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반 뇌제 - 과연 정신 질환이 있었을까 ?
역사상 100% 분명하게 입증은 할 순 없는데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이슈들이 있다. 예를 든다면 과연 이반 뇌제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런 종류의 것이다. 일단 이반 뇌제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본다면 그의 잔인성과 주변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앞에서 다뤘듯이 어린 이반 4 세는 부모를 어릴적 잃고 난 후 탐욕스러운 보야르들의 틈속에서 자랐다. 그들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는 이반 4세를 떠받드는 척 했지만 뒤로는 그를 무시하고 학대했으며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그들이 이반 뇌제를 위해서 한 좋은 일이 있다면 서로간의 권력 다툼 속에서 누구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므로써 결국 이반 뇌제가 성년이 될 때쯤 권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점 정도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반 뇌제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매우 잔인했으며 작고 힘없는 동물들을 죽이는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반 뇌제가 어린 시절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반 4세의 초기 치세는 '훌륭한 이반' 의 치세라고 불릴 만큼 관용과 이해의 정신이 넘쳐흘렀다. 비록 이반 뇌제가 평생토록 차르의 절대적 권력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살았긴 했지만 적어도 1560 년대 이전에는 사방에 배반자가 넘치고 이를 모두 잔인하게 숙청하지 않으면 안되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린 건 아니었다.
이반 4 세가 뇌제의 낌세를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 황후인 아나스타샤가 살아있던 1553 년이었다. 이해에 이반 뇌제는 중병을 앓고 쓰러지는데 여기서 이반 뇌제의 사촌인 블라디미르 안드레예비치 (Vladimir Andreyevich, 혹은 Vladimir of Staritsa) 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다. 그는 이반 3 세의 손자이자 안드레이 바실리 3 세의 형제인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Andrey Ivanovich) 의 유일한 아들로 쉽게 말해 이반 뇌제와는 사촌지간이었다. 그가 1533 년생이므로 사촌 동생이었다.
블라디미르는 1553 년까지 러시아의 황족으로 평안하고 무사안일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뜻하지 않던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해 이반 4세가 중병에 걸려 쓰러진 탓이었다. 당시 이반 뇌제는 자신이 오래살지 못할 것으로 우려해 신하들에게 1552 년에 태어난 어린 아들인 디미트리 (그런데 드미트리가 사실 1 년만에 죽었다) 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어린 지배자 때문에 나라가 크게 흔들린 것을 봐서였을까 ? 보야르는 물론이고 이반 뇌제가 믿었던 신하들마저 한살도 안된 드미트리 보단 블라디미르를 차기 차르로 생각하고 이를 거부했다. 만약 여기서 이반 뇌제가 그냥 죽었다면 적어도 이반 4세는 뇌제라는 별명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보야르들과 특히 블라디미르에게는 매우 딱하게도 이 사건 이후 이반 4세는 곧 회복했으며 그해 죽은 것은 오히려 이반의 어린아기인 드미트리였다.
이 사건 이후 이반 뇌제의 마음속에는 과거의 의심이 다시 되살아 났음이 분명했다. 당대의 기록에 의하면 이반 뇌제가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뀐 것이 이 사건 이후라고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던 보야르들이 자신이 약해지면 다시 본색을 드러낼 것이고 지금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신하들이라도 언제든지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믿음이 이 시기의 이반 뇌제에 다시 나타났을 지도 모른다.
이 1553 년에 이반 뇌제가 심한 열병을 앓고 나서 뇌에 이상이 생겼다든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배신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망상 장애 (Delusional disorder : 괴이하지 않은 망상이 주 증상이며, 다른 정신과적 질환보다는 사회적 직업적 기능이 상대적으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이는 정신 질환) 을 본래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통해 더 확신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의 우리로써는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이런 의문은 계속해서 제기되곤 했다.
