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 (이하 가스 공사) 가 2014 년 1월 1일 부터 도시 가스 요금을 평균 5.8% 인상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새해 선물도 아니고 하필 1월 1일 인상하기로 그 전날인 31일 발표한 이유는 아마도 1 년에 3 차례나 인상한다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한 고육 지책으로 보입니다. 도시 가스 요금은 이미 지난 2월 (평균 4.4%) 과 8월 (평균 0.5%) 인상된 바 있기 때문에 사실상 1 년 이내에 3 차례 인상인데 인상율을 합치면 사실상 10% 이상 이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상률은 주택 취사/난방용이 5.7%, 산업용이 6.1%, 영업용 1 (숙박, 식당업 등) 이 5.5%, 영업용 2 (목욕탕, 폐기물 처리소등) 이 5.8% 씩 각각 인상된다고 합니다.
(가스 요금 변화 폭. 단위는 원/MJ, 출처 : 한국 가스 공사 )
가스 공사에 의하면 주택용의 경우 4 인 가구 기준으로 월 4300 이 오르게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가스 사용량이 계절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게 되므로 1/2 월에 가스 요금은 이 이상 상승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가스 공사는 원전 가동 정지 등으로 인해서 가스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공급 비용의 90% 를 차지하는 원료 가스비가 상승해 이번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입니다. 인상은 산업 자원 통상부와의 협의를 통해 이뤄졌다고 하네요.
그런데 최근 천연 가스 시세가 크게 증가한 것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가스 요금이 인상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원전 가동 중지로 인해 대체 에너지인 가스의 수요가 증가했는데 이를 급하게 수입하려다보니 비싼 가격을 주고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 천연 가스 시장은 가스전 탐사/개발 후 공급 이뤄지기 때문에 주로 5 - 20 년 단위의 장기 계약이 이뤄지는데 급할 경우 1 년 미만의 스폿 (spot) 물량에 손을 대야 하고 이 경우 10% 정도 더 비싸진다는 것이 가스 공사측의 설명입니다. 참고로 원전 대체 전력 수급 및 올 겨울 도시 가스 수급 안정을 위해 추가 수입이 필요해서 수입한 물량은 158 만톤이라고 하네요.
아무튼 이번 가스 요금 인상과 앞서의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해서 일부에서 공기업 부실을 막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견이 나오자 정부에서는 그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해서 인상한 것으로 현재의 인상폭은 부채 비율 악화를 최소화한 수준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그말이 그말 같지만 아무튼 공기업 정상화를 위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먼저 하고 필요시 요금을 조정하겠다는 것이 현재 정부의 방침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달리 해석하면 결국 요금을 인상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기관들에서 발표한 바를 종합하면 상당수 공기업들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요금을 책정한 탓에 부채가 급증한 것으로 되어 있어 이른바 '요금 현실화' 는 결국 불가피 하기 때문입니다.
2011 년을 기준으로 원가보상률(총수입/총괄원가)은 전기 87.4%, 가스 87.2%, 도로 81.7%, 철도 76.2%, 수도 81.5% 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5-6 년간 이들 요금은 한번도 원가 보상률이 100% 를 넘은 적이 없어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결국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이를 반영할 경우 물가에 상당한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여론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요금 현실화는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할 수 있는 자구 노력을 다 하도록 공기업을 압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정부는 '2013~2017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서 총괄원가(적정원가+적정투자보수)를 회수하는 수준으로 요금을 현실화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시장 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실제 필수적인 재화와 자원, 서비스에 있어 정부의 직간접으로 간섭하고 통제하는 경우가 많아 어떤 의미에서는 계획 경제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엄밀한 의미의 100% 시장 경제 시스템은 없겠지만 말이죠. 아무튼 정부에서 전기, 수도, 가스, 도로, 철도, 의료 등의 요금을 사실상 100% 통제하거나 대부분 통제를 하고 있는데 물가 안정을 이유로 인상요인을 바로 반영하지 않아서 공기업 부실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해당 행정부에서는 물가 안정을 이룩할지 몰라도 결국 주요 공기업을 부실화시켜 그 다음 정권에서 원금 + 부채까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낳게 됩니다. 지난 정권에서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가 급증한 이유 중 하나는 공공요금 억제였습니다. 아무튼 지금 당장에 부채 규모가 너무 커져서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므로 정부에서는 요금 인상과 더불어 해당 공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기관명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
한국가스공사 | 17,864,518 | 17,772,344 | 22,300,998 | 27,971,442 | 32,252,753 |
(한국 가스 공사 부채총계 (단위 : 백만원) 2010년부터 K-IFRS의 도입에 따라 과거와의 단순 비교는 곤란. 출처 : 알리오 )
그런데 사실 물가 안정을 위한 요금 억제 말고 가스 공사가 부실화 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공기업 부실화를 이야기 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는 방만 경영이지만 사실 사연 없는 무덤이 없다고 각각의 공기업들이 부실화된 데는 다 사연이 존재합니다.
