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에니그마 (Enigma)
이제 수많은 영화의 소재가 된 기계에 대해서 이야기 할 차례가 됐다. 이 기계는 아마 암호 기계중에 가장 유명한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기계 에니그마 (Enigma Machine) 이 그것이다. 이 암호 머신이 유보트 전사에 나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유보트에도 이 에니그마 머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품 에니그마 머신이다. This article or image contains materials that originally came from a National Security Agency (NSA) website or publication. It is believed that this information is not classified, and is in the public domain)
잠시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에니그마 머신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기계는 사실 1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개발된 기계였다. 이 기계의 개발자인 아서 셔비우스 (Authur Scherbius) 는 이 암호 기계를 상업적으로 개발해 1920년대에 판매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영화에서 같은 독일군의 초특급 비밀 암호 기계는 아닌 셈이다. (본래 영화란게 다 그렇지만)
에니그마는 전기 기계식 로터 머신 (electro-mechanical rotor machines) 이었는데, 여러개의 작은 톱니와 전기적 신호가 결합해서 동일한 암호 코드 없이는 사전에 풀기 어려운 암호를 송수신하는 기계 였다.
(독일군이 2차 대전 당시 사용하던 에니그마 내부의 세개의 톱니바퀴 : Illustration of rotors in an Enigma machine. Created by Wapcaplet in Blender. CCL 에 의해 복사. 저자 표시 동일조건하 복사 허용)
(에니그마 머신의 전기 회로도 - 기계식 톱니와 복잡한 전기 장치기 암호를 전환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보호했다. 저자 : MesserWoland CCL 에 따라 복사. 저자 표시, 동일조건하 복사 허용)
이 에니그마 머신은 독일 군부의 관심을 끌어 군용 에니그마 (Wehrmacht Enigma) 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암호기가 좀 좋았나 보다. 이미 상업적으로 판매된 암호기인데도 앨런 튜링 같은 천재들을 다량 보유한 영국은 이 암호를 완전히 해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발생한다. 1941년 5월 9일, 아이슬란드 남쪽 북대서양 바다에서 연합군 상선을 공격하던 Type XIB 형 잠수함인 U - 110 이 영국군 구축함 HMS Bulldog 에게 포획된 것이다. 상선을 향해 어뢰를 쏘고 달아나던 U - 110 을 호위 구축함이 앞서 설명한 에즈딕을 이용, 위치를 알아내 폭뢰로 공격한 것이다. 잠수함이 크게 손상되자 결국 U - 110 은 항복했고 영국군은 이를 이용 에니그마의 암호 코드를 알아냈다.
(HMS bulldog과 U - 110, 이 뜻하지 않은 횡재로 영국군은 에니그마의 암호 코드를 풀 수 있었다. 이 한장의 사진이 영화 U - 571 이 실화가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다. This image is a work of a sailor or employee of the U.S. Navy, taken or made during the course of the person's official duties. As awork of the U.S. federal government, the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아무튼 이를 통해 암호코드를 알아낸 영국 정부는 이제 유보트의 움직임을 보다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영국군이 결코 개별 유보트의 위치를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무선 수신 내용을 도청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선에 의존하는 울프팩 전술을 쓰는 독일 유보트들에게 매우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10. 2번째 행복한 시간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한 것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때 사실 미국 보다는 일본에게 더 나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영국으로써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뉴스였다. 막대한 물량 생산능력을 지닌 미국의 참전으로 영국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전세가 영국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 자체의 승패가 독일에게 불리하게 진행된 것은 어찌 보면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이후라고도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히틀러가 주저하지 않고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하자 카를 되니츠 제독은 어찌 되던 간에 미국을 공격할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되니츠 제독에게는 영국을 공격할 유보트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여기에다 그에게 유보트가 모자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었다.
1940년 10월, 히틀러는 되니츠에게 일단의 유보트들이 지브롤터 해엽을 건너 가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이는 성가신 동맹이던 이탈리아가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에게 열세에 놓이자 이를 돕기 위한 조치 중 하나였다. 히틀러는 무모하게도 영국군이 철통처럼 지키는 폭이 최하 14km 에 불과한 지브롤터 해엽을 통과할 것을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IX 형 유보트가 투입된 것이다.
