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의 초기 시절에는 정부는 가급적 자유로운 경제 활동에 관여하지 않을 수록 좋다는 견해가 널리 퍼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때때로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는 1920 년대의 번영 시기까지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크게 변하게된 계기는 바로 1930 년대의 대공황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상당한 논란이 존재하긴 하지만 아무튼 당시에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이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을 크게 흔들어 놓은 사건인 건 확실합니다. 이후 케인즈주의가 큰 힘을 받았고 실제로 뉴딜 시절과 2 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 행정부의 기능과 크기는 매우 커졌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상식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 미국의 세율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는데 연방세 기준으로 본다면 대략 20 % 수준으로 현재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아주 높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전 세대에 비해서 정부의 기능이 늘어났다고 해도 지금 처럼 고령화되지도 않았고 의료비가 비싸지도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출이 작았기 때문이죠. 전쟁을 제외하면 엄청난 지출을 요구하는 이벤트는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연방세수는 대략 GDP 의 15 - 20% 수준으로 최근까지 유지되었으며 최근에는 감세 조치들로 인해 15% 선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1945 년에서 2010 년 까지 연방 세수의 GDP 대 비율. 여기서는 2011 년 이후 세율이 오르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는 미정. This image displays U.S. federal government tax receipts as a percentage of GDP from 1945 to 2015 according to data from the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s Historical Tables, Table 1.2 (available here). It should be noted that the data for years 2010 to 2015 are statistical projections. )
지금 생각하면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1930 년대와 1940 년대 국가 비상 상황을 거치면서 미국의 세금 제도는 고소득자에 대해서 매우 무거운 세금을 매긴적이 있습니다. 지금 유럽 복지 국가들 보다 더 한 수준으로 세금을 매겼지만 당시 여론상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대공황시기라든지 2차 대전이라든지 하는 국가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특히 대공황에 시절에는 부유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고 미국이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조세의 부의 재부분배 기능이 크게 강조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높은 조세 부담율은 1950 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안정화되면서 사실 그 필요성이 줄어들어 다소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더 극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은 1980 년대 이후인데 이 시기는 사실 국가의 지출이 다시 늘어나던 시절이었으나 미국에서는 오히려 최상위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더 증가하는 대신 감소했습니다.
(1945 년에서 2009 년 사이 상위 0.01% 와 상위 0.1% 수입자에 대한 유효 세율 변화. 1945 년 상위 0.01% 고소득자는 수입의 60% 를 세금으로 냈지만 1990년에는 단지 24.2% 만을 세금으로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로는 오히려 상위 0.0.1% 소득자가 실제 내는 세율이 0.1% 상위 수입자보다 낮은 역전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쪽이든 미국이 최상위 고소득자의 세금이 낮은 건 사실입니다. Average tax rate percentages for the highest-income U.S. taxpayers, 1945-2009. The average tax rate for the top 0.01% (one taxpayer in 10,000) was about 60% in 1945 and fell to 24.2% by 1990. The average tax rate for the top 0.1% (one taxpayer in 1,000) was 55% in 1945 and also fell to 24.2% by 1990, following a similar downward path as the tax rate for the top 0.01%. Between 1990 and 1995, the average tax rate for both the top 0.1% and top 0.01% increased to about 31%. After 1995, the average tax rate for the top 0.01% was lower than that for the top 0.1%. "Taxes and the Economy: An Economic Analysis of the Top Tax Rates Since 1945" CRS Report for Congress no. 7-5700 / R42729, page 3 Thomas L. Hungerford, U.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이렇게 갑자기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감소하는 것과 비슷하게 기업에 수익에 대한 법인세도 계속 감소하게 됩니다. 세제 혜택을 제외한 유효 법인세율은 이제 20% 내외 수준입니다.
( U.S. effective corporate tax rates, 1947–2012 http://betweenthebalancesheets.wordpress.com/2011/10/06/a-few-issues-with-u-s-corporate-tax-policy/
Created "by combining the Corporate Profits After Tax data from the NIPA tables with the OMB’s data on the revenue collected by the corporate profit tax. The sum of these two series ought to equal total pre-tax profits (roughly), so from there it is easy to calculate the average effective tax rate."
이런식으로 세금이 감소한 것은 미국에서 감세가 상당한 정치적 지지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으로 알려진 새로운 경제 사조도 한몫을 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던 정치인은 역시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 전 미국 대통령입니다. 레이거노믹스 (Reaganomics ) 를 간단히 요약하면 규제를 철폐하고 세금을 줄여 기업들의 경제 활동을 최대한 촉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케이즈 주의의 수요 촉진 경제학 (demand-stimulus economics) 의 반대로 공급 측면 경제학 (supply-side economics) 이었는데 경제 성장이 생산을 가로막는 여러가지 요인들 - 예를 들어 각종 규제나 세금등 (세금이 이윤 창출이라는 경제 활동의 동기를 낮추는 요소이므로) - 을 줄이므로써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사회 보장 시스템을 악용해서 부정 수급하는 경우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정부 지출 증가를 억제해서 민간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금은 줄였는데 지출은 더 증가하므로써 미국의 재정 적자와 부채를 크게 증가시켰습니다.
