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우주 이야기 237 - 은하계를 탈출하는 과속 구상 성단



 구상성단 (Globular Cluster) 은 수만개에서 수백만개의 별이 중력으로 서로 뭉쳐있는 별의 집단으로 대개는 아주 오래된 별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우리 은하계에만 150 개 이상의 구상 성단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우주 초기에 발생한 오래된 별들의 집단으로 종종 초기 우주의 골동품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구상 성단이라고 하면 대개는 오래되고 정적인 별들의 집단으로 여겨지게 마련이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하버드 -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하버드 -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넬슨 콜드웰 (Nelson Caldwell of the Harvard-Smithsonian Center for Astrophysics) 과 그의 동료들은 Astrophysics Journal Letters 에 발표한 논문에서 너무 빠른 속도로 이동해서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은하계를 탈출해서 은하 사이 공간으로 나갈 운명인 구상 성단을 발견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거대한 블랙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대형 타원은하인 M87 은하에는 (이 은하는 적어도 수천개의 구상 성단을 가지고 있음)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구상 성단이 있다고 합니다. HVGC-1 (hypervelocity globular cluster) 라고 명명된 이 구상 성단은 연구팀이 수년간 M87 을 관측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애리조나에 있는 MMT 망원경으로 수백개의 구상 성단을 관측하고 그 속도를 측정하던 중 매우 빨리 움직이는 이 구상성단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속도는 지구에서 관측했을 때 시속 200 만 마일 (시속 320 만 km) 에 달합니다.  



(M87 은하에서 탈출하는 HVGC - 1 의 상상도. 실제로는 구상 성단에 비해 M87 은하가 압도적으로 큼. This artist's illustration shows the hypervelocity star cluster HVGC-1 escaping from the supergiant elliptical galaxy M87. HVGC-1 is the first runaway star cluster discovered by astronomers. It is fated to drift through intergalactic space. Credit: David A. Aguilar (CfA))  


(실제 HVGC - 1 의 모습  The runaway star cluster HVGC-1 (circled) in a photo from the Canada-France-Hawaii Telescope. The cluster is zooming toward us at a speed of more than two million miles per hour. Credit: CFHT )   



 이 정도면 과속에 걸려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속도가 되겠죠. 다만 우주에는 도로가 없기 때문에 과속 벌금을 내는 대신 자신이 있는 은하계에서 뛰쳐 나가게 됩니다. M87 은하는 수조개 이상의 별이 모인 초대형 은하계지만 이런 속도로 계속 움직일 경우 HVGC - 1 은 결국 미래에 M87 은하를 벗어나 은하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힘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구상 성단을 가속했을까요 ? 적어도 수만개 이상의 별이 모인 구상 성단인 HVGC - 1 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만드려면 일반적인 질량과 중력을 가진 물체로는 불가능합니다. 연구자들은 M87 은하 내부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이 이 속도의 비밀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태양 질량의 수십억배의 질량을 지닌 초대형 블랙홀 주변으로 끌려가던 구상 성단이 가까스로 흡수되는 운명을 피하고 대신 보이저 1/2 호 처럼 중력에 의해 가속되어 은하 밖으로 튕겨나가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M87 은하는 아마도 여러개의 작은 은하들이 중력에 의해 합병되어 탄생한 초대형 은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은하 중심 블랙홀은 여러차례 합체를 반복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연구팀은 HVGC - 1 의 존재가 어쩌면 M87 의 은하 중심 블랙홀이 하나가 아니라 2 개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이 은하 중심의 블랙홀은 엄청난 크기의 제트와 더불어 거대한 질량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지만 5000 만 광년 이상 떨어진 거리와 은하의 거대한 크기로 인해 중심부 관측은 제한적으로만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실제 내부 구조가 어떤지는 아직은 추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간에 초고속으로 은하를 탈출하는 HVGC - 1 은 사실은 구사일생으로 초거대 블랙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정처없이 우주를 떠도는 신세가 되겠지만 아예 사라지는 것 보다는 그쪽이 더 나은 운명이겠죠. 은하 사이 우주 공간을 질주해도 수많은 별들이 함께 가는 만큼 외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참고  






댓글

댓글 쓰기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