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스털링 엔진을 사용한 금성 로버의 상상도. 출처: 나사)
나사는 태양계의 여러 극한적 환경을 탐사해왔지만, 아직 정복하지 못한 장소도 있습니다. 최소한 수십km 두께의 얼음 밑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목성의 위성 유로파의 바다나 표면 온도가 섭씨 500도에 달하는 금성의 표면이 그런 장소라고 할 수 있죠.
물론 금성 표면에는 이미 탐사선을 보냈지만, 사실 표면의 극한적 환경 때문에 제한적인 탐사만 가능했을 뿐입니다. 화성처럼 로버를 보내 구석구석 탐사를 하지는 못했다는 것이죠.
금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강력한 온실효과로 인해 섭씨 500도에 달하는 고온과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높은 기압을 자랑합니다. 이런 이유로 구소련과 미국의 금성 착륙선들은 극한의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착륙 후 바로 연락이 끊기거나 혹은 수 시간 이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실 금성이 화성보다 더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금성 표면에 로버(Rover)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화성 표면에는 벌써 4번째 탐사 로버인 큐리오시티가 활약 중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로버를 보낼 계획이지만, 금성은 서류상으로만 계획이 존재하죠. 그러나 개발은 진행 중입니다.
금성 로버 개발에서 가장 곤란한 부분은 바로 전자 계통입니다. 지금까지 만든 어떤 반도체나 전자 기판도 이런 환경에서 장시간 작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겠죠. 이런 불지옥 행성에서 작동할 수 있는 튼튼한 기기라도 몇 시간 못 버티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국립 과학 재단 기금의 지원을 받은 오자크 집적 회로(Ozark Integrated Circuits)는 놀랍게도 섭씨 350도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반도체 칩을 개발했습니다. 이런 고온 전자 회로의 개발은 미국의 기초과학력을 보여주는 사례로써 앞으로 금성 탐사는 물론 고온 고압의 극한 환경이 필요한 다른 분야에도 널리 응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래도 금성 표면의 온도가 이것보다 높다는 것이죠.
따라서 나사의 과학자들은 금성 로버에 냉각장치를 탑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곤란한 문제이기도 한데, 로버의 내부를 섭씨 300도로 주변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뿐 아니라 부피와 무게도 커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화성에 보낸 로버들과 달리 금성 로버는 복잡한 탐사장치를 최소화시킨 단순한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냉각이 필요한 전자 계통의 크기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러면서도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에 자료를 전송해야 하므로 여러 가지 기술적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력 계통은 원자력 이외에는 처음부터 대안이 없으므로 (금성은 두꺼운 구름과 대기로 인해 태양전지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온도와 압력에서 견디는 태양전지도 없지만 말이죠.) 오히려 결정이 쉬울 것 같지만, 이런 고온 환경에서 견디는 원자력 전지 역시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가능성 있는 대안은 플루토늄 - 238을 이용한 스털링 엔진입니다. 스털링(Stirling) 엔진은 온도 차를 이용해 동력을 발생시키는데, 방사성 붕괴로 섭씨 1,200도까지 가열된 플루토늄 연료와 주변의 상대적으로 낮은 기온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이를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고온 고압 환경에서 움직이는 전기 모터 역시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이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즉 스털링 엔진으로 바퀴도 돌리고 냉각기의 모터도 같이 구동하는 것이죠. 일부 생산되는 전기만 전기 계통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하면 이런 극한 환경에서 수일에서 수주 정도 버틸 수 있는 로버를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런 환경에서 작동하는 로버를 만드는 일은 나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죠. 따라서 아직 금성 로버는 디자인 및 기초 연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계획으로는 금성 표면에 풍선을 보내 표면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저공비행을 하면서 관측하는 표면 관측 계획인 Venus In-Situ Explorer (VISE)이 먼저 시행될 것 같습니다.
VISE는 2022년 발사 예정이며 로버와 달리 움직이는 엔진은 필요 없어서 구조가 훨씬 단순합니다. 다만 이런 극한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특수 풍선이 필요한데, 이미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어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주변 압력이 크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작은 풍선으로도 큰 부력을 만들 수 있죠. 여기에 탐사선을 매달면 정처없이 떠돌면서 표면의 지형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금성 풍선 탐사선 VISE의 상상도. 출처: 나사)
금성 로버는 VISE 이후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러시아 역시 2020년대에 자체적인 로버를 금성에 보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과연 미국과 러시아 중 누가 먼저 로버를 보낼 수 있을지 미래가 궁금합니다.
일단 공개된 내용을 보면 나사가 훨씬 앞서 있는 것 같지만, 아직 어느 나라도 금성 로버를 자신 있게 보낼 수 있을 만큼 완성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화성과 마찬가지로 금성에 첫 번째 로버를 보내는 나라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릅니다.
아무튼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나사와 미 정부가 이런 기초 과학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 겠죠. '우주 강국' 같은 화려한 수식어와 미사여구가 아니라 바로 이렇게 조용하지만 할 건 다하는 부분이 미국이 이 분야에서 좀처럼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는 비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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