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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9일 일요일

우주 이야기 2 - 빅뱅 II



 

 4. 빅뱅 이론의 태동


 일단 허블의 발견으로 우주가 정적이지 않고 동적으로 팽창한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것이 곧 우주가 작은 원자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르메트르의 가설이 옳다는 것은 아니었다. 우주가 지금보다 과거에 작았을 수는 있지만 꼭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르메트르의 의견이 좀 더 진화되고 가다듬어져서 빅뱅 이론이 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중요한 진전을 가져온 과학자는 바로 조지 가모프 (George Gamow) 였다. 그는 한때 프리드만과 같이 일하기도 했던 소련의 과학자였다. 그러나 소련은 과학 연구에 이상적인 곳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공산당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과학이론에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동안 소련 과학계에서는 상대성 이론이나 모던 다위니즘이 부정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스탈린 시절 '부르주아적인' 다윈의 이론을 적용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에게는 즐거운 굴락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지 가모프)


 이에 가모프는 몇 차례의 실패끝에 1933년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학회를 통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는 향후 빅뱅이론의 발전을 위해 다행한 일이었다. 당시 가모프는 원자핵의 합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르메트르의 원시 원자 이론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았다.



 르메르트는 매우 큰 질량을 가진 하나의 원시 원자가 갈라져서 현재의 모든 원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질량이 큰 원자핵이라면 매우 불안정할 것이다. 이것은 이 원시 원자가 곧 분열되어 작은 원자들로 갈라진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원자핵에서 작은 원자핵으로 분리되었다면, 현재 우주에 있는 원소들은 더 이상 잘 안쪼깨지는 안정한 분자들 - 예들 들어 철 분자 - 등이 풍부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 과학자들은 우주에 있는 원소의 대부분이 수소이고 여기에 약간의 헬륨이 있으며, 나머지는 정말 약간에 불과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소는 전체 물질의 90%를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헬륨이었다. 이것은 르메트르의 원시 원자 가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르메트르의 우주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가모프는 우주가 탄생 초기에 수소로 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았다. 당시 태양 에너지의 근원이 핵융합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었다. 4개의 수소 원자핵이 1개의 헬륨 원자핵으로 융합하면서 헬륨을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속도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이전 태양의 탄생과 죽음 이라는 포스트 참조 :  http://blog.naver.com/jjy0501/100071282094 ) 사실 이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태양이 바로 꺼지지 않고 단세포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우주의 나이는 18억년으로 생각되었다. 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핵융합으로 10%에 달하는 헬륨이 만들어지기에는 우주의 나이가 너무 짧았다. 따라서 가모프는 우주에 있는 헬륨의 대부분은 우주가 생성될 당시에 만들어 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가모프의 생각은 여기서 더 진행했다. 당시 이론으로는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어떻게 생성되는지 알수 없었다. 가모프의 생각으로는 우주 탄생 초기에서 이런 원소들이 생성될 가능성이 있었다. (즉 가모프의 이론은 우주의 탄생 - 오늘날 빅뱅으로 불리는 - 이 있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초기 우주는 별의 중심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한적인 온도와 압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40년대 초 가모프는 초기 빅뱅이론을 연구하는데 있어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왜냐하면 가모프 이외의 미국 핵물리학자들이 모두 원자 폭탄 연구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가모프는 과거 붉은 군대에 장교로 복역한 이력 덕택 (?)에 남들이 폭탄 연구를 할 때 자신의 연구를 방해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가모프는 우주 탄생 초기의 고온 고압의 상태에서는 모든 물질이 아주 기본적인 상태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로 이루어진 이른바 원시 우주 스프인 일름 (ylem) 이라고 명명했다. 이 원시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떨어지고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가 뭉쳐서 여러 원자들이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완성하기 위한 수학적 계산을 하는 일은 가모프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일름이라고 써진 병에서 나오는 가모프 - 유머 감각이 탁월했던 가모프 강의 도중에 자신이 일름이라는 병에서 나오는 슬라이드를 끼워넣다. 중앙의 병에서 나오는 가모프를 중심으로 오른쪽이 랠프 앨퍼이며, 왼쪽은 로버트 허먼이다)



 1945년에 이르러 가모프는 천재적인 수학적 재능을 가졌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장학금이 취소된 랠프 앨퍼 (Ralph Alpher) 를 새롭게 자신의 박사과정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3년에 걸쳐 어려운 수학적 계산을 가다듬었다.


