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크림 한국의 등장
크림 한국 (Crimean Khanate) 의 시조는 징기스칸의 손자인 토카 티무르 (Toqa Temur) 이다. 그는 주치 (Jochi - 징기스칸의 맏아들로 킵차크 한국의 시조로 불린다) 의 13 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가 이끈 황금 군단 (Golden Horde 혹은 킵차크 한국 Kipchak Khanate) 의 부족이 대략 13 세기에는 크림 반도에 정착했던 것 같다. 이들은 지금의 스타리 크림 (Staryi Krym) 을 수도로 삼았는데 당시 명칭은 키림 (Qirim) 이었다. 이들은 한동안 비잔티움 제국 이후 이 지역에 무역 거점을 세운 제노바 상인 같은 이질적인 세력들과 공존했다.
킵차크 한국의 세력이 몰락하던 15 세기 이 지역을 장악한 하시 기라이 (Hacı Giray) 1441 년 마침내 크림 반도 및 그 주변 지역의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크림 한국의 설립은 1441 년을 보통 시작으로 본다. 다만 크림 한국이라고 해서 크림 반도만 장악한 국가가 아니라 그 주변 영토까지 같이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러시아의 남진 정책에서 눈엣 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1600 년 경 크림 한국과 주변 국가들 Oleksa Haiworonski at wikipedia)
크림 한국의 수도는 현재 세바스토폴 바로 옆이라고 할 수 있는 바크치사라이 (Bakhchysarai) 였다. 여기서 다시 지도를 보면 이들 도시들이 모두 크림 반도 아래쪽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역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크림 반도는 항구이거나 항구에 접해 있는 남쪽의 도시들이 특히 중요했다.
(크림 반도의 주요 도시들. 현재 수도인 심페로폴 (현재 크림 자치공 수도), 러시아의 주요 군항인 세바스토폴, 러시아와의 다리가 건설되는 케르치,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크림 한국의 수도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음 http://en.wikipedia.org/wiki/File:Karte_der_Krim.png )
크림 한국은 사실 설립 초창기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었다. 본래 왕조 국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 유목민 왕국들은 형제간, 부자간의 권력 다툼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이 혼란을 극복하고 크림 한국의 실질적인 기반을 다진 칸은 하시 기라이의 6 번째 아들인 멩글리 1세 기라이 (Mengli I Giray) 였다.
그는 1466 년 왕좌에 올랐다가 다른 형제와 귀족들의 반란으로 그해 쫓겨난 후 다시 1469 년에 왕좌에 복귀한 인물이다. 그러나 1475 년 다시 권좌에서 쫓겨나 이스탄불까지 흘러간 후 여기서 다시 오스만 제국의 힘을 빌어 1478 년에 권좌에 복위 1515 년까지 크림 한국을 다스린다. (그래서 재위 기간이 1466, 1469–1475, 1478–1515 년)
1475 년은 오스만 제국이 크림 반도에 발을 디딘 해이기도 하다. 오스만 제국은 제노바의 식민 도시들과 비잔티움 제국의 잔존 세력을 모두 정복했는데 이는 크림 반도 남쪽을 정복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1478 년 오스만 술탄의 종주권을 받드는 멩글리 기라이가 크림 한국의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일단 칸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진 후 멩글리 기라이는 주변의 라이벌들을 잠재워 자신이 킵차크 한국의 실질적인 후계자라고 자청하기에 이른다. 이후 크림 한국은 계속해서 오스만 제국을 맹주로 받들면서 오스만 제국에 기병대와 군사력을 제공했다. 이들은 흔히 크림 타타르라고 불렸다.
(크림 타타르 기병 궁수 Public domain image )
이들 크림 타타르들은 흑해 무역에도 뛰어들었는데 하필이면 그 상품이 주변 다른 국가에서 기겁을 할 만한 품목이었다. 왜냐하면 주변 국가들에서 민간인을 납치해 노예로 수출하는 것이 유목민족인 이들이 주로 하는 '무역' 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로 약탈의 대상으로 삼은 지역은 바로 맨 위의 지도에서 보이는 왈라키아 같은 지금의 발칸 반도 지역 (물론 오스만 제국의 지배령이 아닌 지역) 이나 폴란드 - 리투아니아, 러시아 (모스크바 공국) 이었다.
