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1953 년 이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사나이 - H.M 의 비극


  의학사에서 매우 유명한 환자의 케이스들이 있는데 H.M 이란 이니셜로 알려진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 헨리 구스타프 몰라이슨 (Henry Gustav Molaison (February 26, 1926 -- December 2, 2008)) 는 특히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중대한 정보를 알려준 환자였습니다. 다만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비극이었습니다.


 1926 년 태어난 헨리 몰라이슨은 7살 겪은 자전거 사고 이후 아주 심각한 뇌전증 (epilepsy - 과거에 간질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질환으로 주기적인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 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1953 년, 그가 27 세 일때 헨리는 윌리엄 스콧빌 박사 (William Beecher Scoville) 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이 때 스콧빌 박사는 매우 급진적인 치료법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환자의 뇌전증의 주된 원인 부위라고 생각되는 해마 (Hippocampus) 및 양측 medial temporal lobe (MTLs) 를 절제하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실치 않았지만 환자의 뇌전증 발작이 매우 심해서 다른 선택이 없다고 생각한 스콧빌 박사는 수술을 제안했고 결국 헨리 몰라이슨은 1953 년 8월 25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수술에서 몰라이슨은 MTLs 및 양측 해마와 그 인접 구조물을 대부분을 제거 받았습니다. (anterior two thirds of his hippocampi, parahippocampal cortices, entorhinal cortices, piriform cortices, and amygdalae)


 이 수술로 다행히 심각한 뇌전증 발작은 멈췄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환자가 수술 이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헨리 몰라이슨은 수술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한 장기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해마가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첫번째 증거로 널리 연구되었습니다. 환자 개인에게는 물론 비극이었지만 - 일단 심각한 뇌전증도 비극이지만 이후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을 잃어서 평생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것도 비극 - 뇌신경 과학 발전에는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헨리 몰라이슨의 케이스를 집중 연구해서 사실 기억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환자가 주로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외현 기억 (explicit memory - 어떤 특정 사건. 예를 들어 작년에 해외 여행을 갔다든지 어제 아침에 뭘 먹었는지 기억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1953 년 이전에 있었던 일만 기억해 낼 수 있었으며 이후에 발생한 일은 아무것도 장기간 기억하지 못한채로 2008 년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즉 진행성 기억상실증 anterograde amnesia. 다만 환자는 실제로 수술 전 1-2 년 사이 일을 기억하는데도 약간 장애를 겪었음. ) 






 그러나 헨리 몰라이슨의 작업 기억 (working memory, 현재 주의를 기울여 의식하는 기억. 단기 기억 short term memory 와 비슷한 용어)과 절차 기억 (procedural memory - 어떤 기술을 연마하는 기억으로 자전거를 몰거나 운전을 하는 등의 절차를 기억하고 숙련되게 하는 것을 의마함) 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H.M 케이스는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매우 드문 사례로써 아주 집중적으로 연구된 사례입니다. 2009 년 그의 뇌는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고 캠퍼스 (UC San Diego) 에서 보관되었으며 이후 연구를 위해서 2401 개의 작은 절편으로 나뉘어 조직 슬라이드로 보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슬라이들을 다시 3D 로 재구성해 몰라이슨의 뇌에서 정확이 어떤 부분이 제거되었는지 분명하게 확인이 가능해졌습니다. 




(얇은 조직 슬라이드를 만드는 도중인 헨리 몰라이슨의 뇌  Image of the frozen brain at the level of the temporal lobes during the cutting procedure. Credit: Diego Mariscal) 



(각각의 슬라이드를 만드는 과정  Tissue sections mounted on glass slides before staining. Credit: Annese et al. )


 캘리포니아 대학 뇌 연구소의 Jacopo Annese 및 그의 동료 연구자들은 Nature Communications 에 이 3D reconstruction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토대로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H.M 케이스는 비록 헨리 몰라이슨이나 그를 치료한 윌리엄 스콧빌 박사 모두에게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스콧빌 박사는 이 일로 인해 큰 죄책감을 느꼈으며 1965 년에는 법정에 서기도 했음) 이와 같은 비극이 미래에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다면 연구는 지속되었되어야 겠죠. 기억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질 수록 알츠하이머 병과 같은 심각한 기억 및 인지 장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Jacopo Annese et al. Postmortem examination of patient H.M.'s brain based on histological sectioning and digital 3D reconstruction, Nature Communications 5, Article number: 3122 DOI: 10.1038/ncomms4122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에서 제한적인 효과만을 확인한 렘데시비르

