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년 12 월에 두가지 민영화 이슈가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철도 민영화 논란으로 정부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이에 반발하는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서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2 번째는 의료 민영화 논란으로 정부가 지난 13일 내놓은 의료 법인 수익 사업 허용과 법인 약국 허용 이후 의사 협회는 물론 약사 단체들도 의료 민영화의 초기 단계라며 반발이 거센 상태입니다.
사실 코레일이나 정부가 내놓은 안만 보면 민영화 하겠다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은데도 이를 보는 시선들은 결국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관계자는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민영화는 없다라고 이야기 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를 잃었다는 반증입니다. 오늘은 코레일 관련 이슈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주절거려 봅니다.
- 철도 민영화는 없다 vs 철도 민영화를 위한 수순
이번 사태의 뿌리는 2011 년말 새로 개통될 수서발 KTX 를 누가 운영할지를 두고 의견이 엊갈린데서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지만 실제 개통이 되는 것은 2015 년이기 때문에 결정권은 박근혜 정부로 넘어간 셈이지만 민영화 논란은 당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 수서발 KTX 를 지하철 9 호선 처럼 민영화해서 경쟁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시기 코레일 노조는 물론 회사측도 이에 반발했습니다. 일단 수서역까지 이어지는 노선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노선을 같이 쓰는데 민간 철도회사를 들인다고 경쟁이 될리 만무하다는 지적이 그때도 나왔습니다. 누가 회사 가려가면서 같은 노선 열차를 가려서 타겠는가 하는 질문은 그때도 지금도 타당해 보입니다.
이렇게 논란이 일자 당시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동의 없는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했지만 경쟁 체제 도입은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수서발 KTX 를 코레일의 자회사로 설립하는 방안이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민영화와 무관해 보이는 수서발 KTX 자회사는 이렇게 해서 민영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노조는 결국 한발 물러서는 것 처럼 하면서 철도 민영화를 우회적으로 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코레일 사장이 '민영화 되면 철로에 누워서라도 막겠다'고 이야기 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민영화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했는데도 이를 명분으로 파업을 하는 것은 결국 노조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즉 막대한 부채를 진 코레일의 구조조정을 막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지금 까지 정부 당국자나 코레일 사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그렇게 생각이 가능합니다)
코레일과 정부측은 코레일 자회사가 사실상 코레일과 공공기관만이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민영화는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민영화 논란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영화 논란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정부가 신뢰를 잃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설령 노조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뜻으로 민영화 괴담을 만들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으면 지금처럼 큰 논란이 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 KTX 자회사 설립이 코레일 구조조정 ?
사실 신뢰를 잃은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정부의 태도도 한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뭘해도 결국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는 노조측 주장 만큼이나 억지스런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현재 코레일 부실 문제를 해결할 특효약이 된다는 주장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여기서 잠시 민영화 논란에 가려진 코레일 부실 문제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코레일은 부채만 17 조원이 넘는 공기업으로 연평균 5700 억원 수준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정부로부터 5720 억원의 자금을 세금으로 수혈 받는 등 이대로는 독자 생존이 어렵다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코레일의 자본금은 3.5 조원 정도인데 적자와 부채가 누적되면서 본래 자본금 및 적립금의 2 배 수준까지만 발행 가능한 채권 발행을 5배까지 늘려준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미 발행된 채권이 4 배 수준인 12-13 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부채가 자본금의 4 배가 넘고 매년 정부에서 자금을 수혈해도 적자가 나는 기업인데도 채권이 팔리는 것 자체가 정부에서 보증을 서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업을 민영화 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죠. 