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중해의 작은 나라인 키프로스 (Cyprus) 가 갑자기 국제 금융 시장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좋은 내용은 아니고 구제 금융과 뱅크런 우려 때문입니다. 키프로스는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문명이 발달했던 섬으로 여러 문명의 지배를 받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화에서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생 장소로 알려질 만큼 아름다운 지중해의 섬이지만 여러 강대국에 의해 교대로 지배당하는 등 그때 그때 역사에 따라 풍요와 고난을 함께 겪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터키계와 그리스계와의 내분으로 인해 면적이 1 만 제곱킬로미터 (남한의 1/10) 이 채 안되는 작은 섬나라가 분단되기도 했습니다. 키프로스는 역사적으로는 그리스와 연관이 깊고 주민들도 그리스계가 많으나 북키프로스에는 터키/이슬람계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그리스계가 그리스와 통일을 추진한 1974 년 이후로 터키군이 북키프로스에 주둔해 나라가 분단된 상황입니다.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현재는 전쟁위협은 그다지 높지 않은 지역 (지금 남북한에 비해서)이며 양측 모두 EU 경제권에 속해있는 나라입니다. 2004 년에는 평화적 투표로 통일 될 뻔하기도 했죠.
2013 년 현재 구제 금융으로 문제가 되는 지역은 키프로스 남부의 키프로스 공화국 (Republic of Cyprus, 섬 전체 면적의 2/3 를 차지하며, EU 에도 가입한 유로존 국가. 그리스계가 주된 구성원으로 2008 년부터 유로화 사용. 참고로 북부는 터키만 인정한 국가로 RTNC (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 ) 라 부르며 섬 면적의 1/3 정도) 으로 그리스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키프로스 (남키프로스) 는 본래 그리스와는 달리 국가재정이 적자 투성이도 아니었고 엄청난 빚더미 위에 올라있지도 않았습니다. 지중해의 대표적인 휴양지이자 구리 산지이고 해운 및 금융 산업으로 한동안 잘 나가던 선진국이었던 키프로스는 2012 년 국가 경제가 기울어지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키프로스와 유로존의 평균 부채 수치. 본래는 부채가 그렇게 많은 국가는 아니었음 http://en.wikipedia.org/wiki/File:Cypriot_debt_and_EU_average.png )
그 중요한 이유는 사실 유럽 재정위기로 키프로스 역시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키프로스의 문제점은 100만 정도되는 인구와 작은 경제 규모 (대략 GDP 240 억 달러 (2012) 수준) 에도 불구하고 금융 산업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사실 금융 산업이 잘 발달된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되는데 그렇다보니 유럽 재정 및 금융 위기, 특히 그리스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키프로스 은행들의 예금 총액은 700 억 달러에 달하는 수준으로 이 작은 나라의 GDP 수준에 비해 상당히 과도한데 그 이유는 해외에서 예금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러시아가 200 억 달러 이상의 돈을 투자한 상태로 언뜻 이해가 안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흘러들어온 돈들은 상당수가 검은 돈으로 해외 자금 도피처로 규제가 느슨하고 자금 세탁이 용이한 키프로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금융 기관이라는게 자금을 쌓아만 둘수는 없는 법이죠. 투자를 하든지 빌려주든지 할 것입니다. 불행히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수 자금이 그리스 측에 투자되었다가 그리스 구제 금융과 대규모 헤어컷등이 진행되면서 상당수는 회수하기 어려운 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확한 손실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엄청난 액수인 것 만은 확실합니다. 결국 신용 평가 기관들은 키프로스 은행들의 신용 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내렸으며 키프로스 자체의 신용등급도 추락했습니다.
이미 이것이 2012 년 여름에 이 섬나라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트로이카 (IMF, EU, ECB) 가 대표와 구제 금융 협상을 하는 한편 긴축 정책과 세금인상 - VAT, 담배, 기름, 복권, 자산 등 - 을 단행했으나 쉽게 회복될 만한 손실을 입은 게 아닌 키프로스 은행들은 결국 더 위기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GDP 에 비해 금융 기관들의 자산 규모가 크다보니 자체적인 구제노력으로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2013 년 3월 16일 EU 와 IMF 는 100 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결정하고 (이로써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어 다섯번째 구제 금융 국가로 등장) 대신 키프로스측에 이에 대한 조건으로 예금 과세를 결정했는데 - 이 과세 조치로 58 억 유로 정도를 마련할 예정 - 이것이 더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방안은 긴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 회성으로 10 만 유로 이상 예금에는 9.9%, 그 미만에는 6.7% 를 과세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 억 예금을 했던 사람에게 10% 를 과세하겠다고 하면 당장 은행에서 돈을 빼서 현금으로 보관하는 게 손실을 줄이는 길이 되겠죠. 예상한대로 심각한 뱅크런 조짐이 보이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오히려 이 조치로 키프로스 은행들이 더 심각한 부실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조치들에 대해서 여러 경제 전문가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데 왜냐하면 1 회성이라도 예금 과세를 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면서 역시 재정 및 은행 부실로 어려움을 겪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국가에서까지 뱅크런을 파급시킨다는 것은 아직은 시기 상조이나 예금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한편 이 조치는 키프로스 국내에서도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표결을 통과할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며 설령 통과해도 러시아의 극심한 반발과 향후 키프로스 은행과 유로존내 부실 은행의 뱅크런을 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결국 인구 100 만 정도 되는 작은 나라가 국제 금융 시장을 흔드는 악재로 탄생한 셈인데 누구보다 키프로스 국민들에게 달갑지 않은 상황일 것입니다. 다만 손실 규모 자체는 키프로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도 유로존이나 세계 경제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할 순 없기 때문에 이를 유럽 재정위기의 또 다른 화약고로 받아들이는 건 너무 민감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네요.
다만 '신뢰의 문제' 라는 측면은 간과하기 힘들 순 있겠습니다. 예금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예금 과세라든지 유로존의 결속력에 대한 의구심, 유로존의 다른 취약 국가들에 대한 불신등이 그것이겠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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