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점인 2013 년 1 월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 재원 및 현실성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공약집에 있는 대로 하겠다는 건 말이 안되기 때문에 누가 당선되었다고 해도 공약 수정은 불가피하지만 생각보다 공론화의 시기가 좀 빠른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아마 그 공약집을 만든 사람도 공약이 현실성 없다는 생각은 하고 있을 것이고 투표를 한 국민이나 이런 공약을 내건 정치권이나 그대로는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극히 일부만이 이게 진짜 그대로 실현 가능하다고 믿겠죠.
이전 포스트 ( http://blog.naver.com/jjy0501/100175136690 참조) 언급했듯이 주요 정당 후보들의 대선 공약들은 대부분 실현 가능성이나 현실성이 부족하며 '그냥 이랬으면 좋겠다' 식의 위시리스트일 뿐이지 공약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덧 : 이전 포스트 마지막에 공약 예산 관련 포스트를 추가로 작성하기로 했는데 그 포스트가 이 포스트입니다. 그리고 외국도 우리처럼 하는 게 아니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번째로 소요 예산을 어떻게 추정했는지 공약집만으로 전혀 알 수 없으며, 주장하는 소요예산이 비록 천문학적 (예를 들어 박 당선자의 경우 5 년간 135 조원) 임에도 사실은 필요 예산을 터무니없이 과소 평가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더 중요한 것은 이 터무니없이 많은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점이겠죠.
(박근혜 후보 대선 공약집 중 재원 조달 방법. 이게 내용의 전부임. )
어떤 사업을 진행할 때는 소요 예산을 어떻게 산정했는지를 설명하고 이로 인한 추정예산이 얼마인지를 밝히는 것이 순서입니다. 예를 들어 10 만명 정도에게 연간 10 만원 정도 노령 연금을 추가로 지급한다면 100 억원이 연간 소요되겠죠. 하지만 대개 이런식으로 쉽게 산출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꽤 복잡한 계산과 가정이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이를 테면 의료비 감면 혜택을 줄 경우 전에는 돈이 없거나 돈이 부담되서 의료기관 이용을 꺼리던 계층도 더 적극적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의사들도 더 적극적으로 검사와 시술, 투약 등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사전에 여기에 추가 비용이 얼마가 들지는 사실 아주 오랜 시간 연구를 해도 정확히 추정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면해주기 전보다 수요가 늘게 분명하기 때문인데 다만 엄청난 비용이 추가로 들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겠죠.
여기서 비교를 하고 싶은 외국의 사례는 오바마케어 (Obamacare :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PPACA) http://blog.naver.com/jjy0501/100161116852 참조) 입니다. 오바마케어로 알려진 PPACA 의 경우 오랜 시간 추정 비용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이를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를 두고 상당히 오랜 시간 토론과 갈등 끝에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1.7 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2012 - 2022 년 사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지 미 정치권은 매우 상세한 데이터와 방법을 제시했고 비록 이 예측이 100%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의회에서 표결을 붙이고 여론 조성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인기 영합식 공약과는 달리 솔직하게 말해 막대한 예산이 들수 밖에 없고 누군가 이를 부담할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한 다음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대해서 민주적인 표결을 통해서 하나씩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은 미국 정치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보다는 나은 구석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Summary of tax increases: (ten year projection)
- Increase Medicare tax rate by .9% and impose added tax of 3.8% on unearned income for high-income taxpayers: $210.2 billion
- Charge an annual fee on health insurance providers: $60 billion
- Impose a 40% excise tax on health insurance annual premiums in excess of $10,200 for an individual or $27,500 for a family: $32 billion
- Impose an annual fee on manufacturers and importers of branded drugs: $27 billion
- Impose a 2.3% excise tax on manufacturers and importers of certain medical devices:$20 billion
- Raise the 7.5% Adjusted Gross Income floor on medical expenses deduction to 10%: $15.2 billion
- Limit annual contributions to flexible spending arrangements in cafeteria plans to $2,500: $13 billion
- All other revenue sources: $14.9 billion
Summary of spending offsets: (ten year projection)
- Reduce funding for Medicare Advantage policies: $132 billion
- Reduce Medicare home health care payments: $40 billion
- Reduce certain Medicare hospital payments: $22 billion
(간단하게 정리한 PACCA 의 예산 조달 방법. 세금 인상 및 기존의 예산 감축을 통해 예산 조달을 하는데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해보면 이보다 예산은 더 들고 세금은 덜 걷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함)
(PACCA 가 시행될 경우 연방 최저 빈곤선 보다 더 소득이 많을 수록 최대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게 되는 정도를 표시한 것 Maximum Out-of-Pocket Premiums for Eligible Individuals in 2014 Under PPACA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
실제로는 위에 적은 것 처럼 간단하지는 않고 PACCA 가 통과되는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과 많은 갈등을 필요로 했습니다. 또 이를 통해 바뀌는 세법이나 혜택의 범위가 상당히 많습니다. PACCA 의 전체 내용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아무튼 증세와 기타 다른 예산 증액 방법. 그리고 다른 곳에서의 예산 삭감을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누가 얼만큼 돈을 더낼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복지 공약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분명 막대한 숫자의 사람들이 추가 의료 보험 혜택을 받는데 이것이 누군가 추가로 돈을 더 내지 않고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미국 정치권은 솔직하게 2500 - 3000 만명이 추가로 의료보험 혜택을 보려면 앞으로 10 년간 1.7 조 달러 (약 1800 조원) 이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고 이를 의회에서 격론을 거쳐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어떻게 부담할지를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을 앞서 했던 2 가지 이유와 대입시켜보면 이렇습니다. 첫번째로 사업의 소요 예산에 대해서 우리는 정당에서 대충 얼마가 필요하다 식으로 발표했는데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미 의회 조사국 (CRS :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미 의회 예산처 (CBO : Congressional Budget Office) 미 회계 감사원 (GAO :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 ) 같은 독립적인 싱크탱크가 존재해 각 법안의 현실성과 소요 예산, 현황 분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 수백명을 동원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통해 소요 예산이나 문제점들을 분석한 후 이를 공개하기 때문에 정책 결정자나 의회, 그리고 국민 모두가 원하면 어떻게 그런 예산 소요 추정이 나왔고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미국 국민도 아닌 저 역시 이 보고서들을 자주 인용하곤 합니다. 신뢰성과 투명성, 전문성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블로그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제가 CRS/CBO/GAO 보고서를 종종 인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문적인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하다보면 예산을 초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은 보통 예산은 더들기 마련 이라는 격언을 상기시켜 줍니다.
