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들은 풀을 뜯어먹는 초식동물의 모습을 보면서 평화로운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지만, 식물 역시 생물이므로 순순히 먹히지만은 않습니다. 사실 식물과 초식동물 사이에는 화학전을 포함해서 다양한 생물학적 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더 나아가서 초식동물을 이용해서 씨앗을 퍼트리는 등 서로 윈윈하는 공생관계를 구축하기도 합니다.
아스클레피아스 속 (milkweed)의 식물은 공격을 받으면 잎에서 끈끈한 흰색의 독액을 분비해 적을 물리칩니다. 이 독은 말이나 양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만, 이 식물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진딧물은 이 독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일종이 진화적 군비 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이 강력한 독을 만들수록 이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이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다보니 결국 양쪽 다 극단적인 수준에 이른 것이죠.
하지만 이 싸움에서는 일단 진딧물이 승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딧물은 이 독에 대한 완벽한 내성을 획득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코넬 대학의 연구팀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독은 진딧물을 죽일 수는 없지만, 진딧물을 지켜주는 개미를 쫓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독을 만드는 것이 항상 좋은 생존 비법인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도 해독능력을 키울 수 있고 독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산하는 본인 역시 여기에 대한 보호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 모든 생물이 독을 생산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때때로 몇몇 생물들은 천적을 쫓아낼 수 없는데도 독을 생산합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이 진딧물의 생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독액이 많은 잎을 먹는 진딧물은 개미가 잘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진딧물과 개미는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데, 개미는 진딧물을 보호해주고 진딧물은 개미에게 영양분이 있는 분비물을 줘서 개미를 끌어당깁니다. 문제는 독액을 먹으면 그 성분이 분비물에도 나온다는 것이죠. 그러면 개미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개미가 없는 상태에서는 진딧물은 딱정벌레 같은 천적의 쉬운 먹이감이 됩니다. 물론 진딧물의 몸에 있는 독성물질이 딱정벌레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딱정벌레 역시 여기에 내성을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진딧물 입장에서는 마냥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따라서 진딧물이 더 안전한 먹이감을 찾아 떠날 수 있습니다.
적을 공격못하면 적의 친구를 공격하는 이 독특한 방어 전략은 생물진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참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