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전 당시 영국 역시 괴상한 무기들을 다수 개발했는데 이 중에는 오늘날 생각하면 꽤 엽기적인 것 들도 존재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독침 폭탄 (Poison dart bomb)이다. 이 이야기는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봉틀을 만들던 영국의 싱어 소잉 머신 (Singer Sewing Machine Co. Ltd)은 영국 화학 방어 연구국 (Chemical Defence Research Department) 에 자신들이 주문받은 요청에 대하여 정확한 용도를 모르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영국 화학 방어 연구국은 매우 특수한 바늘 수백만개를 이 회사에 주문했는데 그 용도가 재봉틀이 아닌 뭔가 다른 용도에 쓸 바늘을 찾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바늘의 용도는 극비 사항이었다. 왜냐하면 영국군이 개발 중인 신무기에 탑재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신무기란 바로 제목 처럼 독침 폭탄이었다.
(영국이 2차 대전 중 개발 했던 바늘 폭탄의 디자인 중 하나. 출처: UK National Archives)
훗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공개되어 BBC 등 외신에 의해서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이 바늘 폭탄은 1941년에서 1945년 사이 영국군에 의해 극비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폭탄 내부에 인명 살상을 위해서 바늘을 무수히 넣는 방식이 생각되었으나 좀 더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영국의 비밀 무기 연구 센터인 포턴 다운 (Porton Down)의 연구자들은 독극물을 같이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당시 제안된 독극물인 리신(리친, ricin) 이었다. 리신은 피마자에서 추출되는 독극물로 LD50 이 22 mg, 성인 1인당 치사량은 1.78mg 에 불과하다. (즉 1 g 만 있으면 600명의 성인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주사 형태는 물론이고 공기 중으로 흡입해도 치명적인데다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생화학 테러 위험물질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연구팀은 오랜 개발 끝에 집속탄(cluster bomb) 형태의 폭탄을 개발했다. 이 폭탄을 고도 2 km 정도에서 투하하면 고도 1 km 정도에서 폭발해서 리신이 내부에 발라져 있는 3 만개의 작은 독침들이 퍼지게 된다. 영국군이 테스트 대상으로 삼은 것은 불운한 양과 염소들로 물론 독침의 비를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 높은 위치에서 수직으로 낙하는 독침은 충분한 운동 에너지로 군복을 입힌 양과 염소의 피부를 통과했으며 이 중 16 마리에서는 완전히 관통하는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영국군은 많은 노력 끝에 집속탄 폭발시의 충격에 안전하고/ 일단 폭발 후에는 넓게 퍼져서 골고루 분포되며/ 목표물에 낙하시 피부를 뚫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독극물을 충분히 주입할 수 있는 형태의 독침 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결국 이 기상 천외한 무기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전 배치가 취소되고 만다.
이는 인도적인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집속탄은 아주 쉽게 방어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폭격이 이뤄지는 동안 급조한 벙커나 건물안에 숨기만 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탱크같은 장갑 차량은 말할 것도 없다.
과연 적에대한 살상 및 파괴효과가 기존의 폭탄에 비해서 높을 것인지 매우 회의적인 의견들이 제시되었고, 결국 실전에서 사용되지 못했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이런 독침 폭탄은 다른 재래식 폭탄에 비해서 제조 공정이 복잡해서 제조 단가 역시 비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살상 효과는 높지 않다면 아무래도 사용하는 측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장사다.
이런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독침 폭탄은 결국 사용되지 않았다. 불발 독침에 무고한 민간인이나 혹은 야생 동물이 희생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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