   현재 렘데시비르는 인공 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 등 중증 코로나 19 환자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공급이 부족해서 갑자가 중증 코로나 19 환자가 늘어날 경우 수급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 (경증이나 무증상은 당연히 치료가 필요없거나 대증 요법 정도) 사용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에 급한 연구는 아니지만, 나중에 수급량이 많아지고 가격이 낮아질 때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연구 결과입니다.   렘데시비르 제조사인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다아애나 브레이너드 박사 ( Dr. Diana Brainard of Gilead Sciences )는 병원에 입원이 필요했던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 584명을 렘데시비르 5일, 10일 투여 실험군과 위약을 투여한 대조군으로 나눠 임상 경과, 사망 등 중요한 합병증 발생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조사했습니다. 연구 대상자의 40% 이상은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이 있었으며 평균 연령은 57세였습니다.   연구 결과 대조군의 2%, 5일 투여군의 2%, 10일 투여군의 1%가 사망했으나 사망자 수가 4명, 3명, 2명 정도로 통계적 차이를 판단하기에는 사망자 수가 적어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연구팀은 5일 투여군에서 임상 경과가 다소 호전되는 것을 판단했으나 10일 투여군에서는 통계적 차이를 검증할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에서 렘데시비르 투여는 확실한 임상적 이득이 없었습니다.     5일 투여량만 해도 가격이 3120달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등도 환자에서 렘데시비르 투여는 설령 공급이 원활하다고 해도 적절한 치료법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공급이 불안해 중증 환자 투여 물량 확보가 아쉬운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 연구는 렘데시비르보다 효과가 뛰어나면서 저렴한 차세대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필요성을 다시 보여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178Tb/s - 광섬유 통신 신기록 수립

  ( Lidia Galdino, lead researcher on the study. Credit: James Tye / UCL )  현재 가정에 들어오는 초고속 광통신은 10Gb/s 정도가 가장 빠른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 광섬유를 통해서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은 이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기술 가운데서는 이미 1Tb/s 이상이 속도를 지닌 것들이 많아 미래에는 테라 인터넷 시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 가운데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CL)의 리디아 갈디노( Lidia Galdino )가 이끄는 연구팀이 178Tb/s라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입니다.   광섬유 통신을 위한 주파수는 4.5THz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신기술은 9THz 벽도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연구팀은 16.8THz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주파수가 높을 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6.8THz의 주파수로도 178Tb/s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연구팀은  Geometric Shaping (GS) 방식으로 레이저 신호의 페이즈, 밝기, 편광 수준을 조절해 여러 신호가 서로 간섭 없이 전달되게 만들어 이런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항상 그렇듯이 바로 상용화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광섬유는 장거리 정보 전송이 가능해야 할 뿐 아니라 오류 없이 장시간 작동이 가능해야 합니다. 자꾸 에러가 생기거나 고장난다면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무용지물입니다. 이 단계를 극복하고 경제성까지 갖춰 실용화 되는 경우는 사실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Tb 급 대역폭을 지닌 광통신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테라바이트 급 정보도 순식간에 전송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은 분명합니다. 과거 전화선을 이용한 56K 모뎀에서 지금의 광섬유 기반 초고속 인터넷이 온 것처럼 속도는 계속 빨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 감염 위험성이 큰 동물은?

  ( A new genomic study ranks the potential of the SARS-CoV-2 spike protein to bind to the ACE2 receptor site in 410 vertebrate animals. Old World primates and great apes, which have identical amino acids at the binding site as humans, are predicted to have a very high propensity for binding ACE2 and are likely susceptible to SARS-CoV-2 infection. Credit: Matt Verdolivo/UC Davis )    코로나 19를 일으키는  SARS-CoV-2는 사스 및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박쥐를 자연 숙주로 삼는 베타 코로나바이러스 계통입니다. 따라서 본래 박쥐에 살던 바이러스가 중간 단계를 거쳐 사람으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SARS-CoV-2 역시 사람에만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종을 넘어 다른 포유류나 조류, 혹은 척추동물에 감염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경로인 ACE2 수용체는 다른 척추동물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SARS-CoV-2와 ACE2 수용체의 결합 수준은 동물마다 큰 차이가 있어 감염 위험도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UC Davis)의 조안나 다마스 (Joana Damas)와 그 동료들은 410종의 척추동물에서 ACE2 수용체 유전자를 조사해 코로나 19 감염 위험도를 조사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ACE2 수용체 전체가 아니라 25개의 아미노산 배열이 특히 결합력에 큰 영향을 미쳐 감염 가능성을 결정합니다.   연구 결과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사람과 가까운 침팬치, 고릴라, 보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