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전해드린바 있지만 박쥐와 나방은 먹고 먹히는 관계로 오랜 세월 진화적 군비 경쟁을 거듭한 결과 다른 동물에게서는 보기 힘든 여러가지 독특한 특징들을 진화시켰습니다. 어두운 밤에 나방을 사냥하기 위해 박쥐들은 칠흑같은 어둠에서도 문제 없이 비행과 사냥을 할 수 있는 초음파 기술을 진화 시켰는데 이런 초음파 네비게이션은 반향 정위 (Echolocation) 이라고 불리며 박쥐 외에도 고래나 돌고래 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높은 주파수의 소리가 물체가 반사되는 것을 이용해서 장애물과 먹이를 식별하고 사냥을 할 수 있습니다. 박쥐의 흔한 먹이가 되는 나방 역시 이런 반향 정위에 적응해 진화했는데 예를 들어 박쥐가 반향 정위를 위해 발사하는 초음파를 조기에 감지하고 이를 회피하는 능력이 그것입니다. 이전에 언급한 바 있듯이 이로 인해 나방 중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jjy0501/100187599972 참조)
이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지만 플로리다 대학 (University of Florida) 및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의 연구자들이 최근 연구한 박각시과 (Sphingidae) 에 속하는 나방들은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박쥐의 초음파를 방해하는 초음파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박각시과에 속하는 나방들은 흔히 Hawkmoth 로 불리는데 지금까지 대략 1450 종이 확인되었으며 주로는 열대 지역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빠르게 날아다니거나 혹은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위장을 하는 등 아주 다양하게 포식자를 피하는 전술을 진화 시켜왔습니다.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의 카와하라 (Akito Kawahara, assistant curator of Lepidoptera at the Florida Museum of Natural History ) 와 플로리다 대학의 제시 바버 (Jesse R. Barber) 는 미국 국립 과학 재단으로 부터 50 만 달러를 지원받아 말레이시아의 열대 우림에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3 종의 박각시과 나방들이 초음파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박각시과에 속하는 Cechenena lineosa moth 나방 Credit: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2.0 Generic license) )
이 초음파의 목적은 동료들에게 포식자를 경고함과 동시에 박쥐의 초음파를 방해하는 용도로 생각된다고 합니다. 이 나방들은 높은 주파수의 초음파 (26 - 29 kHz 에서 86 - 105 kHz 사이 ) 를 만들어 박쥐에게 혼동을 일으키는 잡음을 첨가합니다. 독특하게도 암수가 초음파를 만드는 방법이 다른 경우도 목격했는데 수컷의 경우 생식기의 외피에서 초음파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사실 원리상 이는 주로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전파 재밍 (Jamming) 기술과 동일합니다. 연구자들 역시 논문에 'jamming of echolocation'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원리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전자기파 대신 초음파가 대상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입니다. 인간 말고도 적을 속이거나 혼란시킬 목적으로 재밍 기술을 사용하는 동물은 지금까지는 이 나방들이 유일합니다.
연구자들은 박쥐와 나방이 6500 만년동안 같이 진화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놀라운 진화적 군비 경쟁의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진화적 군비 경쟁은 아주 빨리 달릴 수 있게 진화한 아프리카 영양과 치타의 사례처럼 적자 생존의 법칙에 따라 유리한 특성을 포식자와 피식자가 같이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아주 극단적인 특성을 진화시키기도 하는데 엄청나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치타가 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 cm 에 불과한 나방이 이렇게 독특한 기능을 진화시킨 것 역시 진화적 군비 경쟁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Biology Letters 에 실렸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 J. R. Barber, A. Y. Kawahara. Hawkmoths produce anti-bat ultrasound. Biology Letters, 2013; 9 (4): 20130161 DOI:10.1098/rsbl.2013.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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