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는 서구 국가들은 물론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섭취되는 음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우유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유제품까지 포함하면 문화권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식품이자 음료로써 우유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성인 중 상당수는 많은 양 (사람마다 양은 차이가 나지만) 의 우유를 먹으면 설사나 복부 불편감을 호소합니다.
(유리잔에 든 우유 : public domain image)
우리말로는 유당 불내증 혹은 유당 분해 효소 결핍증 이라고 부르는 lactose intolerance 는 우유에 다량 포함된 유당 (젖당, lactose) 를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을 의미합니다. 유당은 글루코스 + 갈락토스로 이뤄진 이당류로 (분자식은 C12H22O11) 이를 다시 글루코스와 갈락토스로 쪼개서 인체에서 흡수하도록 할 수 있게 하려면 유당 분해효소인 Lactase 가 필요합니다.
(유당은 글루코스 한개와 갈락토스 한개가 붙어있는 이당류로 이를 쪼개야 흡수가 가능. 즉 C12H22O11 + H2O → C6H12O6 + C6H12O6 의 과정. public domain image )
사실 유당 자체는 우유보다 모유에 더 많이 있습니다. (모유에는 6.7 %, 우유에는 4.5 %) 하지만 어린 아기일 때는 대부분 유당 분해 효소가 적당량 분비되어 이를 소화시키는 데 큰 장애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당 분해 효소의 생산과 활성은 크면서 점차로 감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본래 커서는 유당을 섭취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아마도 소같은 동물을 가축화 하기 전까지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를 비롯해 젖을 얻을 수 있는 동물들을 가축화한 5000 - 10000 년 전부터 인간의 DNA 에는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락타아제를 코딩하는 유전자 (LCT gene) 는 인간의 2 번 염색체에 있는데 신생아 시기에는 소장에 있는 세포 (small intestine enterocytes) 에서 크게 활성화 되어 잘 분비됩니다. 물론 인간 뿐 아니라 다른 포유류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당연히 젖을 때면서 그 활성이 감소되어 (즉 down regulation 되어) 사실상 유당을 잘 분해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유당이 들어 있는 우유를 일정량 이상 먹게 되면 소장에서 흡수되지 못한 유당이 대장으로 내려가 복부 팽만, 설사, 복통 등 아주 여러가지 증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실 락타아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소량은 어떻게든 분해가 가능할 수 있고 대장에 이를 분해하는 장내 세균이 있으면 분해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양이 많으면 대책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전세계 인구 중 상당수에서 성인에서도 락타아제 활성이 유지됩니다. 이는 락타아제 활성을 조절하는 LPH (Lactase-phlorizin hydrolase) gene 과 연관된 두가지 형태의 단일염기다형성 (SNPs,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 때문입니다. 즉 DNA 에 염기 하나가 치환되므로써 (C→T at position -13910 and G→ A at position -22018) 본래는 감소해야하는 락타아제 활성이 성인이 된 후에도 감소 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성인에서도 락타아제가 충분히 활성화 되어 유당을 분해할 수 있게 됩니다. 쉽게 말해 돌연변이가 일어나 성인인데 우유를 많이 먹어도 설사를 안하는 것이죠.
이 능력을 락타아제 지속성 (lactase persistence) 이라 부르는데 사실 포유류 가운데 인간만이 진화시킨 능력입니다. (물론 솔직히 성체에서 젖을 먹는 경우가 없는 다른 포유류는 필요 없는 능력이긴 하지만.... ) 그런데 이런 능력이 모든 인류 집단에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이 능력은 북유럽 인구에서는 91% 까지 보고되어 있지만 아시아인의 경우 10% 에 불과할 만큼 드물게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능력은 DNA 의 차이에서 비롯되므로 DNA 에 이런 변화를 일으킬 만한 어떤 일이 유럽인, 특히 북유럽인의 조상에서 일어났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가 아는 진화 생물학적 지식을 동원하면 이런 차이가 일어난 이유는 자연 선택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성인이 되서도 유당을 많이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더 많은 자손을 낳게 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분명 북유럽을 비롯해서 락타아제 지속성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 인구집단은 이것이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 확실합니다. 반면 락타아제 지속성이 있어도 생존에 불리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생존에 유리하지도 않은 집단은 아시아 인처럼 그 비율이 낮게 나타나겠죠. 만약 락타아제 지속성이 생존에 불리하다면 그 비율은 아주 드물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소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타당한 가설로 여겨진 내용은 우유가 햇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비타민 D 와 칼슘의 주된 공급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대의 북유럽 농부들은 그들의 식사에서 충분한 칼슘과 비타민 D 를 공급받기 힘들었고 따라서 이들에게 우유를 잘 섭취하는 것은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연 선택은 락타아제 지속성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이 내용은 상당히 그럴 듯한 가설로 지금까지 일부 텍스트에 정설처럼 쓰여 있기는 하지만 웁살라 대학의 Oddný Sverrisdóttir 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최근 발견된 신석기 유골의 증거를 토대로 이것만이 전부가 아닐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발굴된 8 구의 신석기인 유골에서 추출한 DNA 시료를 바탕으로 - 이 지역은 지금도 그렇듯이 햇빛이 대단히 잘드는 지역 - 락타아제 지속성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후손인 현재 스페인인의 상당수는 그 사이 락타아제 지속성을 진화시켰습니다. (연구팀에 의하면 이 샘플의 mDNA 는 이들이 현대 스페인인들의 선조라는 증거를 지지함) 일부 락타아제 지속성은 게르만 민족의 이동 등 민족이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해도 나머지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신석기 시대 이후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 이후 대체 스페인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서 락타아제 지속성이 진화했을까요.
연구자들에 의하면 락타아제 지속성은 단순히 칼슘이나 비타민 D 와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기아에서 훨씬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식량이 충분한 평상시에는 락타아제 지속성의 유무는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우유를 발표시켜 요거트를 만들거나 혹은 치즈를 만들면 유당 함유량이 줄어들어 락타아제 없이도 유제품을 웬만큼 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근이 와서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생존을 좌우하게 됩니다. 이 때는 생우유를 먹고 설사하는 사람보다는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생존에 유리합니다. 따라서 신석기 유럽인이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게 되면서 우유를 주 식량원으로 삼게 된 것이 락타아제 지속성이 햇빛이 부족한 북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나타난 이유일지 모릅니다.
사실 햇빛이 부족한 것이 락타아제 지속성을 진화시킨 유일한 선택압 (Selective pressure) 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햇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우유를 잘 소화시키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나름 중요한 선택압이지만) 왜냐하면 사실은 북유럽 외에 여러지역에서 락타아제 지속성을 진화시켰기 때문이죠. 이것은 아무래도 목축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 O. O. Sverrisdottir, A. Timpson, J. Toombs, C. Lecoeur, P. Froguel, J. M. Carretero, J. L. Arsuaga Ferreras, A. Gotherstrom, M. G. Thomas. Direct estimates of natural selection in Iberia indicate calcium absorption was not the only driver of lactase persistence in Europe.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014; DOI: 10.1093/molbev/msu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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