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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5일 일요일

히틀러의 바다의 전사들 - 독일 U 보트 전사(戰史) 5



 
 11. 공중에서의 공격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잠수함의 무서운 적 중에 하나는 바로 항공기이다. 2차 대전때에는 특히 항공기가 잠수함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2차 대전 당시 유보트들은 엄밀히 말해 주로 물 밑으로 다니는 잠수함이 아니라 필요시 잠수도 가능한 반잠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1943년, 물위에서 항해하다가 연합군으로 부터 공격받는 IXC 형 유보트. 이렇게 주로는 물에 부상한 상태로 다녔기 때문에 항공기에 들키면 급히 물속으로 피신해야 했다.  This image was created inAustralia and is now in the public domain )



 당시 잠수함들은 현재의 디젤 잠수함과는 달리 잠수한 상태에서는 디젤 엔진을 작동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물속에서는 배터리로 잠수함을 작동시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잠수가 가능한 시간이 길지 못했다. 얕은 물속에 잠항한 상태에서 디젤 엔진을 작동시킬 수 있는 슈노켈이 장착되는 것은 대전 후기였고, 1943년까지 독일 유보트들은 일단 물위에 부상한 상태에서 디젤 엔진을 작동시켜 유보트를 운항했고, 배터리도 이때 충전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물위에 떠 있는 상태의 유보트들을 찾는 데는 역시 넓은 지역을 빠르게 수색할 수 있는 항공기가 제격이었다. 또 항공기에 대잠 무장을 장착해서 유보트들을 공격하는 것도 유효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하였듯이 영국 해군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1939년에는 성과가 별로 좋지 못했다. 적어도 1941년 초까지 독일 유보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군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미국의 도움을 받은 영국은 빠르게 대잠 초계기들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대서양 전투' 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미국산 장거리 중폭격기는 바로 B - 24 Liberator 였다. 이 중폭격기는 훨씬 잘알려진 중폭격기인 B 17 처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대서양 전투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역활을 했다.



(B - 24 Liberator : 이 4발 엔진 중폭격기는 항속 거리가 아주 길었기 때문에 장거리 대잠 초계기로써 제격이었다. This image or file is a work of a U.S. Air Force, the image or file is in the public domain. )



 B - 24 는 1941년 투입되자 마자 제 몫을 해냈다. 대전 기간 중  B- 24은 무려 18482 기나 제작되어 전략 폭격등 다양한 임무에 사용되었지만 특히 독일 유보트의 천적으로 1945년까지 맹활약 했다. 적어도 72척의 유보트가 대전 기간 중 이들에 의해 격침되었기 때문에 전체 격침 수의 10%가 이 B - 24 에 의한 것이었다. 이 B - 24 는 미국과 영국 모두 유보트를 잡는데 대량으로 운용한 항공기이다.


 이 밖에도 미국의 육군 대잠 항공 사령부는 (Army Air Forces Antisubmarine Command) 유보트들을 잡기 위해서 B - 17, B - 18, B - 25, B- 34, O - 47, A - 20, A - 29 등의 항공기를 투입했다.


 영국군은 미국에서 대량으로 수입한 항공기들 이외에도 자체 항공기들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4발 엔진 비행정인 Short Sunderland 나 Vickers Wellington 들이 그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이외에도 항모 발진 대잠 초계기들이 이야기 해야 하겠지만 이는 조금 나중에 설명한다)



(Short Sunderland Mk V : 영국의 4발 엔진 대형 비행정으로 물위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대잠 초계기이다. This artistic work created by the United Kingdom Government is in the public domain  )





 이 B - 24를 비롯한 대 유보트 전에 투입된 항공기에는 나름대로의 대잠전 장비가 장착되어 있었다. 사실 이 장비들은 주로 물속에서 잠항해 다니는 지금의 잠수함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지만 당시 물위로 주로 항해하던 유보트들에게는 효과적이었다.


 ASV (Air to Surface Vessel) radar 는 물위에 부상해 있던 유보트들에게 유용했다. 이 대잠 레이더는 초기엔 상당히 유용했다. B - 24를 비롯한 대잠 초계기들은 구름 위에서 이 레이더를 이용해서 유보트를 찾아낸 다음 갑자기 나타났으므로 유보트 입장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독일도 빠르게 이에 대한 대응책을 개발했다. 비스케이 크로스라는 레이더 경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유보트들은 이 경보기가 울리면 재빨리 잠수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한편 Leigh light 라는 일종의 서치 라이트는 보다 유용했다. 사실 별거아닌 거대한 크기의 공중 서치 라이트에 불과해 보일지 모르지만 유보트들의 주된 사냥 시간인 밤에 서치 라이트를 이용 이들을 찾아내는 방법은 상당히 유용했다. 처음 도입 당시에는 유보트에 의한 선박 손실이 월 60만 톤에서 20만 톤으로 줄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B - 24 의 날개에 Leigh Light 를 장착하는 영국군 병사 : This artistic work created by the United Kingdom Government is in the public domain )




 아무튼 1942년에는 미국의 참전과 B - 24 같은 장거리 대잠 초계기의 등장으로 항공기가 초계를 하지 못하는 공간. 즉 에어 갭 (Air Gap) 이 크게 감소되고 있었다. 사실 1942년 중반 이후로는 에어갭은 주로 대서양 중부 지역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12. 에어 갭과 항공모함


  유보트의 천적과도 같은 항공기가 기세 등등하게 날아다니는 미국과 영국 근해는 사실 작전에 좋은 곳이 아니었다. 1942년 중반 이후로 이 해역에서 유보트는 연합군 수송 선단을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사냥감이 되곤 했다.


