalyan Banda, Christopher J. Gregg, Andrea E. Bingman, Patrick Secrest, Sandra L. Diaz, Nissi M. Varki, and Ajit Varki. A red meat-derived glycan promotes inflammation and cancer progression. PNAS, December 2014 DOI: 10.1073/pnas.14175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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