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세기 후반부터 과학자들은 화석 및 비교해부학적 지식 뿐 아니라 DNA 를 바탕으로 생물 진화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계통수를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테리아 이상의 모든 생물들은 DNA 를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물질로 사용하며 (일부 RNA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말이죠) 사실상 생명체의 진화 메카니즘의 핵심이 바로 이 DNA 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역으로 DNA 를 조사하면 생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13 년 12월 13 일 온라인판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에서는 DNA 시퀀스 분석 결과를 토대로 빗해파리 (Comb Jelly) 가 동물의 계통수에서 다른 다세포 동물들과 다른 위치에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미국의 국립 인간 게놈 연구소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NHGRI)) 소속의 앤디 바세바니스 (Andy Baxevanis, Ph.D., senior scientist in NHGRI's Division of Intramural Research)와 그 동료 연구자들은 이 논문에서 30 억개의 염기쌍을 가진 인간의 DNA 를 비롯한 다른 동물의 DNA와 1억 5000 억개의 염기쌍을 지닌 빗해파리의 일종인 Mnemiopsis leidyi 를 비교했습니다. 빗해파리류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M. leidyi 의 DNA 가 완전히 해독되어 다른 동물과 비교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빗해파리인 Mnemiopsis leidyi 의 사진 This image shows the iridescent comb rows and internal structures of Mnemiopsis leidyi. (Credit: Stefan Siebert, Brown University))
빗해파리류 (ctenophore) 는 해파리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이들과 좀 다른 그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최근 연구에서 빗해파리류는 과연 족보상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가 큰 논란으로 떠오른 그룹입니다. 일단 이들이 여러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니 후생동물 (Metazoa, 1개 이상의 세포로 구성된 생물을 총칭하는 단어, 즉 다세포 동물) 로 분류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이들을 자우대칭동물군 (Bilateria, 진정 후생동물 가운데 방사 대칭적인 몸구조를 지닌 자포동물과 유즐동물을 제외한 3 배엽 동물) 과 자매그룹으로 볼 것인지 자포동물문 (Cnidaria, 후생동물 가운데 방사대칭이고 2 배엽성 동물로 해파리, 히드라충류, 입방류, 산호충류등) 의 자매 그룹으로 볼 것인지 판형동물문 (Placozoa, 2중의 세포층으로 납작한 몸을 만드는 아메바 비슷하게 생긴 후생동물) 의 자매 그룹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아예 나머지 동물과 구별되는 별개의 단독 그룹으로 볼 것인지는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이름은 빗해파리지만 해파리는 아니라는 것이죠.
과거 과학자들은 가장 단순한 구조를 지닌 해면 동물이 다른 후생동물과 가장 먼저 분리되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해면동물은 쉽게 말해 스펀지밥을 생각하면 되는데 만화의 주인공과는 달리 사실 조직이나 기관이 거의 분화하지 않은 매우 원시적인 동물로 움직일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진정 후생동물에서 볼 수 있는 상피, 근육, 신경, 감각 세포 같은 잘 분화된 조직이나 기관이 없고 매우 원시적이기 때문에 원생동물에서 후생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분화되었다고 생각해 측생동물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DNA 분석결과 빗해파리가 오히려 해면보다 먼저 공통조상에서 분리되었다는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즉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근육 세포와 신경 세포를 구성하는 DNA 가 다른 동물들의 것과 판이하게 달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의미심장한데 근육과 신경 세포의 진화가 한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빗해파리류에서 독자적으로 한번, 그리고 나머지 후생동물그룹에서 다시 한번 일어났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빗해파리류의 신경과 근육 세포는 다른 동물의 세포들과 비교해서 일종의 수렴진화의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DNA 분석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연구의 주저자인 요셉 라이언 (Joseph Ryan, Ph.D) 은 이 연구가 '빗해파리류가 다른 동물그룹과 자매 그룹 (ctenophores might be the sister group to the rest of the animals)' 이라는 이전 연구 결과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이 연구 이전에도 미토콘드리아 DNA (사실 Mnemiopsis leidyi 는 mtDNA 와 핵 DNA 의 시퀀싱이 모두 이뤄진 첫번째 빗해파리임) 비교 연구에서 이 동물이 다른 동물과 뭔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 지적되었기 때문에 빗해파리가 동물의 족보에서 가장 먼저 나온 큰가지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더 연구가 진행되야 겠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뜻밖에도 빗해파리의 조상이 5 억년도 더 전에 다른 후생동물과 분리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빗해파리의 조상이 지금같은 해파리 모양이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화석상의 기록은 (물론 젤리 같은 모양의 생명체라 화석화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5억 2500 만년전에도 빗해파리 같은 생명체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시기 진짜 어떤 일이 있어는지는 그리고 동물의 족보인 진화 계통도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지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 J. F. Ryan, K. Pang, C. E. Schnitzler, A.-D. Nguyen, R. T. Moreland, D. K. Simmons, B. J. Koch, W. R. Francis, P. Havlak, S. A. Smith, N. H. Putnam, S. H. D. Haddock, C. W. Dunn, T. G. Wolfsberg, J. C. Mullikin, M. Q. Martindale, A. D. Baxevanis. The Genome of the Ctenophore Mnemiopsis leidyi and Its Implications for Cell Type Evolution.Science, 2013; 342 (6164): 1242592 DOI:10.1126/science.124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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