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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7일 토요일

넬슨 만델라 타계



(1993 년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넬슨 만델라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White House Photograph Office, Clinton Administration )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 (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 년 7월 18일 - 2013 년 12월 5일) 가 타계한 후 전세계적인 추도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고인의 업적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이고 뉴스와 여러 매체등을 통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굳이 반복해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참고할 링크만 소개합니다. 


 * 참고하면 좋은 내용 

 넬슨 만델라 디지털 아카이브  :    http://archives.nelsonmandela.org/home


 넬슨 만델라 일생 (기사 ) 

 넬슨 만델라의 사진 


 개인적으로 넬슨 만델라는 흑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권을 위해서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20 세기의 다른 거인들 가운데 간디나 킹 목사와 비견될 만한 거인이었습니다. 물론 만델라 역시 오류를 모르는 신 적인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이나 그 이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가진 국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델라의 업적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뛰어넘어 전세계인의 칭송을 받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델라는 아파르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고통받은 흑인이었고 자신과 다른 흑인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27 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가 체포되어 수감될 당시 그는 무장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7 년간 로벤 섬에서 466/64 라는 죄수 번호를 받고 복역한 만델라는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돌아왔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만델라가 복역한 감방 Nelson Mandela's prison cell on Robben Island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지난 세기 내내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멸시, 억압이 광범위하게 자행되었고 대다수 흑인들이 그 피해자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인종이 화합할 수 있는 무지개 국가 건설이라는 것은 넬슨 만델라 혼자만 용서를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흑인 동포들이 같이 용서를 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죠. 그런데 사실 그 시점에서 흑인 사회도 부족과 사상등의 차이로 내부적 갈등이 상당했습니다. 


 그런 위험한 시점에 만델라는 정말 놀랍게도 유혈 사태 없이, 그리고 그 어떤 보복 조치 없이 과거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했습니다. 만델라가 전 남아공 대통령 드 클레르크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1993 년이었고 대통령이 된 것은 다음해인 1994 년이었습니다. 1999 년까지 한번의 임기만을 마친 만델라는 임기 중에 역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먼트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한 '진실화해위원회(TRC)' 를 출범시켜 피를 흘리지 않고도 과거사를 정리했습니다.


 이후 남아공에서는 과거사나 인종 문제로 인한 심각한 갈등은 없었습니다. (다만 에이즈 문제와 더불어 심각한 빈부 격차, 높은 실업률등의 문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만델라는 기적을 만든 셈이죠. 자유를 위해 싸운 투사를 넘어 만델라는 서로 증오하던 인종간의 화합을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성자였습니다. 


 95 세까지 오래 사셨지만 그럼에도 만델라의 타계 소식에 많은 사람이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만큼 '마디바' 만델라가 시대의 위대한 빛이었기 때문이겠죠. 만델라의 타계 소식을 듣고 남아공의 흑인들은 물론 백인들까지 애도를 표하는 모습에서 만델라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집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이 추구하셨던 뜻이 남아공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곳에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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