만약 민간 기업이라면 빨리 워크 아웃이나 법정 관리 수순에 들어가야 할 상황입니다. 코레일은 내년 상반기까지 금융부채 상환을 위해 약 4 조원 정도가 필요한 상황이라 정부에서 추가 자금을 지원하든지 이제 한도에 근접한 채권 발행 한도액을 늘려주든지 하지 않으면 파산 위기에 몰릴 상황입니다. (아마도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코레일이 이 지경까지 된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도로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 소유가 늘면서 철도 이용율이 감소한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될 수 있고, 지방 인구가 감소하면서 사용자가 감소했지만 적자 노선을 공익상의 이유로 폐지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관광용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지만 말이죠) 또 코레일의 경우에는 KTX 관련 부채를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용산 국제 업무 개발 산업이 무산된 것도 부실화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채권 발행한도를 2배에서 5 배로 늘려준것도 이 사업이 무산되면서 부채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또 한가지 문제가 더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코레일의 방만경영과 강성 노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코레일의 경영상태와 무관하게 코레일의 인건비는 연평균 5.5 % 인상 되었고 연 1000 - 3000 억원 수준의 성과급이 매년 지급되었더는 것이 정부측의 주장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코레일의 1 인당 평균 인건비는 7000 만원 수준으로 기관사의 경우 전체의 30% 가량이 8000 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기업이 잘되서 직원들 연봉도 인상해주고 성과금도 많이 준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것은 기업과 직원은 물론 경제 전체를 살찌게 만드는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 기업이 큰 적자를 보고 있을 때는 비정상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코레일이 부득이 요금을 인상하고 임금을 동결하거나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하면 KTX 자회사 설립보다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코레일이 임금 동결 (정부가 2014 년 공공기관 임금인상률을 1.7% 까지 허용했지만 코레일은 경영 위기 상태이므로 동결을 하기로 결정. 물론 노조는 반발하는 상태) 하기로 했지만 현재 파업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 KTX 자회사 설립과 민영화 가능성 논란입니다. 그런데 자회사를 설립만으로 어떻게 막대한 부채가 해결될 수 있고 적자가 개선될 수 있는지 제 머리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지금 한시가 급한 코레일이 2015 년 이후 개통될 노선 자회사만 기대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주장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고 그래서 민영화 논란이 큰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코레일 구조조정 문제는 어디로 ?
코레일 구조조정은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설령 노조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지 않더라도 자회사 설립으로 인한 효과는 2015 년 보다 훨씬 이후에나 확인이 가능할 것이고 그 전에 이미 채권 발행 한도에 근접한 코레일 부채와 연평균 5000 억원에 달하는 넘는 적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새로 빚을 내 기존의 이자와 빚을 상환하는 상황이 몇년 더 지속되면 국민의 세금으로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시급한 문제를 앞에 두고 노조와 코레일/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냐 아니냐, 그리고 방만경영과 인건비 인상이 코레일 부실의 이유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코레일은 2005 년 설립된 공기업으로 당시에는 부채 비율이 70.3% 정도였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부채가 5.8 조원에 달했는데 이것은 KTX 건설 부채 4.5 조원을 비롯한 고속철 관련 부채를 부담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2009 년 코레일은 1.2 조원의 채권을 발행 빚으로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합니다. 본래 인천공항철도는 민간 사업자에 의해 개발된 민자 사업이었으나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승객이 예상에 비해 매우 적어서 막대한 적자가 났고 이 적자를 최소운영수입보장 (MRG- 민자 사업의 경우 벌어들이는 수익이 예상에 미치지 못할 때 정부가 적자를 보전해 주는 것) 으로 보전해주던 정부가 결국은 코레일에 떠넘긴 것입니다.
이는 철도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비스의 질을 올린게 아니라 코레일 부채만 늘린 경우인데 아무튼 이를 통해 코레일은 2009 년을 기점으로 부채가 대폭 증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레일이 매각 가능한 가장 큰 부동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 철도기지창 부지 매각 사업 역시 오세훈 서울 시장의 서울 르네상스 사업등과 더불어 엮이면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 디폴트를 맞아 큰 손실만 본 상태입니다.
