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상처를 입어도 스스로 치유되는 물질



 오랬동안 생명체 처럼 스스로 치유되는 물질의 개발은 엔지니어들의 꿈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고 직후부터 스스로 알아서 손상을 회복하는 자동차 범퍼나 표면에 흠집이 생겨도 다시 없어지는 유리 같은 물질이 있다면 매우 유용한 쓰임새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몇가지 가능한 시도들이 있기는 했지만 생체 조직처럼 완벽하게 치유와 재생이 가능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할 수 있겠죠. 


 최근 일리노이 대학의 스콧 화이트 교수 (professor Scott White) 가 이끄는 연구팀은 손상을 입은 후에 상처가 치유되듯이 손상부위가 복구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해 이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것은 사실 저절로 알아서 손상을 복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손상 부위를 빠르고 쉽게 복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분야에서 응용의 가능성이 있어 주목됩니다. 




(중간에 구멍이 뚤린 물질 안쪽으로 두가지 종류의 폴리머를 이용해서 손상 부위를 메꾸고 회복시키는 모습   Illinois researchers have developed materials that not only heal, but regenerate. The restorative material is delivered through two, isolated fluid streams (dyed red and blue). The liquid immediately gels and later hardens, resulting in recovery of the entire damaged region. This image is halfway through the restoration process.
Credit: Ryan Gergely




(설명 영상) 

 이는 두가지 종류의 액체 상태 물질이 상처 부위에서 만나서 급속히 응고되면서 다시 견고한 구조가 되는 방식인데 연구팀은 인체의 혈액 응고 과정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생체 모방 (Biomimetic) 엔지니어링인 셈입니다. 우리의 인체는 상처가 난 부위가 있으면 혈액이 흐르면서 응고되어 일단 혈액이 더 손상되는 것을 막고 여러 단계를 거쳐 복잡한 조직을 재생합니다. 물론 상처가 크면 완전히 복구되지 않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로 무생물에서 이와 견줄만한 자기 회복 메카니즘을 구현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일리노이 대학 연구팀의 기술 역시 생체 모방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생명 현상에 비해서는 매우 단순합니다. 하지만 원리적으로는 여러 분야에 응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이와 같은 회복 메카니즘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들은 특수한 형태의 플라스틱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만든 플라스틱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부에는 특별히 만들어진 작은 모세관이 거미줄 처럼 뻗어 있습니다. 이는 물론 생체의 혈관 시스템을 모방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혈관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이 물질은 외부에서 혈액에 해당하는 폴리머만 공급된다면 손상이 일어난 부위를 다시 메꿀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손상이라고 해도 아주 크지만 않다면 미세관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들어온 폴리머에 의해서 메워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은 간단해도 이를 실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연구팀은 두가지 형태의 액체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두개의 복잡한 미세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여기에 액체를 흘려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중력에 영향에서 자유롭게 손상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가능하면 신속하게 경화되어 '상처' 부위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개발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놀랍게도 투명하지만 두가지 다른 폴리머를 내부 혈관에 지니고 있다가 상처가 나면 순식간에 이 부분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총알에 뚫려도 다시 막히는 플라스틱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향후 이 기술이 어떻게 응용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 자체로 놀라운 기술인 점은 분명합니다. 물론 아직 진짜 생명체를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말이죠. 


 참고 


Journal Reference:
  1. S. R. White, J. S. Moore, N. R. Sottos, B. P. Krull, W. A. Santa Cruz, R. C. R. Gergely. Restoration of Large Damage Volumes in PolymersScience, 2014; 344 (6184): 620 DOI: 10.1126/science.1251135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