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학술지 검열 (?) 논란 - 안전성과 학문의 자유는 양립할 수 있을까 ?



 오늘 브릭 (Bric) 에서 날라온 메일을 보니 꽤 재미있는 내용이 있더군요. 일단은 이렇습니다. 





 논란의 발단이 된 논문은 바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 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논문들은 각각 Nature  와 Science 에 기재될 예정이었는데 H5N1 의 게놈 중 특정 부분이 돌연변이를 일으킬 경우 전염 능력이 증가하여 인간 사이에 전염 (대인 감염) 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를 진행한 이유는 물론 이런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인간 사이에서 대유행 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약 이런일이 실제로도 일어나고 크게 유행하게 된다면 수백만명의 사망자를 낼 수 있는 범유행성 인플루엔자 등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건상에 중요한 위협이 됩니다. 이는 마치 스페인 독감의 재림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스페인 독감에 대해서는  http://blog.naver.com/jjy0501/100088156040  를 참조 ) 


 따라서 이 논문들이 공개되기 전 NSABB (US National Science Advisory Board for Biosecurity 생물학적 안정성에 대한 국가 과학 자문위원회) 가 이를 심사했고 결국 두 논문의 저자들에게 논문에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삭제하고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 실험결과가 재현되지 못하도록 세부적 내용은 변경해 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결국 이 내용이 수정되어 기재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가 다른 집단 - 예를 들어 생물학적 무기 개발을 하고자 하는 국가나 혹은 테러 집단 - 에 들어가는 경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제한할 필요도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또 다른 논쟁하나는 이런 바이러스를 만드는 연구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며 자칫 잘못해서 이런 바이러스가 실험실 밖을 벗어나 실제 유출되어 심각한 전염병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우려 입니다. 이 연구들은 생물학적 안정성 등급 3 (BSL-3) 에서 진행되었는데 이와 같은 위험의 연구의 경우에는 BSL-4 에서 진행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사실 이 연구를 진행한 목적은 사전에 위험한 조류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려는 극히 인도주의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칫 잘못해서 테러목적으로 사용되거나 혹은 사고로 인해 의도치 않게 이런 바이러스들이 실제 유출될 위험성에 대해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또 학문의 자유 역시 논쟁의 대상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위험성이 있는 연구는 극도의 보안에서 진행하는 게 맞을 것이고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다면 일부 연구 내용은 공개를 제한하는 것도 분명 방법이지 않겠느냐라는 것입니다. 보통 일반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의 위험성은 오늘날 처럼 인구가 많고 교통이 발달한 시대에 수백만명 이상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실 자연 돌연변이로 인해 이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연구를 안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실제 고병원성 인플루엔자로 인해 많은 인명을 잃게되는 일이 실제 발생하기 전에 막거나 실제 그런일이 생겼을 때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따라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에서 연구는 꼭 필요합니다. 다만 악용될 우려 때문에 일부 연구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이번엔 다른 연구자들이 이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할 때 제약이 발생하는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과학에서 연구 결과의 공개와 공유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아무튼 세상에 모든 일에는 이런 저런 문제와 딜레마가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이 일은 과학계와 연구자들이 연구의 안전성과 인류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연구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를 던져주었습니다. 내용의 일부를 제한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디 까지 제한할 것인지도 역시 고민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제 생각엔 악용의 우려가 매우 심각할 경우 권위있는 연구 기관에서 저자의 동의를 거쳐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게 지금으로써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듯 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