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혁신적인 유기물질 플루 배터리 ?



 현대 사회에서 배터리, 특히 2차 전지 (충방전을 해서 반복 사용하는 배터리) 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작고 효율적이며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리튬 이온/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가 아니라면 현재의 모바일 혁명도 불가능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만이 2 차 전지의 주된 목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값싸고 대량의 전기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가 존재한다면 사실상 새로운 산업 혁명에 버금갈 혁신을 몰고 올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 자동차에 들어갈수 있는 저렴하고 수명이 긴 대용량 배터리가 개발될 수 있다면 이는 자동차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상으로 저렴한 배터리에 대한 잠재 수요가 신재생 에너지에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로 각광을 받는 태양 에너지나 (태양전지나 태양열 모두 포함) 풍력은 24 시간 일정하게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는 큰 단점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항상 백업 용도의 발전소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는 단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결국은 대개 백업 발전을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화력 발전소에 의존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아지즈 교수 (Michael J. Aziz, Gene and Tracy Sykes Professor of Materials and Energy Technologies at the Harvard School of Engineering and Applied Sciences (SEAS) ) 와 그의 동료들은 금속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퀴논 (quinones) 이라는 유기물질을 이용한 2 차 전지를 선보였습니다.  


 퀴논은 하나의 분자가 아니라 그룹을 의미하는 단어로 방향족탄화수소 속에 있는 벤진핵 수소원자 2개를 산소원자 2개로 치환한 구조인 다이카보닐화합물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유기 화학물은 미토콘드리아와 식물에 흔하게 존재하며 따라서 리튬 처럼 구하기 힘들지 않고 쉽게 정제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연구팀이 사용한 것은 9,10-anthraquinone-2,7-disulphonic acid (AQDS) 라는 분자로 이를 이용해서 금속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플루 배터리 (metal-free flow battery) 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전에도 액체 상태의 금속 전해질을 사용하는 플루 배터리는 존재했지만 바나듐 같이 고가의 금속을 사용했기 때문에 저렴한 대용량 배터리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AQDS 기반 플루 배터리는 대용량의 저렴한 2차 전지 개발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비금속 플루 배터리   A prototype flow battery in Aziz's lab at Harvard School of Engineering and Applied Sciences. (Credit: Photo by Eliza Grinnell, Harvard SEAS))  


 만약 1 MW 용량의 풍력 발전기의 경우 바람이 불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50 시간 정도의 예비전력을 저장한다고 가정할 때 50 MWh 의 배터리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리튬 전지등으로 이를 감당하려 한다면 도저히 비용이 감당하기 힘들고 리튬 자체가 흔한 자원도 아니기 때문에 사실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 화재 및 폭발의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반면 퀴논 기반의 플루 배터리는 단지 배터리의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 액체 탱크의 크기를 늘리기만 하면 됩니다. 즉 50 MWh 든 100 MWh 든 1MW 의 전력만 생산하면 된다면 전극등 나머지 부분은 남겨두고 그냥 탱크에다가 용액만 더 담으면 된다는 것이죠. 물에 녹은 퀴논 전해질은 가연성이 없기 때문에 더 안전합니다. 물론 퀴논 화합물은 리튬과는 달리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만 실제적으로 이런 비금속 플루 배터리가 경제성이 있는지는 좀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단 부피와 무게가 꽤 나가는 만큼 자동차에 2 차 전지등으로 사용하기는 힘들고 대규모 백업 전력이 필요한 장소에 안성 맞춤 같아 보입니다. 다만 사례로 든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발전 단가가 높은 점을 감안하면 더 단가를 높이는 2 차 배터리의 존재가 과연 널리 사용될 수 있을지는 역시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연구는 Nature 에 실렸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1. Brian Huskinson, Michael P. Marshak, Changwon Suh, Suleyman Er, Michael R. Gerhardt, Cooper J. Galvin, Xudong Chen, Alan Aspuru-Guzik, Roy G. Gordon, Michael J. Aziz. A metal-free organic–inorganic aqueous flow batteryNature, 2014; 505 (7482): 195 DOI: 10.1038/nature12909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