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외계 행성은 진지한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아닌 상상과 추정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자신있게 외계 행성의 존재는 물론 크기, 위치, 질량, 공전 주기 등의 정보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 우리의 기술 수준에서 외계 행성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예를 들어 과연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서로 쌍성계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이론적으론 가능하겠지만 실제 관측 사례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애리조나 투손에서 열린 미 천문학회 행성과학 부분 회의에서는 지구와 비슷한 두개의 행성이 쌍성계를 이룰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 같은 외계 행성이 있는데, 아주 가까운 거리 (지구 - 달 거리) 에 또 그 정도 크기 행성이 있어 서로의 질량 중심을 공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이 행성들은 태양과 비슷한 모행성 주위를 공전할 것입니다.
(두 행성이 서로 공전하는 모습의 상상도 )
사실 이는 매우 복잡한 운동입니다. 태양계에서 여기에 가장 근접한 천체는 바로 명왕성과 카론입니다. 명왕성은 카론의 두배 정도 지름이 크고 8 배 정도 무겁습니다. 이 둘의 질량 중심점은 태양계 대형 천체 중에서 유일하게 명왕성과 카론 사이에 존재합니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지구 같은 행성 두개가 근접한 거리에서 안정적으로 서로의 질량 중심을 공전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성과 인접한 행성처럼 중력을 행사하는 다른 천체들 때문에 궤도가 흐트러지기 쉽고 결국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이런 천체들이 존재하려면 적어도 지구 - 태양 거리의 0.5 배 밖에서 모항성을 공전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행성 생성의 문제입니다.
만약 비슷한 공전 궤도에서 유사한 크기의 행성들이 탄생한다면 가장 가능성 높은 귀결은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구 초기 역사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이론상의 행성은 테이아(Theia)라고 불리는데 초기 지구와 충돌한 후 새로운 지구를 탄생시켰으며 남는 물질은 주변에서 뭉쳐서 달을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명왕성과 카론 역시 비슷한 원리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시뮬레이션 모델을 통해서 만약 두 행성이 스치듯이 고속으로 충돌할 경우 극적으로 살아남아 사이좋게 공전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Smoothed Particle Hydrodynamics (SPH) 라는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충돌 각도와 속도 등의 변수를 다양하게 조절해서 테스트를 하면 우주 어딘가 두개의 지구 같은 행성이 사이좋게 공전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지구형 쌍성계 (binary terrestrial planets)은 관측에 의한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는 순수한 이론적 존재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점은 외계 행성이나 블랙홀도 한 때 마찬가지였죠. 언젠가 우리의 관측 기술이 진보하면 실제로 그 사례들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부터는 상상지만 만약 이런 행성이 있다면 한 행성에서 탄생한 지적 문명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 매우 쉬울 지도 모릅니다. 바로 옆에 새로운 생활의 터전이 마련될 수 있으니까요. 아마도 이 행성들에서는 상대방이 우리의 달보다 몇 배나 크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귀결로써 밀물과 썰물, 조수 간만의 차이가 지구보다 몇 배 더 클지도 모릅니다. 재미있는 상상이긴 한데 과연 실제 사례를 찾을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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