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년 9월 19일 저널 Food and Chemical Toxicology 에는 "Long term toxicity of a Roundup herbicide and a Roundup-tolerant genetically modified maize" 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내용은 유전자 조작 작물 (GMO) 을 실험용 쥐에 먹였을 때 암이 잘생길 뿐 아니라 빨리 죽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조그만 차이가 아니라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의 차이가 상당해서 암컷 대조군과 실험군 사이의 사망률 차이가 2-3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내용이 발표된 후 국내 언론을 비롯해서 주요 언론에서는 '유전자 조작 작물 암발생율 높여....' 같은 기사를 내보냈지만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가 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연구는 발표된 직후 과학계에서 엄청난 논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연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일이 이들의 연구에서만 발견되었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 대개 두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을 발견한 것이고 두번째는 실험이나 관측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입니다. 불행히 전자는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인 반면 후자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가 바로 그 대표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이전 실험과 이후 실험에서 전혀 지지를 못받았고 나중에 측정 기기에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져 철회된 주장이었죠.
해당 논문의 주저자인 Gilles-Eric Seralini 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암이 잘 발생하는 200 마리의 Sprague-Dawley 쥐를 이용해서 2 년간 몬산토 사 (Monsanto Co.) 가 개발한 글리포세이트 저항 NK 630 옥수수 glyphosate-resistant NK603 maize 를 먹인 후 이 GMO 작물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발표 직후 부터 이들의 논문의 과학적 정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논문을 실어준 Food and Chemical Toxicology 는 물론 출판사인 Elsevier, 그리고 다른 에디터들까지 이 내용을 다시 검증하기 위해 원본 데이터 (raw data) 를 요구했습니다. 다시 전문가들이 이를 분석한 결과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어 (아래 참조) 논문에서 주장한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치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다만 조사팀은 이 논문에서 의도적인 조작의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므로 이 논문을 철회 (retract)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이 논문을 저널에서 그냥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에서 내려 받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발표된 논문에 문제가 있어서 철회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 논문의 저자는 물론 이 논문을 저널에 게재하도록 허락한 에디터와 리뷰어 그리고 저널 자체까지 모두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출판되기 전에 찾아내서 이를 게재전에 수정하도록 하든지 아니면 논문 게재를 거부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데이터를 다시 검증하고 문제가 발견되어 철회한다면 이 저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Food and Chemical Toxicology 는 IF 3 점 정도 되는 학술지로 이번 일로 이미지에 꽤 큰 타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면 과학계에서는 큰 이슈가 된 사건이거든요. 이 이슈에 대해서 저널측은 현재 논문의 심사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논문 심사에 있어서 독립성과 공정성, 전문성이 보다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한편 저자들은 여기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주저자인 셀랄리니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주장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셀랄니니는 1991 년 부터 캉 대학 (University of Caen) 교수로 재직하면서 GMO 농작물에 대한 반대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2007, 2009, 2011 년에도 몬산토사에서 만든 3 가지 GMO 옥수수 (insect resistant MON 863 and MON 810, and the glyphosate resistance NK603) 를 먹인 쥐에서 간, 심장, 신장에 손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유럽 식품 안전국 (EFSA European Food Safety Agency) 를 비롯한 당국과 다른 전문가 집단의 리뷰에서 사실과 다르거나 주장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고 이 때 역시 통계적인 처리와 분석에 문제가 있어 잘못된 결론을 도출했던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저자들은 Committee for Research and Independent Information on Genetic Engineering (CRIIGEN) 라는 반 GMO 단체에 소속되어 있기도 한데 이들은 몬산토사의 거대한 로비력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의 반응은 이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GMO 옥수수들은 매우 구하기 힘든 것도 아니고 이미 널리 재배되어 주로는 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쉽게 구해서 실험이 가능하고 이미 수많은 가축과 사람이 이를 먹고 있습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수준의 문제가 일어난다면 지금쯤 상당한 문제가 생겼을 텐데 왜 그렇지 않은지 매우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비슷한 연구가 이미 많이 진행되었는데 이들의 연구에서만 이런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은 의혹을 제기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다른 과학자들이 문제 삼는 논문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실험에 사용된 Sprague-Dawley Rat 은 매우 암이 잘생기는 실험동물로 단기간의 암 독성을 연구하는데는 적합하나 장기간의 암 발생률을 추적 관찰하는데는 부적합하다. 이 실험 동물은 한 연구에서 정상 상태에서도 80% 에 달하는 암 발생률을 보인 적도 있다. 2 년 정도 키웠을 때 암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 너무 작은 샘플 사이즈. 대조군과 비교된 실험군은 매우 세분화되어 있어 암수 대조군 1 에 실험군은 무려 6 개나 된다. 암수 100 마리씩 실험군 6 그룹 + 대조군을 설정한 셈으로 한 그룹당 수가 너무 작아서 의미있는 과학적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가이드라인에서는 각 실험군당 65 마리의 쥐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들의 실험군은 그 수에 턱없이 모자라다.
- 용량 반응 관계 (dose - response relationship) 도 이상하다. 이 연구에 의하면 11% GMO 작물을 먹인 그룹보다 33% GMO 작물을 먹인 그룹에서 암이 덜 생긴다.
- 통계적 처리에 문제가 있다.
사실 위에서 지적한 문제는 논문의 리뷰어와 에디터들이 게재전에 발견해서 수정 보완을 요구해야 하는 부분들입니다. 이 문제를 그때 해결하지 못하고 나중에 큰 논란을 만들었기에 저널에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하는 것이겠죠. 사소한 오류가 아니라 제기된 문제들이 결과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이슈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는 역시 과학자들도 완벽하지 않다보니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연구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과학자라면 가능한 완벽한 데이터를 들고나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야지 '거대 종자 회사...' 운운하는 건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죠. 더구나 같은 저자가 이전에도 비슷한 문제를 일으켰다면 더 논란의 여지가 있지 않나 생각입니다. 조작의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조작의 증거는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연구자들의 의도적인 조작없이 적절한 실험을 통해서 발표된 연구 결과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다른 실험들을 통해서 재현되지 않는다면 이 결과는 받아들여지지 않게 마련입니다. 과학적 진리란 보편 타당성에 가장 큰 가치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지금까지 GMO 작물을 섭취한 동물 실험 연구에서 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암발생 증가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인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그럼에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GMO 나 다른 물질 (천연물질도 포함. 예를 들어 소금은 아주 흔하게 섭취하는 천연물이지만 장기간 과량 섭취시 매우 위험함) 이 인체나 생물체에 어떤 독성을 미칠 수 있는지는 계속 연구되어야 합니다. 사실 GMO 라고 해도 이제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문제가 앞으로 특정 종류의 GMO 에서 발견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GMO 를 포함 여러 물질의 독성에 대한 연구는 널리 권장되야 하고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퇴출시키면 될 것입니다. 사실 종자 업계보다 매출액이 더 거대한 제약 업계도 로비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연구를 통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십수년간 수억 달러를 들여 개발한 약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말죠.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GMO 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중대한 오류가 있는지를 잘 검토해야 하는 것은 연구자의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나중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연구자로써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당하려고 연구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를 100% 피할 수는 없는 일이죠. (아예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는 경우는 실수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말이죠) 이런 문제는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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