 앨퍼는 탄생 초기 몇 분간 우주의 생성에 대한 모델을 가다듬었다. 그가 만든 우주 모델에서는 우주의 탄생 300초 이내에 수소 10개당 1개의 헬륨이 생성되었는데, 이는 관측결과에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1948년 4월 1일에 가모프와 앨퍼는 자신의 우주 모델을 화학원소의 기원 (The Origin of Chemical Elements) 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하여 물리 리뷰 (Physical review) 지에 실었다.


 그런데 가모프의 짓굿은 만우절 장난이 사단을 불렀다. 가모프는 유머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논문에는 별 기여를 하지 않았지만 이미 유명한 물리학자인 베테 (Hans Bethe) 를 논문의 저자로 끼워넣었다. 그는 앨퍼, 베테, 가모프 순으로 된 이름을 보면서 알파, 베타, 감마 이론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앨퍼 - 베테 - 가모프 논문 (Alpher–Bethe–Gamow paper) 나 혹은 αβγ (알파,베타,감마) 논문으로 불리운다.


 앨퍼는 여기에 강력히 항의 했는데 이는 두 유명한 과학자들 사이에서 박사 과정인 자신의 이름이 더 가려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앨퍼는 이 연구 성과로 자신의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우려대로 그의 명성은 가려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발표로 가모프와 앨퍼의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져서 오늘날의 빅뱅이론으로 발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초창기 빅뱅 이론이라고 부를 만한 이 연구 성과가 발표되자 많은 과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의문은 사실 가모프 자신이 이 이론을 연구했던 이유였다. 그들이 발표한 모델에서는 헬륨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이 어떻게 생성되지는지를 밝히지를 못했던 것이다. 가모프와 앨퍼는 다른 원소들의 생성을 밝히기 위해 계속 연구를 진행했지만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은 이 문제는 전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편 앨퍼는 새로운 동료인 허먼을 받아들여 원소 문제 이외의 문제도 같이 연구했다. 그들은 초기 우주에서 우주의 온도가 내려가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지를 연구했다. 초기 우주의 탄생 수분 사이에 초기의 수소 및 헬륨 원자핵들이 생성된 이후 우주의 온도는 너무나 높아서 전자와 원자핵이 원자를 만들지 못하고 자유롭게 다니는 상태인 플라즈마 상태의 우주였을 것이다.


 이 플라즈마 상태에서는 우주 초기에 빛들이 직진하지 못하고 모두 산란되어 우주는 짙은 안개처럼 불투명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 우주가 탄생한 이후 30만년이 지나 우주가 식고 온도가 3천도 이하로 내려가면 수소 및 헬륨 원자핵은 전자와 만나 '재결합' 을 이룬다.


 결국 수소와 헬륨 원자가 생성되면서 플라즈마 상태에서 고온의 기체 상태로 바뀌면서 빛이 직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우주는 마법처럼 맑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플라즈마의 안개가 걷힐 때의 빛의 파장은 섭씨 3천도에서의 파장인 1천분의 1 밀리미터 정도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적색 편이로 인해서 이 빛은 현재에는 파장이 대략 1밀리리터 정도일 것으로 예측됐더.


 만약 이 이론이 맞다면 이 때의 빛은 오늘날까지 우주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즉 우리 우주에는 파장이 1밀리리터 정도인 약한 마이크로파가 가득할 것이다. 우주 배경 복사 (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or CMB/CMBR)라고 불리는 이 빛의 메아리를 관측한다면 가모프와 앨퍼, 허머의 우주 탄생 이론 - 즉 빅뱅 이론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당시엔 아직 빅뱅이란 명칭은 없었지만)



