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미국의 재정 절벽 (fiscal cliff ) 에 관련된 포스트를 몇 편 작성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재정 절벽에 대한 우려는 여전합니다. 이것이 진짜 2013 년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강타할 태풍이 될지 아니면 그냥 기우에 그칠 것인지는 지금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타협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재정 절벽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 http://blog.naver.com/jjy0501/100171391885 와 오바마 증세 계획에 대한 http://blog.naver.com/jjy0501/100171894525 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정 절벽 협상이 아주 쉽게 결론이 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적어도 지금 시점에는 없을 것입니다. 벌써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한 것 처럼 공화당은 여전히 증세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반대로 민주당은 재정 지출 삭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금을 더 거두는 건 공화당이 반대이고 쓰는 돈을 줄이는 건 민주당이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패턴은 지난 십 수년간 반복되왔기 때문에 이젠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느낌입니다. 최근에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부자 증세 (라기 보단 감세 혜택 폐지) 를 포함한 1조 6000 억 달러의 증세안을 거부했고 행정부측은 공화당이 제안한 2조 2 천억 달러 규모의 재정 감축안을 거절했습니다.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단순히 재정 문제 해결과 경제 운용에 대해서 조금 의견이 다른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화당은 지난 80 년대 이후 그 효과가 다소 의문스럽긴 하지만 세금과 각종 규제를 철폐해서 생산과 경제 활동을 가로막는 장벽을 해결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공급 중심 경제 이론을 신봉하고 있으며 세금을 줄이고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아직 케인즈 주의가 여전히 힘을 얻고 있으며 정부 재정 지출 감축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사실 정부 재정 지출 감축은 대표적인 감세론자였던 레이건 행정부나 혹은 부시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에도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긴 합니다. 일단 정권을 잡으면 강력한 반대를 감수하면서까지 재정 지출을 줄이기 힘든데다 더 나아가 재정 지출 중 상당 부분이 메디케어나 사회 보장같은 부분에 집중되어 있어 이를 줄일 경우 아주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의 국론이 한쪽으로 집중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결론이 비교적 쉽게 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자체도 의견이 거의 양분된 상태이고 공화 민주 당간의 한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실 이건 이전부터 그래왔긴 했지만) 이 문제가 처음부터 쉽게 협상이 가능하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단 현재 미국 경제는 완전한 회복과는 거리가 먼 상태입니다. 실업률의 소폭 하락과 일부 경기 지표의 반등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엔 민간 경제의 상태가 아주 좋다곤 말할 수 없는 상태이며 살아나고 있는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재정 지출 역시 말처럼 쉽게 감축할 수는 없는 상태이며 이런 감축 자체가 정부 부분 소비를 감축시켜 미국 경제의 회생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이미 16 조 달러 이상을 돌파한 미국의 국가 부채가 계속해서 매년 1 조 달러 이상씩 급증하게 될 상황이니 이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정부의 부채 한도를 법으로 정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채 한도를 의회에서 법으로 정해놓은 이유는 행정부가 과도한 국가 부채를 만들어 국민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겠지만 사실 실제로 본다면 그런 순기능을 하기 보다는 의회와 행정부가 이를 두고 극한 대립을 보이는 등 정쟁의 도구로만 활용되고 있어 이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계속 이 법이 유효한 상태로 오바마 행정부는 곧 이 한도 (즉 16 조 3940 억 달러) 를 돌파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협상 역시 불가피한 상태입니다. 빠르면 2013 년 1월에 이 한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래 이를 위한 협상은 재정 절벽 협상과는 별개이지만 결국 시기상 겹칠 뿐 아니라 재정 문제라는 점에서 연계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협상은 더 복잡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재정 절벽이 현실화되는 경우와 대체 시나리오가 나오는 경우 미국의 재정 적자 규모 예상 시나리오. 일단 본래 2013 년에 대략 재정 적자를 5000 - 6000 억 달러 수준까지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현재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무리하게 건전 재정을 유지하려 할 경우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재정 절벽 시나리오가 우려되는 상태입니다. Source : CBO )
(위의 그래프를 정부 부채로 환산한 그래프, 만약 과거에 합의한 대로 재정 지출을 줄이고 세금 감면 혜택을 중단할 경우 미래 미국의 국가 및 공공 재정은 건전해 지겠지만 대신 경기 침체가 심화될 우려가 있고 너무 심각하게 경기가 위축되는 경우에는 위의 시나리오와는 달리 오히려 국가 재정이 부실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현재의 지출과 감세를 유지하는 경우 공공 부채는 점차 증가해 GDP 의 100% 를 상회하면서 더 커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자 지급만 해도 만만치 않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Source : CBO )
만에 하나라도 재정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재정 절벽이 현실화되는 경우 2013 년 1월 부터 감세 혜택은 사라지게 되며, 이전에 합의한 법안에 따라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평균 적인 가정은 약 2000 달러 정도 세금을 더 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소비 위축 및 실질 구매력 감소로 이어질 것이 우려됩니다.
재정 지출 감축은 2013 년 한해 동안 국방부분 (550 억 달러), 비국방부분 (550 억 달러) 에 걸처 이루어지는 데 이 경우 군인 연급 지급에서 군 장비 유지, 수리, 신무기 구입등 모든 부분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비국방 부분에 있어서도 정부의 사회 보장 대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200 만명 정도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기타 광범위한 저소득 층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정 절벽이 현실화 되는 시나리오와 협상을 통한 대체 시나리오시 차이. 클릭하면 원본, Source : CBO )
재정 절벽이 현실화되는 경우 2013 년 미국의 GDP 성장률은 - 0.5 % 수준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세계 경제 성장률을 끌어 내릴 것입니다. 대신 정부 재정 적자는 6410 억 달러로 줄어들게 됩니다. 대체 시나리오 (CBO 가 제시한) 의 경우 1조 370 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유지할 때 + 1.7% 의 GDP 성장률이 예상되며 완전한 회복이라고 하긴 힘들어도 서서히 경제가 회복되리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일단 2012 년 12월은 재정 절벽에 대한 협상과 곧 다가올 정부 부채 한도 협상 문제로 인해 전세계 경제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협상이 원만히 타결되는 경우 경기 회복에 청신호가 켜지겠지만 지지 부진하게 시간을 끌게 될 경우 이전의 미정부 부채 협상에서 보듯이 경제와 시장에 적지 않은 악영향이 예상됩니다. 따라서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의 대국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행히 공화당 내부에서도 증세를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고 오바마 행정부 역시 이전에도 그랬듯이 공화당에 일정 부분은 양보할 생각을 가지고 있어 최악의 상황만 아니라면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어 재정 절벽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런 최악의 경우는 아무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 없으며 무엇보다 오바마 행정부 및 민주 공화 양당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난항 중이지만 빨리 이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기사를 보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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