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는 20세기 의학에 있어서는 백신과 더불어 감염 치료에 혁명을 가져온 물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항생제를 통해 목숨을 건진 사람은 셀수도 없을 정도인데 사실 항생제와 백신, 그리고 기타 현대적인 방역 관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전세계가 하나의 마을처럼 상품과 사람이 이동하는 현대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세 시대 흑사병 처럼 발달된 교통로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새로운 감염성 질환이 퍼져나갈테니 말이죠. 그러면 어느 정도 인구 집단이 면역을 확보할 때 까지 엄청난 수의 사람이 사망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 의학은 이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처럼 인구가 집중된 사회를 건설하는데 알게 모르게 기여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항생제란 좋은 것이지만 사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다수의 인구에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백신과는 달리 항생제는 그 자체가 가지는 여러가지 부작용에 더해서 내성이라는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남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박테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생명체로 항생제라는 환경상의 변화를 만나면 필연적으로 여기에 맞춰 진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생명체의 진화 메카니즘을 부정하려고 해도 항생제를 사용하면 (항바이러스제나 혹은 항진균제라도 해도 마찬가지) 이는 어김없이 새로운 내성균의 진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 와서 항생제 남용 문제는 사실 의료 부분만의 문제가 아닐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항생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가 농업 부분이기 때문이죠.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는 항생제의 80% 는 사실 농업 부분, 특히 가축 사육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체 항생제 사용가운데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투입하는 양은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내 항생제 사용량. This image shows estimated antibiotic use in the United States. Data are shown as approximate numbers of kilograms of antibiotics used per year. Graphic by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Credit: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13 년 12월 26일자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 ) 에 아이단 홀리스 (Aidan Hollis) 와 지아나 아흐메드 (Ziana Ahmed) 가 게재한 글에 의하면 가축에 사용되는 항생제의 총량은 13540 톤으로 인간에 사용되는 양 3290 톤에 비해서 훨씬 많습니다. 그외 수경재배, 반려 동물, 곡물 등에 사용되는 양까지 합친다면 사실상 항생제의 80 % 가 인간이 아니라 농업부분에 사용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가축에서 항생제가 이렇게 남용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항생제 본래의 목적보다는 그 부작용에도 있습니다. 즉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더 빨리 살이 찌게 하거나 혹은 같은 사료로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한 목적입니다. 특정 항생제들은 가축의 장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 집단에 영향을 미쳐 더 많은 고기와 우유등을 얻게 해 줄수 있습니다. 따라서 병든 가축에서만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막대한 양의 항생제가 가축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는 잠재적으로 자연계에 상당한 수의 항생제 내성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규제해야 하는가를 두고서 지금까지 상당한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2005 년 미국 FDA 는 가금류의 사육에서 있어 fluoroquinolones 계 항생제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2006 년 유럽에서는 가축 성장을 촉진할 목적의 항생제 사용을 금지시켰습니다.
저자들은 과연 항생제 사용금지가 더 현명한 방법인지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네델란드에서 가축의 성장 촉진 목적으로 항생제 사용이 금지되었음에도 한동안은 항생제 사용량이 감소하지 않았는데 이는 농부들이 치료 및 예방 목적으로 항생제 사용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항생제 사용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으므로 - 좁은 공간에서 밀집해서 키우는 현대의 가축 사육 시스템에서 이는 급속한 감염 질환 전파를 가져올 수도 있겠죠 - 결국 다른 방법으로 항생제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다만 규제 정책에 의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항생제 사용을 억제할 수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항생제는 여전히 농업 부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대안적인 방법으로 농업용 항생제에 별도의 수수료등을 부과해 가격을 인상하고 여기에서 거둬들인 돈으로 항생제 개발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항생제를 남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항생제를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기에 쓰이는 항생제 자체의 가격이 생산 기술의 향상 (및 아마도 라이센스 기간이 끝나서) 등으로 저렴해져 약간의 고기와 우유를 더 얻을 수 있으면 마구잡이로 사용해도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만 줄여도 내성균 출현을 상당수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 의학적 사용 (즉 인간에게 사용되는 것 이외에) 항생제 자체의 가격을 높이므로써 남용을 줄이고 여기서 나오는 비용으로 새로운 항생제 개발비를 지원하므로써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속될 박테리아와의 진화적 군비 경쟁에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지적입니다. 항생제의 본래 목적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그 이외의 목적으로 남용되는 것을 방지해야 더 큰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했습니다.
흥미로운 제안이긴 하지만 실제로 농업 단체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미지수 같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내성균 출현에 대한 우려와 환경에 대한 우려로 인해서 점차 농업용 항생제 사용에 대한 규제가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으므로 점차 보건, 농업 당국의 항생제 규제 움직임이 강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
Reference
Aidan Hollis, Ph.D., and Ziana Ahmed, B.A.Sc. Preserving Antibiotics, Rationally. N Engl J Med 2013; 369:2474-2476December 26, 2013DOI: 10.1056/NEJMp131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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