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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일 금요일

미국의 첫 흑인 상원 의원 - Hiram Rhodes Revels





(미국의 첫 흑인 의원들. 왼쪽에서 부터 하이람 레벨 (상원, 미시시피), 나머지 의원들은 모두 하원, 벤자민 터너 (알라바마), 로버트 드라지 (사우스 캐롤라이나) 조시아 웰 (플로리다), 제퍼슨 롱 (조지아), 요셉 레이니 (사우스 캐롤라이나), 로버트 엘리엇 (사우스 캐롤라이나) First Colored Senator and Representatives in the 41st and 42nd Congress of the United States." (Left to right) Senator Hiram Revels of Mississippi, Representatives Benjamin Turner of Alabama, Robert DeLarge of South Carolina, Josiah Walls of Florida, Jefferson Long of Georgia, Joseph Rainey and Robert B. Elliot of South Carolina.)


 위의 삽화는 1872 년 그려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의외일지 모르지만 남북 전쟁 직후 미국에는 흑인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져 상하원 모두에 흑인 의원 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아무튼 거의 100 년간 흑인 의원들이 거의 없었고 특히 상원은 진짜로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에 비해 1870 년대 미 의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흑인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미 의회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19 세기 (사실 20 세기 초만 하더라도 그랬지만) 에는 인종에 대한 견해가 현재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대다수 교육 받은 백인들은 인종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었고 유색인종 (주로는 흑인) 에게 백인과 같은 능력이 있다거나 혹은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쪽은 당시로써는 상당히 급진론자에 속했습니다. 이 점은 남북 전쟁을 전후로 한 북부나 남부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물론 남부는 노예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인종간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북부에서도 노예제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흑인에게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엊갈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북부의 집권 공화당은 전쟁 만큼이나 곤란한 전후 처리 및 재건 (Reconstruction) 이라는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여기에 일부 의회 급진파들은 (태디어스 스티븐스(하원, 펜실베니아) 와 찰스 섬너 (상원, 매사추세스) 등이 중심) 북부에 반기를 든 남부인들의 공민권을 박탈하는 과격한 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미국을 다시 재건해야 하는 링컨 대통령은 훨씬 온건한 안을 선호하므로써 - 가능하면 이전 주들을 다시 연방에 복귀시키는 것 - 의회와 대통령의 갈등이 점화되었습니다. 


 결국 웨이드 - 데이비스 법안 (Wade - Davis Bill) 이라는 절충안이 등장했는데 링컨 대통령이 암살 당한 후 후임인 존슨 대통령이 결국 그 내용과 유사한 법안을 실행에 옮겨 5 개 군사 지역으로 재분류된 남부 주들이 다시 제헌 의회를 세우고 (다만 이전 북부 정부를 적대시 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구성) 남부 주들을 새롭게 재건해 조건을 충족시켜야 미 연방에 다시 가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 해방 같은 조건, 그리고 수정헌법 13.14.15 조 )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흑인들에 대한 권리 및 참정권이 다시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로 재건된 남부 주들 역시 흑인 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1865 년에서 66 년 사이 남부 주들 사이에서 흑인 단속법 (Black Codes) 들이 생겨나 지역 관리들에게 흑인 실업자를 붙잡아 부랑죄로 벌금을 부여하고 벌금을 납부하기 위해 (당시 흑인 부랑자는 대부분 입은 옷이 재산의 전부여서 벌금을 낼 수 없었음) 백인 고용주에게 고용살이를 보낼 수 있는 노예제를 연상하게 만드는 법들이 시행되자 다시 북부와 마찰이 불가피했습니다. 


 북부는 남부를 5 개 군사 지역으로 나누고 올리버 하워드 (Oliver O. Howard) 장군의 지휘하에 육군 소속의 흑인 해방국 (Freedmen's Bureau)  를 만들어 흑인을 본래 있던 토지에 가능한 정착시키고 해방 노예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고 제한 적이지만 흑인의 교육을 위한 학교도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전후 혼란스러운 사정에서 350 만의 남부 노예를 관리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공화당이 중심이 된 북부 - 이 시기에는 남부 주들은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미국 의회 - 는 1866 년 제 1 차 민권법 (Civil Right Act of 1866) 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미국 흑인을 미국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 권리를 보호하는 역사적인 법안이었습니다.  


