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인터넷에 도는 사진들이긴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건설한 거대한 위장막에 대해서 보다 상세한 이야기에 대해서 한번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경어는 편의상 생략
1941년말에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자 미국사회는 큰 충격에 빠진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감히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 데다, 설령 공격하더라도 미국의 아시아 본거지인 필리핀을 공격하지 미 태평양 함대의 중심인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리라곤 거의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습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자 미국 사회는 크게 동요했다.
이로 인해 1941년 말에서 1942년 사이 미 서부 해안 지대에는 상당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일본이 미국 서부 해안을 침공하는 군사적 도박을 감행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진주만 역시 같은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역으로 이용해 도박을 성공시킨 일본군의 성공에 세상이 경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만은 금물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뒤통수를 아주 크게 맞은 것 처럼 충격을 받았기에 일본이 서부 해안 지역, 특히 항공기 산업과 연관이 깊은 캘리포니아 주를 공격하지 않을까 많은 우려를 하고 있었다. 즉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항공기를 생산하는 공장들을 일본이 기습 공습하지 않을지 크게 우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우려를 키우는 몇가지 사건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엘 우드 포격사건은 1942년 2월 23일 일어났다.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해엽의 엘우드 (Ellwood) 에 일본의 잠수함 I-17 이 포격을 가한 사건이 었는데 야간에 목표를 잘못 식별한 일본 잠수함이 큰 피해를 입히진 못했지만 (미국측 사상자는 없었고 재산 손실도 500 - 1000 달러에 불과했다) 이 일로 미국 사회는 일본군이 저 멀리 태평양 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서부 해안에도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 아무튼 이 사건은 2차 대전 중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첫번째 케이스였다.
(I-17 과 같은 B1 타입 잠수함인 I-25. 특이하게도 잠수함으로는 다소 큰 140 mm 함포를 지니고 있었다this photographic image is considered to be public domain according to article 23 of old copyright law of Japan and article 2 of supplemental provision of copyright law of Japan.)
이 일로 미국 서부 도시들이 얼마나 긴장했는지는 그 다음날 벌어진 LA 공습 경보 사건에서도 알 수있다. 1941년 2월 24 일에서 25일 사이 밤에 가상의 일본군 공습에 대한 경보가 발령되어 온 도시가 발칵 뒤집히고 엄청난 대공 포화가 도시 상공을 수놓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비록 나중에 잘못된 경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당시 미국 사회가 일본의 본토 공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다.
(당시 LA 공습 경보 사건을 보도하는 LA 타임즈.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because it was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between 1923 and 1963, and its copyright was not renewed. )
물론 현실적으로는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긴 했지만 만약에라도 있을지 모르는 일본의 공습에 대비하여 미국 정부는 캘리포니아 지역에 주요 항공기 생산 공장들과 그 주변 지역에 엄격한 등화 관제를 실시함과 동시에 거대한 위장막을 설치 공장 자체를 시골 마을로 위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업은 순식간에 진행됬다.
이 위장막 건설 사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캘리포니아 버뱅크 (Burbank) 록히드 베가 항공기 공장이다. 이 공장은 P-38 을 비롯한 2 차 대전 당시의 비행기는 물론 SR - 71, F-117 같은 유명한 항공기가 여기서 생산되었으며 기발한 아이디어로 유명한 스컹크 웍스 (Skunk Works) 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이 공장은 한대 80800명이 근무할 정도로 공장이 거대했기 때문에 이 공장 뿐 아니라 주변의 주차장과 부속 건물, 근로자가 사는 주택가들을 모두 시골로 위장한다는 것은 대 역사 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해냈다.
(위장전의 버뱅크 록히드 베가 항공기 공장 )
(록히드의 P - 38 라이트닝 생산 라인, 대전 기간 1만대가 넘게 조립되었다. 버뱅크 록히드 공장의 대표 제품 가운데 하나다 the image or file is in the public domain. )
그리고 위장 후의 록히드 버뱅크 공장
위장 후엔 위에서 볼때는 정말 확실하게 시골 지역으로 위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버뱅크에서만 이런 엄청난 역사가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더글라스사의 항공기 공장들도 이런 식의 위장이 행해졌다.
위의 사진에서 공장을 찾을 수 있을까 ?
정답은 사진의 왼쪽 아래 1/4 부위가 더글라스 항공기 공장이다.
더글라스 비행기 공장의 위장막 바로 위에서 찍은 사진, 가짜 나무와 천으로 만든 도로와 밭, 그리고 목재로 대충만든 가짜 세트 주택들이 보인다.
실제 위장막 아래는 이렇게 생겼다.
위장막을 가까이서 보면 조잡한 캔버스 천과 목재, 그리고 가짜 나무들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잉사의 항공기 공장 역시 아주 정교한 가짜 도로와 주택, 학교등으로 위장되었다.
(보잉 항공기 공장 위를 덮은 가짜 도로, 천과 나무로 만들어진 가짜다. 그 아래 진짜 공장이 있다. )
재미있는 것은 가짜 항공기 및 비행장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일본군이 가짜를 공격해서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거대한 위장막과 가짜 비행기등을 만드는 작업은 여러 회사들의 합작으로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굿이어사는 고무로 만든 가짜 비행기를 납품했다.
이와 같은 위장 작업의 상당 부분은 엘우드 포격사건 이후 이 작업을 계획한 오머 대령 (John F. ohmer) 지휘아래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헐리우드 영화사들 -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디즈니, 유니버셜 - 을 징발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영화사들이 보유한 세트 제작자와 화가, 애니메이터들은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이런 세트 제작에는 누구보다도 능숙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에는 이것을 모두 공병대가 했다고 되어 있지만 그냥 생각해 봐도 진짜같은 가짜 도시 건설은 영화 제작자들, 특히 헐리웃 종사자들이 가장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과제였다. 얼마나 많은 작업에 공병대가 투입되었는지 상세한 기록은 찾지 못했지만 가짜 시골 만들기 작업의 주요 부분은 이 일에 능숙한 세트 제작자의 몫이었다고 한다. 군 입장에서도 많은 전투 병력을 빼내기 보단 이런 전투에 적합하지 않는 민간인들을 징발해서 하는게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사실 오머 대령의 무모한 계획이 성공한 것도 이들의 도움 덕이었다. 다만 이말이 공병대가 투입된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
그들은 영화 제작을 위해 가짜 도시들을 수없이 만들긴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헐리웃 최대의 가짜 도시는 영화 촬영용이 아니라 전쟁용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이 엄청난 과업을 1942년 초에 시작 수개월 만에 완성시켰다. 그것은 쓸모없긴 했지만 진정 헐리웃 역사상 두번 다시 할 수 없는 사상 최대의 블록 버스터였다.
이렇게 본다면 I-17 의 잠수함 승조원들은 미국 상선과 해안 시설을 파괴한다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보다 몇배의 자원을 쓸데 없는데 소진하게 만들므로써 아무튼 일본에 기여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위장이 존재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 거대한 위장막은 1942년 6월 미드웨이에서 미국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미 서부 해안에 대한 위협이 사라졌다고 생각되자 결국 제거되고 말았고 지금은 그것이 존재했다는 증거인 사진만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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