다만 1560 년대 이후와는 달리 적어도 이 시기에 이반 뇌제는 이성을 어느 정도는 유지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논의를 동시대의 조선 왕조에서 했다면 블라디미르는 대역 죄인으로 최소한 사약이나 다른 극형을 받든지 했을 것이고 아직 왕이 죽지도 않았는데 차기 왕으로 왕의 아들도 아니고 사촌을 옹립하려는 논의를 했던 신하들은 역모죄로 모두 국문 (鞫問 : 중대한 죄인을 국청(鞫廳)에서 심문하던 일 ) 을 거친 후 그 죄에 따라 극형에서 유배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하던 이반 뇌제는 블라디미르를 영지인 스타리차 (Staritsa) 에서 소환한 후 그를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도록 강요했다. 블라디미르는 이후 차르의 끊임없는 의심을 받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 시기에는 그래도 자신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사실상 이반 4세가 보이는 위치에 유배를 당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점은 차르가 감시할 수 있는 모스크바에 잡아두는 것이 영지에서 자신의 신하들과 있는 것보다 더 불리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는 이반 4 세가 죽는 경우 그 아들에 대해서 섭정을 맡겠다는 (즉 차르의 자리에 오르지 않겠다는) 조약에 강제로 서명했고 자신의 신하와 다른 보야르와의 접촉도 최소화 시킨 상태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결혼을 할 수 있었고 오프리치니나 (Oprichinina) 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아무튼 귀족으로써 지위도 잃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지만....
심각한 병에서 회복된 1553 년 이후 이반 4 세는 점점 자제심을 쉽게 잃고 걸핏하면 분노를 자제하지 못했으며 주변을 차츰 의심하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에 대한 의심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마침내 차음 이반 4 세는 자신의 신하들과 보야르들이 자신을 배신할 음모를 꾸미고 있기에 이를 사전에 분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피해 망상적인 증세를 나타내게 된다.
진짜 이반 뇌제가 정신 질환이 있든 아니든 간에 다소 피해 망상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은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하지만 또 한가지 고려해야할 점은 이반 뇌제의 숙청 작업이 단순히 '망상' 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점을 들어 이반 뇌제의 숙청 작업을 그냥 정치적인 계획의 산물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즉 이반 뇌제가 주로 숙청한 대상은 주로 보야르나 혹은 잠재적인 위협세력이 될 수 있는 유력자나 도시들이었다. 잔인한건 사실이지만 아무 목적없이 대량 살육을 했던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 살육은 '차르의 전제 권력 강화' 라는 목적하에 진행되었으므로 이를 정신 질환의 산물로 결론 짓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결론일 수 있다. 어쩌면 정신적인 문제와 정치적 목적이 결합되어 더 엄청난 대숙청을 낳았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추측으로 결론을 내릴 순 없는 일이기도 하다.
(1897 년 빅토르 바스네쵸프의 이반 뇌제. 상상도이긴 하지만 이반 뇌제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회화이다. 이 그림에서는 의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다른이를 바라보는 이반 뇌제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있다. Viktor Vasnetsov. Tsar Ivan The Terrible. 1897. Oil on canvass 247*132 Tretyakov Gallery )
다른 한편으로 누군가 끊임없이 자신과 국가에 대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이를 잔인한 숙청을 통해 분쇄해야 한다고 믿은 점은 다른 러시아의 지도자 한명을 연상시키게 하는데 그것은 바로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끊임없이 '소비에트와 공산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음모' 를 언급했고 그의 충실한 부하들은 무고한 이들을 이 죄목으로 잔인하게 숙청하거나 굴락에서 노예 노동력으로 혹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스탈린은 이반 뇌제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잔인한 숙청과 보야르라는 계급 숙청이 스탈린의 의견과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23. 숙청의 시작
