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이 내용은 게임의 캠페인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원치 않으시면 뒤로 가기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지난 2013 년 7월 26 일 러시아의 게임 퍼블리셔인 1C - Softclub 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 (Company of Heroes 2) 의 러시아내 유통을 중단했습니다. 러시아 내에서 강력한 부정적인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렐릭 (Relic) 의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이하 COH 및 COH2) 는 2006 년 등장했을 당시 큰 호평을 받으면서 실시간 전략 (RTS) 게임의 기대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첫번째 COH 원작은 미군과 독일군과의 전투를 다루고 있는데, 비록 미국 중심 시각이긴 해도 독일군을 다른 2차 대전 게임들 보다 더 부정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확장팩인 오퍼징 프론트 (Opposing Fronts) 이나 테일스 오브 밸러 (Tales of Valor) 의 경우 영국군 외에도 독일군을 다루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도 독일군을 특별히 더 나쁘게 묘사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COH2 는 출시 이후 러시아에서 구 소련군을 비하하고 러시아인들의 애국심을 형평없이 깎아 내린 작품이라는 비난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소련군임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게임의 악당은 독일군이 아니라 소련군 장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게임에 등장하는 소련군은 조국을 지킬 의사가 약간이 아니라 전혀 없어 보입니다.
(게임내 캠페인의 주인공은 양심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지만 문제는 그의 상관이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실 2 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종종 후퇴 불가 명령을 내리거나 명령에 불복종하는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처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소련군 (이 중 상당수는 물론 러시아인) 이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조국을 불시에 침공한 독일군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는 대신 상관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상당수 병사들이 애국적으로 전투에 임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 그들은 이것을 큰 명예로 생각했습니다.
러시아 인들은 아직도 2차 대전 중 독소 전쟁을 대조국 전쟁 (Great Patriotic War (Russian: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이라고 부르며 여기서 러시아가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승리를 거둔일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잊지 않았다기 보단 2 차 대전 전승 기념일은 지금도 러시아의 가장 큰 축제이자 기념일로 자리잡았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명예로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005 년 5월 9일. 60 주년 대독 전승 기념일 행사. 이 기념 퍼레이드는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러시아에서 가장 큰 기념 행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T-80BV tanks, Red Square, Moscow. Military parade celebrating the sixtieth anniversary of victory in World War II. Credit : ITAR-TASS )
하지만 서방측 영화나 게임들에서는 과거 냉전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묘사한 영향이 아직도 남아서인지 소련군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 (Enemy at the Gate) 도입부에서 소련군은 오합지졸에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그나마 가진 기관총도 독일군을 향해서가 아니라 후퇴하는 아군을 향해 난사하는 군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각은 COH2 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였는지 에너미 엣 더 게이트 역시 러시아에서 혹평을 받았고 스탈린그라드의 노병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서 소련군 묘사는 솔직히 COH2 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여기서 소련군은 민간인이 있는 집에 불을 지르고 후퇴하는 아군을 버리거나 아군을 구한 병사를 즉결 처분하는 군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오합지졸에다가 죄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부대가 태반인 건 보너스 입니다.
사실 독소전 기간 뿐 아니라 스탈린 집권 기간 중 수많은 무고한 소련군인이나 혹은 민간인이 부당한 처벌을 받거나 처형당한 경우는 셀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적어도 스탈린은 히틀러에 비해 그다지 도덕적 우위에 있다곤 말할 수 없는 인물이죠. 따라서 소련군에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곤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독소전 기간 중 NKVD 에 의해서나 혹은 약식 군사 재판으로 처형된 사람의 수는 적어도 수십만 - 50 만 명 이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지 않은 러시아인들이 조국을 위해 싸웠던 역사 자체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이들의 엄청난 희생은 독일의 침공으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국민들의 가슴에 이 사실은 아주 큰 자랑으로 남았습니다. 상당수 러시아 병사들은 총살의 위협이 아니라도 기꺼이 최전선으로 향했고, 전쟁 동안 만큼은 스탈린 동무와 당에 대해서 적개심을 품기 보단 나치 독일에 대한 강렬한 증오로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자식 손주 세대까지 대조국전쟁은 러시아인의 긍지로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COH2 가 러시아에서 단지 혹평을 넘어 강력한 비난을 받는 점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내용이 지금도 살아 있는 독소전의 노병들은 물론 그들의 자식, 손주 세대인 현재의 러시아인들을 모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유튜브에는 '왜 러시아인은 COH2 를 싫어하는가 Why Russians Hate Company of Heroes 2' 라는 영상이 3 만회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서 40 만건에 가까운 조회수를 보이고 있습니다. Bad Comedian 이라는 러시아 블로거가 올린 영상은 '나치 렐릭 엔터테인먼트 (NAZI Relic Entertainment)' 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러시아에서의 부정적 반응 때문에 메타크릭 (Metacric) 점수는 1.5 점이란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 유저는 여기에 '당신의 게임은 나의 선조와 나치로 부터 세상을 해방시킨 수백만 붉은 군대 병사와 장교들을 모욕했다' "Your game dishonours memory of my ancestors. And the memory of Millions of soldiers and officers of the Red Army, whom liberated the world from the Nazi plague," 적었습니다. 아마 대부분 러시아 유저들의 반응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문제가 커지자 세가 (SEGA) 는 뒤늦게 '이 문제를 진지하게 대처하겠다' 고 언급하면서 관련된 모든 파트너와 함께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게임은 릴리즈 되었고 렐릭은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렐릭이 냉전 시절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21 세기 입니다. 만약 렐릭의 개발진이 평범한 러시아인들과 충분한 사전 교감을 가지고 그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만 이해했다면 이런 게임은 도저히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다른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가진 '다른 나라 사람' 을 배려하는 자세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가 되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단순히 러시아 내부나 일부 게임 유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이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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