 그러나 이들에게는 불행하게도 누구도 이런 우주 배경 복사를 발견하려는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의 연구 결과는 곧 무시되었다. 당시엔 우주가 작은 원자만한 크기에서 시작되어 팽창하고 진화되어 오늘날의 우주가 되었다는 이론은 혁신적이나 지지자가 별로 없는 이론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에게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졌으나 우주가 한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대신 많은 과학자들이 영원한 우주의 모습을 지지했다. 그러니 있지도 않을 것으로 보이는 빅뱅을 연구하기 위해 우주 배경 복사를 관측하는 과학자들은 없었다. 가모프와 앨프, 허먼은 이와 같은 실험 과학 영역에 미숙했기 때문에 다른 과학자들을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5년후인 1953년, 가모프는 DNA 연구로 주제를 바꾸고, 앨퍼는 제네럴 일렉트릭 사에 취직했고, 허먼은 제네럴 모터스에 취직했다. 적어도 이 순간까지는 빅뱅이론은 유망해 보이지 못했다.





 5. 정상 우주 모델


 허블의 발견으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그러면 우주의 크기는 과거엔 지금보다 작지 않았을까? 심지어는 한점에서 우주가 시작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결국 빅뱅 이론을 암시한다. 그러나 1946년 프레드 호일 (Fred Hoyle) 을 비롯한 일단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면서도 창조도 종말도 없는 영원한 우주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른바 정상 우주 이론 (Steady State Theory)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프레드 호일 경)



 프레드 호일과 그 동료들이 발표한 정상 우주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우리의 우주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킬 때 우주원리를 주장했다. 이것은 우리의 주변 환경이 우주의 다른 곳과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는 곳은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일의 동료인 골드는 이를 더 진보시켜 완전한 우주 원리를 주장했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우주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일했다. 팽창하는 우주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여기 팽창하는 우주가 있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같은 우주 공간에 있는 은하의 숫자는 줄어든다. 즉 우주의 밀도는 낮아질 것이다. 이 우주에서는 우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밀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반면 정상 우주 모델에서는 우주가 팽창해도 우주의 밀도는 계속 동일하다. 왜냐면 빈 공간에서 물질이 계속 생성되기 때문이다. 호일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만한 크기에서 1세기에 한개의 원자만 창조되어도 밀도가 유지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가 관측을 통해 빈 공간에서 물질이 생성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설명 (?)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물질이 도대체 어디서 생성될까? 호일은 C field 로 알려진 창조장 (Creation field) 에서 새로운 물질이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서서히 물질이 형성된다면 우주의 밀도는 유지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우주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일하게 된다. (아래 그림 참조)




 (위에 있는 빅뱅 모델에서는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밀도가 낮아진다. 반대로 정상 우주 모델에서는 빈공간에서 새로운 물질이 계속 생성되어 우주의 밀도는 동일하다. 우주의 상태는 계속 현재와 같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빅뱅 이론이 옳다면 우주의 모습은 과거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반대로 정상 우주 모델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같다. 그렇다면 우주의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이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우주의 과거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멀리 있는 우주의 모습을 관측한다면 가능하다. 우리가 100억 광년 밖의 은하를 본다면 이 빛이 도달하는데 100억년이 걸린 셈이므로 100억 전의 과거를 보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 당시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 이론이 나온 시점의 망원경의 성능은 이런 판가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결국 두 이론은 상대진영을 서로 물고 늘어지면서 서로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를 하지 못했다.


 또 한편으로 프레드 호일은 대중에게 인기 있는 과학자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정상 우주 모델을 크게 광고하면서 대중에게 강연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프레드 호일경의 발언이 빅뱅 이론에 기여하게 되었다.


 1950년 BBC 방송에 출연한 프레드 호일 경은 자신의 정상 우주 모델보다 신빙성이 적은 우주 모델도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강연했는데, 여기서 호일경은 이 이론을 빅뱅 (Big Bang) 이론이라 불렀다. 사실 이 이론은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우주 모델이라는 좀 더 고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호일은 약간의 경멸을 담아서 이 이론을 설명한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폭발 (이름 그대로 Big Bang) 에 의해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프레드 호일은 분명히 비웃으려는 의도에서 아마 이런 명칭을 붙였겠지만 간단한 이름 덕에 대중들에게 곧 각인 될 수 있었고,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과학자들도 이 명칭을 스스럼 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이 이론의 가장 큰 반대자인 프레드 호일 경이 빅뱅 이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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