 여기에 흑인의 참정권을 인정하는 3 개 조항의 수정 헌법이 의결되고 남부 주들이 군정 상태에서 벗어나 연방에 재 가입하기 위해서는 이를 모두 비준해야 했으므로 사실 1870 년에 법적으로 흑인은 물론 모든 소수 인종이 백인과 동등한 참정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1865 년에 통과된 수정헌법 13 조 (Thirteenth Amendment to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는 노예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1868 년에 통과된 수정 헌법 14 조 (Fourteenth Amendment ) 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사람 모두에게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당시에는 남자만 시민권이 존재) 부과하며 이를 어기는 주는 벌칙을 받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부를 도운 전과가 있는 사람의 공직 진출을 금지하는 조항도 있음) 마지막으로 1870 년에 통과된 수정 헌법 15 조  ( Fifteenth Amendment ) 에는 인종, 피부색, 과거의 예속에 의해 시민권을 부정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1870 년 모든 주가 이를 비준했고 미 연방은 다시 남부주를 모두 흡수하게 됩니다. 법적으로는 흑인의 참정권 문제는 해결된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흑인들의 참정권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선거에 나갈 만큼 교육 받은 흑인은 커녕  투표를 할 줄 아는 흑인 조차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1870 년 초 7 명의 흑인 의원 (상원 1 명, 하원 6 명) 이 탄생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첫번째 흑인 상원 의원이 된 사람은 하이람 레벨 (Hiram Rhodes Revels) 로 본래 AME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 소속의 성직자였습니다. (나중에 소속을 Methodist Episcopal Church 로 변경) 당시 흑인 지도자들 가운데는 성직자가 적지 않았는데 흑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로 성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그는 (순혈 흑인은 아니고 백인 혈통이 섞여 있음) 그는 존경받는 흑인 지도자로 1870 년 미시시피 주 상원의원으로 뽑히게 됩니다. 미국에서 첫 흑인 상원의원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장면이었지만 100 여년 후 블랙 케네디로 불리며 환호와 축복 속에 자리에 오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는 매우 다른 상황에서 의석에 앉게 됩니다. 


(U.S. Senator Hiram Rhodes Revels, the first African-American in the Congress. Library of Congress description: "Hiram R. Revels of Miss."  )


 당시 레벨은 초기 흑인 의원들 처럼 공화당이었는데 (지금과는 반대로 당시 공화당이 흑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물론 링컨이 공화당 소속이고 공화당이 노예 해방 전쟁을 주도했기 때문) 공화당 내부에서는 흑인 의원과 동석하는데 반대하지 않았지만 남부 민주당이 이를 반대하면서 흑인 의원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법정 공방으로 번지게 됩니다. 즉 1857 년 당시 미국 대법원의 판결 (드레드 스콧 판결 Dred Scott Decision ) 에 따라 아프리카인의 후예는 미국 시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이에 따라 레벨이 미 상원 의원이 되는데 필요한 시민권 기간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공격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흑인과 상원 의석에 같이 앉을 수 없다는 일부 백인 의원들의 본심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벨과 그 지지자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 미 상원에 진출하는 첫번째 사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만약 여기서 백기를 들면 단순히 의원직이 무산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흑인들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백인들에 동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드레드 스콧 판결이 순수 흑인 혈통에 대해서 못밖았을 뿐 일부 백인 혈통도 있는 하이람 레벨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인종 차별 철폐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레벨은 더 근본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과 그 결과로 탄생한 수정 헌법들이 전쟁 전에 이루어진 판결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흑인 혈통이라는 것이 참정권에 아무런 제약을 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당시 상원에서 투표를 통해 레벨의 의원직을 인정했고 그는 역사적인 첫번째 흑인 상원 의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전 미시시피 주 상원 의원이자 남부 연합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 (Jefferson Davis) 를 오셀로에 나오는 악역 아이고 (Iago) 로 분장시키고 그가 레벨이 의석에 앉는 모습을 보면서 처량하게 자리에서 떠나는 그린 풍자 삽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Drawing from Harper's Weekly (New York) April 9, 1870, page 232 showing Jefferson Davis (as Iago from Othello) and Hiram Revels. ) 

 하지만 이후 역사는 한동안 후퇴하게 됩니다. 남부가 재건되면서 남부 백인들이 과거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흑인들의 참정권을 매우 계획적으로 방해했고 더 나아가 흑인들의 교육 및 소득 수준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어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2 번째 흑인 상원 의원인 블랑쉬 브루스 (Blanche Bruce 1875 - 1881, 미시시피) 가 나오고서 3 번째인 에드워드 브룩 (Edward Brooke 1967 - 1979, 메사추세츠) 까지는 거의 한세기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남부 백인들은 흑인들의 참정권을 박탈하기 위해 문맹인 사람은 투표를 할 수 없는 조항을 만들었는데 (흑인들은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함) 당시 문맹률이 높다보니 상당수 백인들도 투표권을 가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할아버지 조항 (Grandfather Clause) 라는 기발한 예외조항이 생겼는데 만약 1867 년 이전에 조부가 투표를 하면 손자들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예외 조항으로 무슨 근거인지는 알수 없지만 아무튼 당시에 흑인에게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에 흑인의 투표권을 막는 매우 유용한 조항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흑인의 정치 참여를 막는 조항들이 신설되어 사실상 미국 수정헌법 13/14/15 조는 그 효력을 상실하다 시피 한 것이 흑인 민권 운동이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무튼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이 널리 퍼진 20 세기 후반에도 흑인 민권 운동이나 참정권 운동이 간단하지 않았는데 19 세기에 이미 흑인으로써 의회에 진출한 사건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먼 바다 건너 외국의 이야기라도 이 이야기가 저에게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비록 아주 짧은 (대략 1 년 정도 보궐 선거 자리와 비슷했음) 임기를 위해 온갖 차별을 이기고 미 상원 의석에 앉았던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노예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흑인들이 열등하다는 생각을 가진 백인이 절대 다수이던 시절 흑인으로써 상원 의석에 앉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것 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질만 합니다. 레벨은 짧은 임기 후 흑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교육에 나머지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Alcorn State University 의 초대 총장이기도 합니다) 정말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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