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손은 뇌와 함께 진화했습니다. 복잡한 손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발달된 두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조작을 하는데 특화된 손이 필요합니다. 머리로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것을 구상한 후 손으로 이를 구현하는 작업은 모든 동물 가운데서 인간이 최고로 발달시킨 능력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훈련을 잘 시켜도 침팬지가 운전을 하거나 타이핑을 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 뇌뿐만 아니라 손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런 가정에 의문을 지닌 과학자들도 존재합니다. 일부에서는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들도 생각보다 물건을 쥐고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논쟁을 하는 이유는 사실 고릴라나 침팬지에게 운전이나 도구 사용법을 가르키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과거 인류의 조상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만약 현재의 영장류가 도구를 생각보다 능숙하게 사용한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역시 그렇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예일 대학의 로봇 공학자인 토마스 페이스(Thomas Feix)와 아론 달러(Aaron Dollar), 그리고 켄트 대학의 인류학자 트레이스 키벨(Tracy Kivell of the University of Kent and the Max Planck Institute for Human Anthropology), 엠마뉴엘 포데벳(Emmanuelle Pouydebat of the French National Centre for Scientific Research)은 현생 인류, 호미닌(hominin), 그리고 다른 영장류의 손가락의 모델링을 통해서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를 비교했습니다.
(고릴라와 인간의 쥐는 동작. This figure shows samples of the ability of a gorilla and a human to grip and move an object. The dots indicate positions in which the object can be gripped.
Credit: Yale University)
Credit: Yale University)
이 운동 모델링(kinetic modeling)에 의하면 인간처럼 긴 엄지 손가락과 넓은 운동범위를 가진 손가락 관절 없이도 (위의 비교를 보면 인간이 상대적 긴 엄지를 지녀 마주보고 쥐는 동작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생각보다 물건을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인류의 오래된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도 아마 이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도구를 잘 다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꽤 논쟁이 되는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분명 인류의 오래된 조상들은 석기를 사용하기에 앞서 나무를 이용해서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것들은 유물이나 화석으로 남기가 매우 곤란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인류의 조상이 어느 시점부터 얼마만큼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했는지는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려운 논쟁 가운데 하나입니다.
연구팀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도 손재주가 좋았을 것이며, 석기를 다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달된 손을 지녔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 내용이 쉽게 증명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400만년전 모노리스와 조우한 후 동물의 뼈로 사냥을 하는 인류의 조상이 나옵니다. 이 때 나온 인류의 조상은 배우들이 분장을 한 것이었는데, 시대를 감안하면 분장이 매우 잘 되긴 했지만, 역시 손은 사람손이라 도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죠. 문제는 당시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들의 손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시절 인류의 조상은 도구를 지금의 침팬지보다 훨씬 잘 다뤘을까요? 아직은 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 T. Feix, T. L. Kivell, E. Pouydebat, A. M. Dollar. Estimating thumb-index finger precision grip and manipulation potential in extant and fossil primates.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015; 12 (106): 20150176 DOI: 10.1098/rsif.2015.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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