사실 멀리 떨어진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 동부 해안에서 작전을 하려면 항속거리가 매우 긴 IX 형 유보트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투입할 여유가 되는 IX 형 유보트는 겨우 12척에 불과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12척중 절반이 히틀러의 명령으로 이미 지중해에 투입했기 때문에 당시 남은 IX 형 유보트는 단지 6척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한척은 또 수리에 들어가 실제 투입된 건 불과 5척이었다.
이쯤되면 되니츠가 아니라 성웅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살아와도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 아닌 듯 했다. 엄청난 상선과 군함을 가진 미국에 대항해서 그것도 대서양 건너 미국의 앞마당인 동부 해안까지 가서 잠수함 5척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되니츠는 포기하지 않고, 이른바 미 동부 해안 공격 계획인 드럼비트 작전 (Operation Drumbeat, Paukenschlag) 을 수립했다.
(카를 되니츠 제독 - '아직 소장에게는 잠수함 5척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미 동부 해안을 잠수함 5척으로 기습하기로 결정했다. This artistic work created by the United Kingdom Government is in the public domain )
그러나 되니츠와 5척의 육탄 용사 (?) 는 외롭지 만은 않았다. 그들을 도운 미군 지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해군 사령관인(Commander in Chief, United States Fleet and Chief of Naval Operations ) 인 어니스트 킹 (Ernest King) 제독은 이미 유보트에게 엄청난 수송선과 군함을 헌납하고 대잠전의 교훈을 익힌 영국 해군의 충고를 무시했다. 영국 해군은 미 해군에게 호위함의 보호를 받는 수송선단의 조직과 등화 관제등을 충고했으나 영국인들을 싫어하는 킹 제독은 이를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당시 미해군 사령관인 어니스트 킹 제독,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이는 5척의 유보트들에게는 복음과도 같은 이야기 였다. 이 다섯 척의 유보트는 U - 123 (함장 : Reinhard Hardegen), U - 130 (함장 : Ernst Kals), U - 66 (함장 : Robert-Richard Zapp), U - 109 (함장 : Heinrich Bleichrodt), U - 125 (함장 : Ulrich Folkers ) 였다.
1942년 1월 미 동부해안을 향해 떠난 이들 5척의 유보트는 하나의 손실도 없이 미국 상선을 총 156,939 톤이나 격침시키고 2월에 금위 환향했다. 이는 1942년 이어질 두번째 행복한 시간의 시작을 의미했다. 상대적으로 대잠전의 준비를 이미 마친 영국 대신 아직 어리버리한 미국 상선들이 이들의 새로운 풍요로운 사냥감이었다.
(기지로 금위 환향하는 U - 123, CCL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시 , 출처 : Deutsches Bundesarchiv (German Federal Archive), Bild 101II-MW-3983-23, 저자 : Dietrich )
되니츠는 한달만에 잠수함 5척이 16만 톤의 미국 상선을 침몰시키는 것을 보고 이제 미 동부해안이 유보트들의 풍요로운 사냥터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IX 형 유보트는 물론 VII 까지 이를 향해 나갔다. 모자라는 연료를 보충하기 위해 그들은 젖소라는 명칭으로 불린 XIV 형 유보트로 부터 재급유를 받았다. 그들은 이제 미국 상선 397척 (총 200만톤)을 작전 기간 중 격침시켰다. 마치 유보트의 전성기가 다시 온 듯 했다. 유보트의 두번째 행복한 시간이었다.
(U - 571의 어뢰 공격을 받고 불타는 유조선 펜실버니아 선 : the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
다시 값비싼 댓가를 치룬 미국은 이제서야 영국의 조언대로 수송 선단을 조직하고, 철저한 등화 관제를 실시했다. 그리고 점차 미국의 생산 능력이 전쟁에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되니츠는 1942년 중반 다시 유보트 함대를 북대서양 중심으로 돌렸다. 이는 비행기들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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