 그래서 1942년 7월 19일 되니츠 제독은 유보트들을 미국 동부 해안 근해에서 철수시켰다. 이제 영국의 조언을 받아들여 선단을 조직하고 대잠전에 다소 익숙해진 미국을 상대로 미 동부 해안에서 공격하는 것은 득보다 손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되니츠는 B - 24 같은 장거리 대잠 초계기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공간인 그린란드와 아이슬랜드 사이의 공간 - 중부 대서양 에어 갭 (Mid Atlantic Air Gap) - 으로 유보트들을 집중시켰다. 이 방법은 점차 증강되는 연합군에 대잠 전력에 맞서기 위한 궁여 지책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당장에는 효과가 있었다.


 유보트들은 1942년 10월에만 이 에어갭에서 연합군 상선 285000톤을 격침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1942년은 유보트들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왜냐하면 점차 증강되는 연합군 전력을 당할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합군은 구축함을 비롯한 호위함을 늘리는 것은 물론 이제 본격적으로 대잠 임무를 위한 항공모함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주로 찍어 내는 대상은 미국이었다. 결국 이 항공모함의 등장은 대서양에서 에어 갭을 없애버린 원동력이었다.



 아마 2차 대전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 때 미국이 찍어낸 (?) 항모의 숫자만 100척이 넘는 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 특히 미국은 대잠 작전에 쓸 생각으로 대량으로 호위 항모들을 찍어냈다.


 사실 이 항모들이 본격 투입되기 전 영국은 나름대로 궁여 지책을 생각해 냈다. 그 궁여 지책이란 바로 CAM ship 이란 것이었다. CAM 이란 Catapult Aircraft Merchantman 의 약자인데, 한마디로 상선에다 일종의 캐터펄트를 장착해서 항공기를 쏘는 방식이었다. 로켓으로 추진되는 이 캐터펄트에는 호커 씨 허리케인 (Hawker Sea Hurricane) 전투기가 탑재되었다. 이들은 FW - 200 콘도르 등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상선 앞에 장착된 로켓 추진 캐터펄트위의 호커 씨 허리케인, 이런 짧은 캐터펄트 위에서 나는게 신기하다. 사실 착륙이 더 문제였는데, 9기 중 8기를 손실했다고 한다. This artistic work created by the United Kingdom Government is in the public domain )



 영국군의 이러한 처절한 궁여 지책은 미국이 대량의 항모를 찍어내면서 끝나게 된다. 이들 호위 항모 (Escort Carrier or Escort Aircraft Carrier) 은 진주만 공습 이후 여객선, 순양함, 심지어 유조선까지 비행 갑판을 만들 수 있는 배는 모조리 위에 비행갑판을 설치해 호위 항모로 만든 경항모 (Light Aircraft carrier, CVL) 에서 시작했다.


 첫번째 투입된 것은 클리브랜드 급 경순양함을 개조한 인디펜던스 급 경항모 (Independance class CVL) 였다. 11000 톤급의 소형 호위 항모로 9 척이 개조되었다.



(경항모 인디펜던스 : USS Independence CVL-22, 위에 보이는 것은 F6F 헬켓이다. This image is a work of a sailor or employee of the U.S. Navy,the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



 한편 상선을 개조하여 만든 항모들이 AVG(auxiliary aircraft escort vessels) 라는 이름을 생산되었다. 최초는 USS Long Island (CVE-1) 로 E 는 물론 Escort 의 약자였다. 대략 13000톤 정도의 작은 항모였다. AVG 란 명칭은 나중에 CVE 로 바뀐다.




(음 이륙은 어떻게 ? This image is a work of a sailor or employee of the U.S. Navy,the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이런 호위 항모들은 대략 150m 정도의 작은 길이를 가지고 있었으며, 대전 기간 중 무려 130척이나 생산이 되었다. 그래도 항공기를 대략 20기 정도는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1000명에 가까운 승무원이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상선이라는 한계 때문에 어뢰 한방에 격침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막대한 양이 미해군과 영국 해군에 뿌려져 연합군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이들이 주요 함재기들은 F4F/FM Wildcat 과 TBF/TBM Avenger 였다. 와일드 캣은 정찰 및 전투기로 FW - 200 콘도르 같은 유보트의 친구들을 격추시켰다. 어밴저는 어뢰를 장착하고 적함이나 유보트들을 공격했다. 이들의 작전은 물론 대잠 구축함들과 보조를 통해 이루어졌다.



(어뢰를 투하하는 TBF/TBM Avenger. This image is a work of a sailor or employee of the U.S. Navy,the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구축함과 더불어 상선단을 호위하는 급강하 폭격기 Vought SB2U Vindicator, 이 급강하 폭격기는 항모 탑재용이었다. 이 비행기는 사진에는 보이지 않으나 항모 USS Ranger (CV-4) 로 부터 발진한 것이다. 사진은 1941년 11월 27일로 남아공 케이프타운 앞이다. 아직 미국 참전 전인데 이런 사진이 있다는 게 놀랍다. This image is a work of a sailor or employee of the U.S. Navy,the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당연히 이와 같은 항모 전력의 확충은 되니츠와 유보트들에게는 비보였다. 1943년이 되자 이제 에어갭은 거의 사라졌으며, 유보트들은 암울한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보트들의 최후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북대서양 이외의 전장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고 넘어갈 예정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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