아무튼 이반 뇌제는 1550 년대 말 이후의 대숙청의 징조를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리보니아 전쟁으로 사실 그의 충실한 신하들과 보야르들은 리보니아 전쟁을 반대했었다. 거기에는 나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서쪽에 위치한 여러 유럽 열강은 만만치 않은 상대인데다 해군 없이는 설령 발트해로의 창이 열리더라도 쉽게 서방으로의 창이 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미 강적이 사라진 동쪽의 시베리아는 손쉽게 넓은 영토를 얻을 수 있었으므로 더 좋은 상대로 생각되었다. 여기에 남쪽의 크림 한국이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러시아의 국경선을 노렸으므로 서쪽으로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 역시 위험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반 뇌제는 결국 러시아가 성장하려면 서방으로의 창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표트르 대제가 등장하기 한 세기도 훨씬 전에 깨닫고 있었다. 만약 리보니아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다면 이반 뇌제의 숙청은 더 늦게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리보니아 전쟁이 점차 러시아에 어렵게 진행되자 이반 뇌제는 그의 신하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의견에 반대한 만큼 리보니아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반 뇌제의 숙청의 시작은 오프리치니나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희생양은 '훌륭한 이반의 통치 기간의 일등 공신이었던 궁정 관리 알렉세이 페도로비치 아다셰프 (Aleksey Fedorovich Adashev) 이었는데 사실 그는 카잔 한국 점령에서도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리보니아 전쟁에서 초반에 러시아 군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리보니아 전쟁을 계속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앞서 1553 년의 결정적인 시기에 차르의 뜻에 따르지 않았었다. 여기에 1559 년 굴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리보니아 기사단과의 정전협정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므로 리보니아 전쟁이 차르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아다셰프는 차르의 충복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바뀐다. 아다셰프는 1560 년 긴급 체포된 후 그 다음해에 감옥에서 죽는다. 본래 아다셰프는 보야르라고 부리기도 어려운 낮은 출신의 궁정 관리로 이반 뇌제 집권 초기 시절 잘 나갔으나 결국 10 여년만에 몰락하고 만 것이었다.
아다셰프와 같이 몰락한 인물로는 역시 훌륭한 이반의 통치 시기에 이반 뇌제를 도운 사제 실베스테르 (Sylvester)가 있었다. 그 역시 1553 년에 이반 뇌제의 아들인 드미트리에 충성을 서약하기 거부했었다. 물론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시 어린 아기가 왕좌에 오를 경우 막 회복된 러시아의 국내 정치가 다시 혼란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령 실베스테르나 아다셰프의 의도가 선량했더라도 (물론 그들 역시 차기 지배자에게 잘 보이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좋게만 풀릴 순 없는 일이었다. 실베스테르 역시 투옥되었는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의 죄목이다.
황후인 아나스타샤가 죽은 후 이반 뇌제는 그녀가 독살되었다고 확신하고 평소 싫어하던 그 범인으로 지목한 보야르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거나 처형했다. 그런데 차르는 이들도 이 음모에 가담했다고 확신하고 임시 재판으로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들은 사실 진술을 위한 법정 출두조차 할 수 없었으므로 이들은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없었다. 다만 실베스테르 본인만은 사제라는 신분덕에 죽음만은 면해서 유배지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아다셰프와 실베스테르의 친척, 동료, 친구들 상당수가 같이 연좌되어 재판도 없이 처형되거나 처벌 받았으므로 1560 년과 그 다음해는 러시아는 피로 물들었다.
여기에서 한가지 이반 뇌제와 스탈린과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언제 어디서든 반역자들의 음모를 발견해서 이들과 연루된 사람들을 대량으로 숙청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들 중 상당수는 아무 혐의나 죄도 없이 처형되었으며 이때 마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냥 연루되어 죄없이 처벌받았던 것도 스탈린 시절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아무튼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숙청이 시작도 하기 전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반 뇌제는 점점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고 화를 냈으며 보야르와 신하들의 반역과 음모를 항상 생각해냈으므로 곧 러시아 전역이 피로 물들 차례였다. 다시 리보니아 전쟁의 이야기를 한 후 여기에 연관된 쿠릅스키 공 (Knyaz Andrey Mikhailovich Kurbsky ) 과 오프리치니나의 이야기를 진행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 http://blog.naver.com/jjy0501/10018400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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