이렇듯 코레일 부실화에는 정부의 결정 (KTX 부채 인수 및 인천 공항 철도 같은 부실 민자 철도 강제 인수. 그리고 용산 민자 사업 실패) 이 큰 이유였다는 것이 노조측 주장입니다. 반면 정부는 이렇게 형성된 부채에 더해서 코레일 자체 부채와 적자가 상당한 상황이며 이는 무리한 인건비 인상과 방만 경영이 주된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교의 대상을 만들고 경쟁 체제 구축을 위해 자회사 설립이 필수이며 어떤 희생을 치뤄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갑론 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코레일 부채는 매년 착실하게 커지고 있고 자회사 설립과는 무관하게 뭔가 구조조정이나 요금인상, 공적 자금 투입 없이는 결국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런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나오는 주된 논의가 코레일 구조조정이 아니라 뜻밖에도 민영화라는 것은 난감하기 이를데 없는 일입니다.
- 결국은 정부가 해결해야
사실 진짜로 민영화할 의도인지 아닌지는 저는 확실히 모릅니다. 그런데 한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민영화는 없다는 정부 발표를 국민들이 잘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부가 신용을 잃은 이유는 지금까지 약속을 아주 쉽게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년 선거를 통해 잘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신뢰를 얻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잃는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정권이 오고 갔지만 한결같이 신뢰를 쌓기도 전에 대개 잃어왔고 정부가 하는 이야기라면 일단 불신부터 하는 게 이제는 정상적인 반응이 된 세상이죠.
제 생각에는 정부가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노조나 여론에 끌려다니게 되니 밀어 부쳐야 한다' 라고 생각하기 전에 최소한 제 3 자라도 납득할 수 있는 개선안을 내놓고 약속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핵심 이슈인 KTX 자회사 설립은 왜 그것이 필요한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이 밀어부치기만 하면서 불신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지하철 9 호선이나 인천 공항철도의 사례를 보면 민자 철도 도입이 과연 경쟁력 강화 및 요금 인하에 도움이 되었나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듭니다. 둘다 MRG 에 따른 공공 예산을 엄청나게 들인 것도 모자라 결국 하나는 코레일이 인수하고 나머지 하나는 서울시가 경영권을 사실상 민자 사업자로부터 넘겨받은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들이지 않아도 될 추가 자금만 막대하게 들었고 경쟁이 생겨서 경쟁력이 강화된 것 같은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습니다.
또 서울 지하철의 경우도 서울 메트로와 도시 철도 공사 등으로 나뉘어 있지만 매년 막대한 적자를 보는게 사실입니다. 서로 얼마나 적자가 나는지 경쟁을 시키는게 목적이 아니라면 (서울 메트로만 매년 수천억원 씩 적자를 보고 있는 상태) 과연 회사를 나누면 정부 주장대로 경쟁이 발생할지 매우 의문스러운 대목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서울 메트로가 서비스가 좋아서 목적지까지 훨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울 메트로를 이용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대중교통 소비자는 대개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따지게 마련이지 어느 회사인지가 중요하진 않습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현실적인 대안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철도 운임이 원가보다 낮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온 만큼 현실적으로 얼만큼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든지 (재미있는 건 코레일이 정부에 제출한 쇄신안의 핵심은 요금을 5% 인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령 민영화를 하더라도 요금 인상 없이는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건 당연지사라 어떻게든 요금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과도한 요금인상을 막기 위해 얼만큼 구조조정을 할 것인지를 현실적인 로드맵과 함께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미 KTX 자회사 설립은 쉽게 양보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가 힘들다는 인식 때문에 정부나 노조나 쉽게 양보하지 않으면서 극한대립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사이 코레일 부채는 더 늘어나게 되겠죠. 제 생각엔 민영화 여부에 관계 없이 언젠가 미래에 국민들이 공적 자금으로 그 부채를 감당하든지 아니면 요금을 올려주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치킨 게임 같은데 그걸 막을 도리가 없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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