본래 한국 가스 공사의 부채는 2007 년말 기준 8조 7436 억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랬던 부채가 2012 년 말 32 조 2527 억원으로 증가한 이유를 갑자기 안하던 방만 경영을 해서라고 보기는 뭔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K-IFRS 도입으로 1:1 비교를 하기 곤란해도 대충 5 년새 4배가 늘었던 데는 뭔가 사연이 있을 법 합니다.
그 사연이란 2008 년부터 가스 공사가 공격적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했는데 (물론 당시 정부의 주요 치적 사업이 해외 자원 개발이었기 때문) 여기서 큰 손실을 봤다는 것입니다. 1996 년이후 가스 공사가 투자한 해외 자원 개발 규모는 6.3 조원었는데 이중 90% 인 5.9 조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5 년간 시행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는 엄청난 성과가 있는 것 처럼 홍보를 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 가스 공사는 부채 비율이 400%에 (2012 년 말 385%) 근접해 심각한 부실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 가스 공사는 2013 년 12월 16일 새벽에 공시된 2013 년 영업 실적 전망에 대해 '당기 순손실이 3422 억원' 에 달할 것이라고 정정 공시했습니다. 2013 년 1월 영업실적 전망에 대해 연매출 36조9204억 원에 영업이익 1조236억 원, 당기순이익 2993억 원 이라고 공시한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는 캐나다와 동티모르에 투자했던 가스전에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혼리버 광구에서만 3000 억원 이상의 평가손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실 가스 공사는 2013 년 1분기에도 캐나다 웨스트컷뱅크와 우미악 광구에서 2100억원의 평가손을 반영했습니다.
단기간 성과를 거두려고 무리하게 추진되었던 해외 자원 개발로 인해 아마도 가스 공사가 회수할 수 있는 자금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좀더 두고봐야 하는 점도 있긴 하지만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가스 공사는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 유전과 가스전등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가스 공사의 경우 임직원 전원의 2013∼2014년 임금인상분 및 올해 성과급 전액 반납 외에 2016년 말까지 해외지사 5개와 해외법인 4개를 청산, 해외 법인 근무 인원과 경비를 15% 감축, 2014 년 예산에서 비경직성 경비를 일괄 10% (약 200 억원) 감축하는 자구안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코레일과는 달리 가스 공사의 경우 요금의 90% 가 도입 원료비이기 때문에 인건비 및 일부 경비 감축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개발한지 얼마 안되는 가스전과 유전 중 팔 수 있는 것은 매각해 유동성 확보 및 부채 비율 축소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만약 부채를 보전하기 위해 요금을 인상한다고 하면 해외 자원 개발 실패를 비롯한 경영 실책에 인한 손실을 요금 인상으로 손쉽게 메꾸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므로 정부와 가스 공사는 발언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부채를 갚을 다른 방법이 제한적인 데다 아직도 원가 보상률에 모자란다고 이야기 하는 만큼 (2013 년 현재 몇 % 인지는 공개하지 않은 상태지만) 추가 요금인상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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