크림 타타르들에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폴란드 - 리투아니아와 러시아는 극도로 사이가 나빠서 서로 협력해 크림 한국을 응징하는 일 따위는 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노예 비지니스를 수세기간 계속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500 년에서 1506 년 사이에 러시아 - 리투아니아 전쟁에서는 크림 한국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 리투아니아를 약탈했고 1507 년 부터는 다시 러시아를 약탈했다. 물론 크림 한국이 망하면 다소 곤란해질 오스만 제국의 지원 역시 이들이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3 세기 이상 버티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크림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게 되면 아무래도 포스트 제목과 내용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 같지만 이 노예 무역에 대해서는 내친김에 조금더 기술해 보겠다. 이전 이반 뇌제 포스트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1571 년 크림 한국의 칸 데블렛 기라이는 모스크바 까지 침공해 들어와 막대한 수의 사람을 노예로 (대략 10 - 15 만명 정도) 잡아갔다. ( http://jjy0501.blogspot.kr/2013/05/16.html 참조)
이는 한번에 잡아간 노예의 숫자로 따지면 당시 아프리카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행해진 노예 사냥을 훨신 뛰어넘는 규모였다. 이렇게 노예로 붙잡힌 사람의 운명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매우 비참했다. 그들의 참상은 아프리카에서 잡히는 노예들과 비교해서 결코 덜하지 않았다. 일단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내륙 깊숙이에서 노예를 잡은 만큼 이들을 크림 반도까지 이동하는 일부터가 참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우선 크림 타타르들은 그들의 전리품에서 60 세 이상 노인 처럼 상품 가치가 없는 포로들은 그 자리에서 학살했다. 이후 남은 사람들은 도망가지 못하게 묶여서 최대 수천 km 의 광활한 러시아 영토를 통과했다. 타타르족들은 러시아 포로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안을 고려했는데 예를 들어 목주위에 밧줄을 감고 다시 이 밧줄을 나무 막대에 연결한 긴 행렬을 만들어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이 밧줄은 타타르 기병의 말에 묶여 있었다. 그렇게 수백에서 수천 km 를 쉬지 않고 걷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는 도중 죽는 자가 속출했겠지만 포로들이 모두 도망가는 것 보다는 그 편이 타타르 족들에게 이익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동정도 없었다. 특히 러시아 군이 타타르 기병대를 추적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한순간도 쉴틈이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약탈은 심지어 1700 년대까지도 계속되었으므로 타타르 족과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사이의 갈등과 반감은 매우 클 수 밖에 없었다.
타타르 족은 러시아와 폴란드/리투아니아 (지금의 우크라이나) 의 변란이나 전쟁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끼어들어 막대한 인명을 노예로 잡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잡아온 노예를 판매하면 약 10 - 20 % 의 판매세가 칸에게 돌아갔다. 따라서 노예를 통해서 막대한 국가 수입원이 생겼으므로 노예 비지니스는 크림 한국을 지탱하는 주력 산업이었다.
(자포로지 코자크족과 싸우는 타타르 족. 창을 든 쪽이 코자크족이고 활을 든 쪽이 타타르 Brandt, Jozef Cossacks fighting Tatars from the Crimean Khanate. Public domain image )
메사추세츠 대학의 역사학자인 브라이언 윌리엄스 (Brian Glyn Williams, professor of Islamic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Dartmouth) 는 크림 타타르의 약탈로 16 세기 폴란드가 많게는 연간 2 만명의 인명을 잃었으며 1474 년에서 1694 년 사이 폴란드 (+ 지금의 우크라이나인 리투아니아) 인 약 100 만명이 크림 반도에서 노예로 팔려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심지어 거의 망해가던 1769 년 조차도 무려 크림 타타르는 무려 2 만명의 노예를 잡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크림 한국은 결국 러시아에 병합될 운명이었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힘이 점점 강해질 뿐 아니라 부동항을 찾아서 남진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오스만 제국의 안보에는 매우 큰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크림 반도 주변의 흑해 연안에서 수백년에 걸처 러시아와 그 반대 세력간의 지루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다음에 계속 : http://blog.naver.com/jjy0501/10020746378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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