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같은 큰 중력을 가진 천체에 다가간 행성은 금방 조석력의 차이에 의해 산산 조각나게 됩니다. 블랙홀에 가까운 부위의 중력과 멀리 떨어진 부위의 중력이 다르므로 이 차이에 의해서 마치 잡아당기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죠. 산산 조각난 행성은 잘게 부서진 다음 일부는 블랙홀의 경계인 사상의 지평면 안으로 흡수되어 영원히 사라지고 나머지 일부는 제트(jet)의 행태로 뿜어져 나오게 됩니다.
물론 블랙홀에 다가간 후 그 주변을 공전하거나, 혹은 우주선이 플라이 바이를 하듯이 다시 튕거나가는 경우의 수도 가능하지만, 일단 가까이 가면 조각나는 운명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블랙홀의 중력이 클 뿐만 아니라 반지름(이 경우에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 매우 작아서 거리에 따른 중력의 변화가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석력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왠만한 천체는 글자 그대로 잘게 조각이 나게 마련입니다. 물질을 활발히 흡수하는 블랙홀 가까이에는 이와 같이 조각난 물질들이 원반 모양으로 모여서 강착 원반을 형성하며, 여기서 물질들이 다시 한번 곱게 갈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찰에 의해 열이 발생해서 관측이 가능해지죠. 이런 원리로 행성도 블랙홀에 잡히면 곱게 갈리게 됩니다.
유럽 우주국(ESA)의 과학자들이 구상성단 NGC 6388을 인테그랄(INTEGRAL) 감마선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했을 때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이 과정을 더 상세히 관측하기 위해 나사의 찬드라 X 선 망원경으로 다시 관측을 시행하자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행성을 잘게 갈아 잡아먹는 천체가 이 구상성단 중앙에 있는 블랙홀이 아니라 근방에 있는 다른 천체였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국립 천체물리학 연구소의 멜라니아 델 산토(Melania Del Santo)와 그 동료들은 나사의 찬드라 X선 망원경, 그리고 스위프트 감마선 망원경을 이용해서 이 미지의 천체를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이 현상을 일으키는 천체의 정체가 바로 백색 왜성이라는 사실을 밝혀졌습니다.
(구상성단 NGC 6388의 사진. In this Chandra image of ngc6388, researchers have found evidence that a white dwarf star may have ripped apart a planet as it came too close. When a star reaches its white dwarf stage, nearly all of the material from the star is packed inside a radius one hundredth that of the original star.
Image Credit: NASA/CXC/IASF Palermo/M.Del Santo et al; NASA/STScI)
백색왜성은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이빨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위에서 설명한 조석력의 차이 덕분에 행성을 잘게 조각내 먹어치울 수 있습니다. 백색왜성은 크기는 지구만 해도 질량은 별만큼 크기 때문에 그 표면 중력은 태양보다 1만 배나 큽니다.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백색왜성의 질량은 태양의 1.4배 수준으로 아슬아슬하게 백색왜성과 중성자별의 경계에 걸쳐있습니다. 곱게 갈린 행성의 질량은 지구의 3배 정도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행성은 백색왜성이 된 별이 살아있을 때, 그 주변을 공전하던 행성이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별의 생명이 끝나고 백색왜성으로 축소되는 순간까지 수십억 년 이상을 살아남은 행성이지만, 결국 다 끝나고 나서 백색왜성에 삼켜지는 운명이 된 셈입니다.
아마도 먼 미래 지구의 운명이 이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구는 1)적색 거성 상태에서 태양에 삼켜지거나 2)질량을 잃은 태양에서 더 멀어진 위치를 공전하거나 3)운이 없으면 백색 왜성 상태의 태양쪽으로 끌려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3번째는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아보이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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