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방통위 (방송 통신 위원회) 주체로 열린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 이라는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 때문에 최근에 인터넷 종량제 이야기가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방통위의 제안은 결국 통신사가 트래픽 조절을 위해 무제한 요금제를 없애고 제한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방통위가 제시한 트래픽 조절 기준은
- 망의 보안성 및 안정성 확보를 위한 경우 (DDos 공격 같은 경우)
- 망 혼잡으로부터 다수 이용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평한 인터넷 이용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제한적으로 트래픽 관리를 시행하는 경우
- 관련 법령의 규정에 근거하거나 법령 집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를 들어 음란물이나 불법 저작물 차단)
- 법령 및 약관에 근거한 이용자의 요청 (스팸등)
- 적법한 계약 등 이용자의 동의를 얻어 트래픽을 제한하는 경우
- 이외에도 방통위가 기술발전 등을 고려하여 사안별로 합리성 여부를 판단
입니다.
여기에서 안정성 및 보안성 확보를 위한 내용이야 모두가 납득할 수 있지만 다수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것은 결국 헤비 다운로더를 억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즉 트래픽 사용양의 대부분을 유발하는 사용자를 억제하겠다는 것이죠.
이날 방통위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는데 예를 들어 AT&T 의 경우 150 GB 정도 월 데이터 상한을 3회 초과시 50 GB 당 10 달러씩 추가요금을 부과한다는 등입니다. 혹은 데이터 상한선 초과시 속도를 제어하는 것도 사례로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헤비 다운로더는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상습적으로 토렌트나 다른 P2P 를 이용해서 대용량 데이터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게임 설치를 위해 클라이언트를 다운 받는 경우 10 GB 정도는 쉽게 넘기기 때문입니다. 스팀을 통해 게임을 받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스마트 TV 를 새로 장만한 사람도 헤비 다운로더가 될 수 있겠죠. (사실 스마트 TV 가 최근에 새로운 갈등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스마트 TV 가 PC 보다 20배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합니다. 나중에 시민단체에서 자료를 공개하자 그럴 우려가 있다고 말을 바꿨지만.)
적법한 계약 등 이용자의 동의를 얻는 부분은 동의하지 않으면 계약을 못하도록 하면 되는 부분일 테고 결국 이것은 종량제 내지는 데이터 캡을 씌우겠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전부터 알려져 있듯이 KT 가 이에 적극적입니다.
한국의 경우 국토 크기가 좁고 인구가 대도시 몇개에 집중된데다 국민들이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서 (?) 일찍부터 초고속 통신망에 대한 수요가 큼과 동시에 실제 고속 통신망 구축도 간단했습니다. (미국 처럼 국토가 큰 경우에는 솔직히 이런 종량제나 데이터 캡이 이해가 갑니다) 아마 그것이 한국이 인터넷 (다운로드) 강국이 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가입자를 모으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았던 통신사들은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차츰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갈수록 트래픽은 증가하는데 비해 요금은 그대로고 가입자도 더 늘어날 수 없으니 수익이 별로 증가하지 않았던 것이겠죠.
따라서 통신사들이 무제한 요금제를 없애고 종량제나 아니면 데이터 캡을 만든 후 더 비싼 무제한 요금제를 도입하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리고 방통위는 소비자가 아니라 통신사 편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방통위가 했던 일을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방통위가 아무리 통신사 편을 들어주어도 통신사들이 쉽게 종량제 내지는 데이터 캡, 아니면 요금 인상을 추진하기 힘든게 100% 독점이 아니라 시장 기능이 아직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KT 가 종량제 도입을 하면 돈을 더 벌기 보단 상당수 사용자가 KT 를 이탈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점은 다른 통신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종량제 도입이나 기타 트래픽 제한 조치가 성공하려면 모든 통신사가 담합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현재까지는 사용자 반발 및 협력이 잘 안되는 이유로 인해 논의만 되고 실제 실행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정부가 할 일은 기업들이 담합해서 불공정 거래를 못하게만 막고 이 정부가 항상 이야기 했듯이 규제와 간섭은 최소화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시장 기능이 알아서 조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경쟁적으로 원가를 보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죠.
통신사는 헤비 다운로더 때문에 일반 사용자가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헤비 다운로드 받을 필요가 없는 일반 사용자가 오히려 트래픽 제한이 있는 더 저렴한 요금제에 가입하면 될 것이고 통신사 주장대로 다운로드를 많이 안 받기 때문에 체감하는 불편은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렴한 요금제 나오면 소비자는 더 환영이죠. 오히려 종량제나 기타 조치로 인해 결국 가격이 오르면 그 피해는 소비자 전체가 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 통신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종량제나 데이터 캡, 그리고 망 중립성 따위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이제는 사용료를 올려 받고 싶은 겁니다. 이전에는 가입자 유치로 이윤과 매출 증가가 가능했으나 현재는 시장이 포화상태거든요. 더구나 계속해서 망 구축비는 필요하니 원가가 줄지도 않습니다. 이대로는 언젠가는 손해를 보는 레드 오션이 될 가능성이 있겠죠.
제 생각엔 차라리 속도에 따른 서비스를 다양하게 하고 가격을 매기는 편이 더 낫다고 보는데 이것 역시 경쟁 때문에 쉽지 않고 종량제는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요금을 인상하고 고속 통신이 필요없는 사용자를 위한 저렴한 요금제를 만드는게 더 낫다고 봅니다. (물론 소비자 반발 및 경쟁사의 저렴한 서비스가 걸림돌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도 딱히 묘수가 없지만 소비자 주머니를 터는 방법은 사실 기업들이 고민해야할 부분입니다. 자발적으로 돈을 더 내게 만들 상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종량제 도입이 정 하고 싶다면 제 생각에 저렴한 종량제 상품부터 선보이는 게 반발을 없애는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200 - 300 GB 월 9900 원 하는 식으로 하면 되죠. 그러면 종량제 찬성하는 사람도 꽤 될 듯 합니다. 대개 사용자는 그 정도 안쓸 테니 말이죠. 그래서 1 TB 에 5만원, 아니면 7만원이상 무제한 하는 식으로 상품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면 되지만 그러면 통신사가 손해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는 안하려고 하겠죠. )
사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통신사들이 막대한 적자를 보는 것도 아니고 부도 위기에 몰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방통위가 나서서 대기업인 통신사들을 도와주려고 발벗고 나섰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참고로 KT 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지난해 보다 9.1% 증가한 5조 7578 억원, 영업이익은 20.3% 감소한 5747 억원입니다. 아주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나라에서 지원이 필요할 만큼 실적이 부진하다곤 할 수 없겠죠) 방통위가 그 노력을 국민들을 위해서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말로 글을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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