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부터 상장폐지 소문이 나돌던 델 (Dell Inc.) 가 진짜로 상장폐지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델은 주식회사 형태에서 마이클 델 CEO 및 사모펀드 실버 레이크 (Silver Lake) 등이 소유하는 유한회사 (Private Company) 형태로 전환됩니다. 델은 현재 주주들에게 인수하는 형식으로 상장폐지가 되는데 주주들은 주당 13.65 달러, 총 244 억 달러를 받게 됩니다. 2013 년 1월 11일 거래가 중단된 종가 10.88 달러보다 훨씬 높은 가격인데 이 정도 가격을 제시해야 주주들의 반발 없이 기업 매입이 가능하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마이클 델 CEO )
델의 인수 방식은 LBO (Leveraged Buy out : 차입매수) 인데 이는 기업을 인수하는 측이 인수할 기업의 자산이나 가치를 담보로 은행권에서 돈을 빌려 인수하는 방법입니다. 은행측에서는 이런식으로 인수하고 망할 것 같으면 당연히 돈을 빌려주지 않겠죠. 일단 뱅크오브 아메리카 (BOA), 메릴린치, 바클레이즈, 크레딧 스위스, RBC Capital Market 등이 이 인수 비용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총 244 억 달러의 인수 비용중 150 억 달러는 LBO 형식으로 은행권에서 델 회장과 실버 레이크가 부담했고 20 억 달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빌려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외 델 회장 본인 지분이 14% 정도 됩니다.
대개 상장 폐지라는 것은 기업이 사실상 상장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만큼 어려워졌을 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델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비록 빚을 내서 상장폐지를 해도 델에게는 여전히 현금 150 억 달러가 남게 된다고 합니다. 즉 파산하거나 혹은 파산 보호 신청 (챕터 11) 을 신청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마이클 델 회장과 사모 펀드 실버레이크가 주가 되는 투자자가 소유하는 유한회사로 전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명은 델 회장이 진행하는 회사 개혁에 대해서 주주들의 반대를 무마하고 눈치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는 설명입니다. 사실 델과 HP 는 PC 산업의 부진으로 인해 가장 고통을 받는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델의 경우 PC 시장 1 위 자리를 HP 에 빼앗긴 것도 모자라 이제는 중국 레노버에 2위를 내주고 3 위로 물러난 상황입니다. PC 시장 1,2 위는 현재 HP 와 레노버가 경쟁하는 상황이고 델이 다시 이자리로 치고 올라갈 가능성은 당장에 낮아 보입니다.
여기에 PC 산업 자체가 2012 년에 들어 모바일, 특히 타블렛 PC 와 스마트폰의 급성장과 더불어 글로벌 경기 하강까지 맞물려 위축되면서 델은 순이익과 매출, 주가 모두가 쓴 맞을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델은 회사를 PC 판매 전문 업체에서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전문 업체로 탈바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체질 변화는 PC 산업이 이제는 블루오션이 아닌 레드오션이라는 점을 직감하고 IBM 호환 PC 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면서도 PC 부분을 레노버에 매각한 IBM 이 선두 주자입니다. IBM 은 성공적으로 PC 부분을 정리하고 엔터프라이즈 및 HPC 솔루션 전문 업체로 탈바꿈해서 서버, 워크스테이션, HPC, 기타 기업과 공공 기관을 위한 IT 솔루션 전문 업체로 그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었습니다. 100 년 가는 기업답게 IBM 은 이제 PC 산업에서만 좀 멀어졌을 뿐 여전히 IT 산업의 강자입니다.
PC 산업 좀더 발을 담그고 있다가 어려움을 겪는 HP 와 델에 입장에서 IBM 은 성공적인 체질 변화의 본보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HP 는 벌써부터 서버 산업에 진출해 있고 이제는 오라클이나 IBM 같은 전문 IT 솔루션 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델 역시 서버 부분에 진출해 있기는 하나 토탈 IT 솔루션이라는 관점에서는 IBM 은 물론 HP 보다도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델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업체인 퀘스트 소프트나 와이즈테크놀로지등을 인수하면서 체질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고 한동안 매출 하락과 이익 감소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가도 떨어질 테고 주주들의 반발이 심할 테니 아예 지금 처럼 주식이 떨어졌을 때 회사를 유한회사로 전환한다는 것이 마이클 델 회장의 복안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 입니다. 몇가지 큰 변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로 새롭게 파트너가 된 실버레이크 등과 과연 델 회장의 협력 과정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서로 경영권을 두고 다투게 되는 경우 문제가 복잡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델의 모바일 전략이 지금도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HP 도 비슷한데 아무튼 델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기기에 대한 전략이 현재 부재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만약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실패할 경우 델은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번째는 이미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시장 역시 많은 경쟁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IBM 과 오라클을 비롯, HP, 시스코 등 여러 업체들이 경쟁 중이고 이곳에서의 경쟁 역시 모바일 시장 못지 않게 치열한 생존 경쟁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델의 계획이 순조롭게만 이루어질 것인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습니다. 네번재로 LBO 방식의 문제점으로 델이 가진 현금 보유량이 줄어들고 유동성이 감소한 만큼 향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MS 가 무려 20 억 달러를 델에 투자한 점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MS 가 결국 델의 일부 지분을 인수한 셈인데 MS 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두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자사의 서버 제품군을 델의 서버와 연동시키고 윈도우 8 을 비롯한 모바일 제품군을 델의 PC 등 기기와 연동 시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20 억 달러나 투자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는 계획입니다. MS 가 굳이 투자를 한 이유는 IT 산업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더 확대하기 위한 방편일 텐데 과연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기 힘든 상태입니다.
아무튼 상장 폐지라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통해 주주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델을 유한 회사로 전환한 마이클 델 회장이 과연 자신이 만든 델을 성공적으로 재탄생 시킬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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