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에너지 바우처 제도 - 신중한 도입을 바라며




 최근 (즉 2013 년 1월) 대통령직 인수 인원회에서 320 만명 저소득자에 대해서 에너지 바우처 제도 (정부에서 전기/가스 등에 대해서 무료 쿠폰등을 나누어주는 것) 를 시행하고 120 가구 정도로 추정되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해서 전기 및 가스 요금을 20% 이상 할인해주는 방안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라고 일부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이는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인 '빈곤 없는 따뜻한 에너지 복지 실현' 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당선인 공약집 323 페이지 ) 


 위에 적힌 대로 했을 경우 기초생활 수급자 (150 만명) + 차상위계층 (170 만명) 에 대해서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시행하고 전체 소득의 10% 를 에너지 비용 (전기 가스등) 으로 사용하는 에너지 빈곤층 120 만 가구에 대해서 전기 및 가스 요금을 20% 감면해주는 제도는 별개로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간단히 계산해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 수준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외 유가 보조금도 확대 지급해야 하지만 이 내용은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사실 추운 겨울에도 난방비가 없어서 고통받는 저소득층을 생각하면 도입 자체는 찬성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상자가 많으면 악용하는 사례가 많이 생길 텐데 하는 우려는 있습니다. 적어도 320 만명이 에너지 바우처 혜택을 보고 120만 가구나 에너지비 절감 혜택을 보게 되면 현재도 그렇듯이 이를 부정 수급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일일이 수백만명이 다 정당한 수급자인지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또 다른 문제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로 실질 전기 사용량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얼만큼의 전력 사용을 무료로 할지, 그리고 얼만큼의 가스 사용량을 무료로 할 지 (물론 생각이 있다면 무제한으로 무상 공급하지는 않겠죠) 알수는 없지만 보다 저렴해진 전기 사용료로 인해 전기 온풍기등의 사용량이 늘어난다면 최근 1년 5 개월간 4 차례에 걸쳐 전기료를 19.6% 올린 명분이 무엇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판매해서 한전이 막대한 적자를 봤기 때문에 인상한다는 것은 나름 명분이 되기는 하지만 마지막 2013 1월 인상으로 인해 사실 한전은 수조원대의 흑자까지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아래 링크 기사 참조) 그럼에도 인상을 한 이유는 블랙 아웃을 피하고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수백만 가구의 전기료 및 가스료를 무상 혹은 20%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려면 다시 전기료를 인상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죠. 누군가 전기와 가스를 꽁짜나 저렴하게 쓰는 만큼 다른 누군가 자기가 실제 쓴 것 보다 요금을 더 내야 할 테니 말이죠. 또 에너지 낭비에 대한 우려가 다시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발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대상자를 잘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악용 및 불공정 사용에 대한 성실하게 전기 / 가스료를 내야하는 일반 국민들의 반발이 없으려면 기초생활 수급자는 일정 금액까지 100%, 차상위 계층은 50% 하는 식으로 차등 지급하고 에너지 빈곤층 역시 전체 소득 및 재산 수준에 따라서 그 대상자를 확실히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지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잘못하면 전기/ 가스를 낭비하는 가정에 비용 감면 혜택을 주고 반대로 전기와 가스를 열심히 절약한 가구에는 역차별을 주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차상위 계층 까지만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편 이렇게 하더라도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전체 국민의 10% 미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혜택을 보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또 무료나 저렴해진 요금 때문에 과거보다 더 많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독거 노인분들 같은 경우는 지원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거론된지 6 년간 시행이 못된 이유가 바로 예산 때문이었습니다. 


 전기와 가스료의 경우 국가에서 서비스를 하는 것은 아니고 공기업인 한전과 한국 가스 공사 등이 그 책임을 맡는 만큼 결국 누군가 저소득층이 아닌 사람들이 그 요금을 대신 내주는 방식으로 (사실 세금으로 지원해도 마찬가지 이야기) 예산을 마련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전기/ 가스료를 다시 소폭 인상하거나 흑자 부분을 여기에 투입하는 방법)     


 다만 전기/가스료가 부담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게 사실이고 최근 엄청나게 오른 것 때문에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과연 이를 진짜 밀어 붙일 수 있을 지는 미지수 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공약이 전반적으로 후보나 정당을 가리지 않고 예산이나 소요 재원, 그리고 형평성 논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는 식의 위시리스트라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도 대부분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 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무리하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려고 할게 아니라 기초 생활 수급자 중 독거 노인등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필요하면 확대 적용하는 방식으로 해야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무리하게 추진하면 결국 반발이 심하고 예산이 없어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러면 결국 가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조차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우선적으로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부터 제도를 도입하면 예산도 훨씬 적게 들고 반발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위시리스트가 아니라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