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코끼리. 출처: wikipedia)
암은 모든 다세포 동물에서 다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세포 동물의 경우 한 개체가 가진 세포는 분열 횟수에 제한 있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아직 100%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아무튼 그건 분명한 사실이죠. 그런데 만약 세포가 분열 횟수에 제한없이 무한증식하게 되면 바로 암세포가 됩니다. 제대로 기능하지도 못하는 세포가 정상 세포를 침범하게 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이라고 불리는 이 역설은 고래나 코끼리처럼 큰 동물이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세포가 악성 변화를 할 가능성이 모든 다세포 동물에서 비슷하다면 세포가 많을수록 암에 잘 걸려야 합니다.
동물세포의 크기는 동물마다 비슷하므로 작은 동물보다 큰 동물이 더 많은 세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사람보다 100배나 많은 세포를 지닐 수 있습니다. 큰 고래는 이보다 더 많은 세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코끼리 해부를 통해서 암으로 죽은 코끼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연구에 의하면 코끼리의 암 사망률은 4.81% (95% CI, 3.14%-6.49%)에 불과합니다. 이는 훨씬 작고 수명도 짧은 아프리카 야생개(African wild dog)의 8% (95% CI, 0%-16%)에 비해 낮은 것은 물론 일생 중 암에 걸릴 확률이 대략 1/3 정도인 사람과 비교시 엄청나게 작은 확률입니다. 이는 코끼리가 사람만큼 오래 살 뿐 아니라 세포 수가 훨씬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 메카니즘을 규명하는데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어쩌면 암 예방과 치료에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전부터 코끼리가 암 발생률이 낮은 이유가 암 억제 유전자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 세포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TP53 유전자의 경우 인간이나 다른 동물은 한 개만 있는데, 코끼리는 20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애리조나 대학의 생물학자 카를로 말리(Carlo Maley)는 TP53 유전자가 암 세포 자체의 발생을 억제하기 보다는 이미 생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방사선이나 다른 요인에 의해 DNA가 손상되어 암세포가 생기는 건 동물마다 비슷하지만, 이를 제거하는 방어 기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이들은 코끼리의 세포와 정상 인간의 세포, 그리고 유전 질환인 Li-Fraumeni syndrome (LFS, TP53 의 불활성화와 p53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유전 질환)에 걸린 사람의 세포를 이용해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방사선 조사를 통해서 악성 변화를 한 세포를 (정확히 말하면 lymphocytes) 관찰한 결과 분명하게 TP53 이 많은 순으로 쉽게 세포사(apoptosis)가 발생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TP53 유전자가 많은 코끼리 세포는 세포가 악성 변화를 할 경우 쉽게 사멸하는 반면, 인간의 세포는 그보다 덜 사멸하며 LFS 같은 암에 잘걸리는 유전 질환이 있으면 쉽게 사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코끼리가 이런 유전적 방어 기전을 가지게 된 것은 거대한 덩치와 긴 수명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암세포를 제거하는 어떤 특별한 메카니즘이 없다면 이렇게 세포의 수가 많고 수명이 긴 동물은 금방 암에 걸려 죽고 말 것입니다. 이는 발암 억제 메카니즘을 만드는 강력한 진화압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를 사람에서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암이 잘 생기는 유전적인 요인을 밝혀내는 것은 암의 예방 및 조기 발견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연구는 저널 JAMA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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