현재 박 당선인의 공약 예산은 5 년간 135 조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3 년 1월 20일 민간/국책 연구소 및 기획 재정부 의견에 따르면 5 년간 270 조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65 세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금의 두배 (최저 20 만원) 을 지급하는데 2014 년 - 2017 년 사이에만 44 조 5130 억원의 재원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새로운 추정이 나왔습니다. 또 4 대 중증 질환 진료비 100% 건강 보험 대상 역시 연간 1.5 조원이 아닌 2-3 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선거 끝난지 한달 정도 되서 이렇게 예산 추정치가 크게 바뀌는 것 자체가 예산 추정이 엉터리였고 전문성도 완전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주요 정당이 다 이런 식이라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두번째 문제와 비교했을 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즉 어차피 예산을 조달할 방법이 없는데 135 조원인지 270 조원인지가 중요하진 않다는 것이죠. PACCA 에서는 소득 수준별, 가족 수별로 최대 얼마나 진료비가 더 들수 있을 지, 그리고 누가 세금을 더 내고 혜택을 덜 받게 될지가 일단 명확했습니다. 또 다른 예산을 삭감해서 예산을 조달할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삭감할 것인지가 확실해서 표결에 붙이거나 혹은 여론 조사를 할 때 명확했습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 당선 한달이 지나고도 어디서 예산을 삭감하고 누가 돈을 더내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 역시 누가 당선되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민주당 공약 역시 예산 조달 방법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또 증세 부분에 있어서도 매우 쉽게 막대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죠. 새누리당 역시 소규모 증세와 지하 경제 활성화로 막대한 돈을 거두고 다른 곳에서 예산을 쉽게 삭감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모두 현실성 없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이자 소득 및 배당 소득 종합 과세 기준액을 현행 연간 4 천만원에서 2 천 만원으로 줄이는 부분을 통해 (이 부분은 민주당, 새누리당 공통 공약이고 현재 그렇게 하기로 결정된 사항) 매년 6000 억원을 쉽게 더 거둘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현재 추정되기로는 매년 3000 억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으며 새롭게 과세되는 부분을 회피하기 위해 과세 대상자들이 포트폴리오를 다시 조정 (예를 들어 예금을 다른 비과세 상품으로 변경) 하고 있어 실제로는 더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얼마 안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점을 보면 재원 추정 못지 않게 재원 조달 방식도 다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두 정당 모두 지하 경제 양성화를 통해 아주 쉽게 엄청난 돈을 거둘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이 이야긴 지금까지 매년 안나온 적이 없는 이야기고 솔직히 지하 경제 규모에 대해서도 다 제 각각으로 추정하는 판에 과연 얼마 더 거둘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지하 경제 규모를 줄이는데는 찬성하지만 이런 불확실한 재원을 믿고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부가세나 법인세를 올리겠다고 할 경우 물가와 경제 성장률에 충격을 주고 기업과 소비자의 반발이 심각할 것이며 소득세 과세를 올리기 위해 전 소득 구간에서 세율을 재조정할 경우 이번에는 소득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봉급생활자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쉽게 증세 이야기도 못꺼내는 것이 현실이죠. 여기다 2012 년 이후로 성장률이 저성장 기조를 그리고 있어 증세는 커녕 현재 목표한 세금이라도 다 거둘 수 있을지 의문시 하는 의견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업을 하겠다면 누군가는 돈을 더 내야겠죠. 아니면 사업을 접든지 해야겠죠.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 얼마나 더 들게 될지, 그리고 그 돈을 누가 낼 것인지 지금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인 추정은 결국은 사업을 상당 부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바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엔 정치권에서 부담 되겠죠. 그러니 진짜 하는 것 처럼 노력은 해보다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쪽으로 시나리오를 짜지 않았을까 하는 게 개인적 생각입니다.
이런 제 예상이 틀리고 뭔가 묘안을 낼 수 있다면 뭐 모두를 위해 유익한 일이겠죠. 솔직히 그렇게 되면 제 예측이 틀리더라도 환영입니다. 다만 그게 그렇게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본래 꽁짜 점심은 없게 마련이니까요. 지금 상황을 비유하자면 생전 처음보는 고급 식당에 들어가서 가격표도 보지 않고 주문을 했는데 사실 지갑도 들고 오지 않은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계산은 어떻게 할까요 ?
참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