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박쥐의 슈퍼 면역력?



(Black-headed flying fox amongst a grey-headed colony. Credit: Michelle Baker CSIRO )


 박쥐하면 소설 드라큘라의 영향으로 흡혈 박쥐같은 징그러운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흡혈로 살아가는 박쥐는 극히 일부입니다. 대개는 곤충, 꿀, 과일 등을 먹이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흡혈 박쥐 역시 사람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박쥐가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는 드물지만, 보통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우리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병을 옮기는 역할입니다.


 박쥐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멀쩡한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박쥐 입장에서는 다행이지만, 다른 동물들 입장에서는 다행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이 능력 덕분에 박쥐가 각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벡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방식으로 박쥐가 이런 면역력을 가지는지는 미스터리였습니다. 이 바이러스들은 인간에는 물론 사실 박쥐에게도 신종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호주 연방과학원(CSIRO)의 미첼 베이커 박사(Dr Michelle Baker)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 검정날여우박쥐(Australian black flying fox. 이름과는 달리 박쥐목 과일박쥐과의 박쥐)의 선천성 면역 시스템을 연구했습니다.


 연구팀은 특히 이 박쥐의 선천성 면역을 담당하는 1형 인테페론 (알파와 베타)를 분석했는데, (획득한 면역이 아니라 처음부터 면역을 가지고 있으므로 선천성 면역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봐야함) 그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간과는 달리 이 박쥐의 인터페론 알파는 언제나 활성화 상태로 존재했습니다. 즉 면역 시스템의 스위치가 항상 올라가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아마 박쥐들이 강한 선천성 면역을 지니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만만치 않은 댓가를 수반합니다. 일단 추가적인 에너지 소모는 말할 것도 없고 지속적인 염증 반응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에서 면역 시스템이 항상 존재해도 심각한 감염이 없을 때는 크게 활성화되지 않는데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감염원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사는 것이 이런 진화를 촉진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연구는 면역 시스템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이와 같은 박쥐의 슈퍼 면역력을 연구하는 것이 신종 전염성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PNAS에 실렸습니다.



참고


Contraction of the type I IFN locus and unusual constitutive expression of IFN-α in bats,www.pnas.org/cgi/doi/10.1073/pnas.1518240113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