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진화는 진화에서 가장 미스터리하고 복잡한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암수 짝을 이뤄 후손을 남긴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 자연스럽지만, 사실 상당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 일입니다. 일단 짝을 만나야만 후손을 남길 수 있으며 짝짓기 과정도 매우 위험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습니다. 상당수 개체가 결국 이 과정에서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혼자서 무성 생식을 할 수 있다면 일단 성체가 되면 무조건 자손을 남길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유성 생식이 무성 생식에 비해서 다양한 유전적 변이를 지닌 후손을 만들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쉽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 설명입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실제 자연계에서는 이 설명에 맞지 않는 사례도 많이 발견됩니다. 암컷으로만 이뤄진 무성 생식 흰개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흰개미는 암수 흰개미가 무리 안에 존재하며 이들의 짝짓기에 의해 수많은 알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발견된 Glyptotermes nakajimai 흰개미의 군집 10개를 조사한 과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0개 중 6개 군집은 암컷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암컷들은 무성생식의 산물로 여왕 흰개미는 특별한 정자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알은 수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화했습니다.
곤충에서도 종종 무성 생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것까지는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연구팀은 이 무성생식 군집이 환경에 더 잘 적응할 뿐 아니라 같은 조건에서 유성생식 군집에 비해 두 배는 빨리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무성생식 흰개미는 유성생식을 하는 선조에서 대략 1400만년 전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일부가 완전 무성생식으로 돌아가게 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의 진화가 생각처럼 단순하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암수 성의 존재가 유리한 부분도 있지만 치뤄야할 댓가도 만만치 않은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이렇게 무성생식으로 다시 돌아가는 생물이 있다는 점은 반드시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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