1981 년 미국의 연방 세율은 GDP 대 19.6% 였던 것이 1984 년에는 17.3%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반면 연방 지출은 1981 년에서 1988 년 사이 GDP 의 22.4% 로 1971 년에서 2009 년 사이 평균인 20.6% 보다 오히려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집권전에는 9970 억 달러였던 국가 부채가 집권 후에는 2조 8500 억 달러 수준으로 세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레이건 시절 낮춰준 세금은 그대로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시절 이자까지 포함해서 다시 미국의 납세자들이 갚아야만 했습니다. 세상에 꽁짜는 없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감세의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세금을 적게 내는 걸 선호하는 건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다 동일하겠죠. 그걸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실제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어떻게든 절세 노하우를 발휘해서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삶의 지혜로 받아들여지는 건 만국 공통입니다. 연말 정산이나 기타 소득 정산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회인이라면 어느 정도 다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유층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정작 자신들의 세금이 오르거나 혹은 준조세처럼 받아들여지는 의료 보험료, 국민 연금 납부 등이 늘어날 때는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매년 소폭 인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전기료의 경우도 비슷하겠죠. 사실 이건 발전 원가가 상승해서 인상하는 건데도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듯 절세의 매력이 적지 않은데다 더 나아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도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므로 이전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는 역사상 최대 규모에 감세조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법인세는 2 차 대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고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은 너무 낮아져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 중 하나도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워렌 버핏이죠. (개인적인 여담이지만 이런 부분에서 워렌 버핏이 대단하긴 합니다. 이전에 부시 대통령 시절 상속세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있자 워렌 버핏이 이에 반대하는 청원을 대대적으로 전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 청원서에 같이 서명한 사람이 빌 게이츠입니다. 둘 다 자식에게 재산을 약간만 물려주고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사실 감세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경제학자들도 이것이 정부 재정 지출 감소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식적으로 그래야 정부가 빛더미 위에 올라서지 않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부시 감세 조치는 사실상 정부 지출 감소와 거의 무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정부 지출은 전혀 감소하지 않는데 세금은 감소했으니 당연히 정부 재정 적자가 큰폭으로 증가했고 결국 현재에는 더 심각해진 거대한 재정 적자와 부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기에도 공화당은 여전히 감세를 지지했고 여기에 대한 지지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은 밋 롬니를 지지한 표가 그렇게 적지는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증세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시적인 감세 조치가 종료되었고 세금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 (사실 증세보다는 이전 세율로 회복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죠. 그리고 그 이전 세율도 클린턴 시절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선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하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조치가 이렇게 강력한 저항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위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감세가 하나의 경제학 사조 및 정치적 이념화 되었기 때문이죠. 여기에 플러스 해서 세금은 대부분 내기 싫어한다는 공통적인 심리가 작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년 1 조 달러가 넘는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증세와 더불어 재정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액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증세나 재정 지출 감소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사실 첫번째 목표는 아주 소박해서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2013 년에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를 한국 정부의 2 년 예산에 맞먹는 6410 억 달러 수준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CBO 가 세운 두가지 가상 시나리오 클릭하면 원본 Source : CBO )
하지만 이 소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엄청난 조세 저항을 이겨내고 세금은 늘리고 지출은 줄여야 합니다. 둘다 쉽지 않은 일인데다 더 중요하게는 재정 절벽 (Fiscal cliff) 란 위기 상황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재정 절벽이란 정부의 지출이 갑자기 줄어들므로써 수요가 감소하고 감세 조치 중단으로 세금이 중단하므로써 민간 경제가 위축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사실 경제가 나쁠 때는 세금은 줄이고 정부 지출은 늘려야겠죠. 여기에는 특별한 반대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원히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부시 시절 엄청나게 미국의 부채가 증가했고 지난 4 년간 매년 1 조달러 이상 부채가 급증해 더 이상 부채 증가를 허용할 경우 과연 이 부채가 갚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경고하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다 살아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은 올리면 이로 인한 경제의 충격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인공 호흡을 연명하는 환자에서 인공 호흡기를 떼는 것 같은 조치가 될 수 있으니 말이죠.
사정상 감세 조치를 더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고 사실 오바마 대통령도 중산층 이하에 대해서는 감세 조치를 다소 연장하는 대신 부유층과 기업에 대해서는 감세 조치를 중단하고 탈세를 막아서 세수를 증대시키려는 타협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민주당의 목표) 하지만 공화당은 이보다 더 광범위한 감세 조치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것이 쉽게 해결될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음에는 왜 그렇게 지출을 줄이기 어려운지, 그리고 부유층 감세논란을 더 이야기 해보고 그러면 결국 어찌 될 것인지를 대충 예상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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