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년에 와서 논란이 된 아청법은 사실 그전에 통과된 아청법 개정안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이하 아청법) 이 시행되면서 생긴 문제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법만 바꾸고 단속을 안하다가 갑자기 아동 성범죄가 이슈가 되자 갑자기 대대적 음란물 단속에 나선 경우라고 할 수 있죠.
2009년에서 2011 년사이 여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대표 혹은 공동 발의 형식으로 성범죄 처벌 강화 및 아청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아청법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문제가 된 조항은 이전에 몇차례 본 블로그에서 언급했듯이 아청법 제 2조 5호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라는 조항입니다. (참고로 제 4호의 행위에는 구체적인 성행위 외에 '다' 항의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도 포함됩니다. ) 즉 아동 및 청소년이 실제 나오지 않아도, 그리고 구체적인 성행위에 대한 묘사 없이도 아청법 위반으로 모두 처벌이 가능합니다.
사실 아청법이 처음 생겼을 때는 이렇게 광범위하게 해석이 가능한 법안이 아니었으며 실제 아동 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로써 그 범위가 명확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법만 있고 수년째 단속이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해 있으나 마나한 법에 가까웠다는 것이 문제였죠.
하지만 2012 년 와서 아청법 위반을 포함 대대적인 음란물 단속이 이루어지면서 새롭게 사회적인 문제가 됩니다. 문제가 된 이유는 이게 아청법 위반 ? 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음란물 (예를 들어 성인 배우가 교복을 입고 음란물을 제작한 경우들) 도 아청법 위반으로 단속이 되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경찰은 지난 5월부터 10 월사이 5 개월 동안만 음란물 유포 소지자 6천여명을 검거했으며 이 중 무려 1758 명이 아동 음란물 사범으로 적발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아동 음란물이 그렇게 광범위하게 유통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제 아동이 아니라 미성년자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이를테면 만화 캐릭터) 나와서 성행위가 아니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 (구체적으로 이 행위가 무엇인지는 현재까지 아무런 예시나 규정이 없음) 를 하면 아청물로 기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성과 (?) 를 거둔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사 참조 :
그런데 이전에 아청법 관련 단순 소지자도 징역형이 가능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새로운 아청법 개정으로 논란을 빚었던 최민희 의원 (민주 통합당 19 대, 비례 대표) 등이 2012 년 11월 14 일 다시 아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여기에는 실제 아동 청소년이 출현하는 것으로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아청법 초기의 모습이었고 이 경우 대부분의 논란의 여지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게 아청법의 기본 목적은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 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동 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을 제작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야 하며 만약 표현물이라는 것 까지 포함시키려면 구체적으로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예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시 마구잡이 식으로 의원들이 법안을 내놓으면서 나중에 생길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아청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그 결과 이런 문제가 생긴 셈입니다.
현재는 본래 법의 목적인 아동/청소년 성보호는 이제 온데 간데 없고 음란물 단속 사범으로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면 정말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블랙코메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은 국회 의원들과 법률 전문가들이 사회적인 파장과 득실을 잘 생각해서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게 아니라 의정 활동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보여주기식 법안 발의와 충분한 검토없는 법안 통과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교훈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교훈을 생각하면 지금의 아청법 개정안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 최민의 의원등이 발의한 다른 아청법 개정안 ( http://www.minheetalk.net/407 참고) 에서는 아동 음란물 단순 소지자도 1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여론의 심각한 역풍을 맞았고 한달만에 다시 이런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게 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단 이 개정안은 법안 심사 소위 부터 통과해야 합니다. )
그러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극히 일부 만이 실제로 통과됩니다. 의원 한명당 대표 발의하는 법안만 수십개인데 그 모두가 다 통과될 순 없거든요. 하지만 의정 활동의 일부이므로 우리는 물론이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실제 본회의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드물어도 법안 발의는 꽤 많이 합니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다시 아청법 2조 5의 항목을 수정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은 분명히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통과되든 안되든 일단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는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만약 여러분이 현행 아청법의 애매모호한 조항에 반대한다면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할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발의를 해도 사실 법안 심사 소위에 상정되고 토론된 후 수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아마 1 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고 설령 통과한다고 해도 6 개월 이후 효력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현행 아청법은 최소한 1 년 이상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현재 아청법도 작년에 개정된 것) 여론이 잠잠해지면 이런 발의안은 그냥 소리소문 없이 묻혀질 가능성도 적지 않으며 오히려 아청법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대신 통과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광범위한 유추에 의한 처벌을 가능하게 만드는 애매모호한 법에 대해서는 목적 여하에 관계 없이 반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법의 정의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 이상으로 무고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행 아청법은 다시 개정되서 본래 법의 목적인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보다 부합되게 바뀌어야 합니다. 음란물 단속과 경찰 실적 올리기가 이 법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약간 두서없이 전개되었지만 결론적으로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아직 현행 아청법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정안 발의가 개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개정안 (즉 실제 아동 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의 단속과 규제) 이 나온 것 자체도 너무 대상이 광범위하고 모호한 아청법의 문제를 질타하는 여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동안 대대적 단속이 끝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아청법 개정이 사실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국회에서 몇년씩 표류하거나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패턴을 보면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죠. 실제 대한 민국 국회라는 곳이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법안이나 예산이 극도로 날림으로 통과되거나 날치기 통과되기도 하고 소위를 통과했다고 해도 법률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따라서 아청법의 모호한 부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잠잠해 진다면 미래에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동 음란물 소지자가 될 가능성이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법안을 광범위하게 해석하면 세상에 과연 아청법 위반으로 해석될 수 없는 창작물도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죠.
개정안 발의는 아청법이 본래 목적에 맞게 개정하는 첫걸음일 뿐이고 아직 널리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 아직 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순 있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 1-2 년 내로 개정되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전까지 아청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하면 이글을 쓰는 시점에서 아직은 아무것도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행 아청법은 계속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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