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초파리도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



 초파리 (fruit fly) 는 몸길이가 수 mm 에 불과한 작은 파리로 특히 썩은 과일이나 음식물 쓰레기 위에 흔하게 나타나 귀찮게 만드는 곤충입니다. 그런데 초파리가 큰 파리에 비해서 징그럽지 않기는 하지만 역시 하찮은 생물이라는 인간의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사이언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샤믹 다스굽타 (Dr Shamik DasGupta) 와 그의 동료들이 이 작은 초파리가 행동을 하기전 생각을 한다 (Fruit flies 'think' before they act) 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보고한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본래 초파리가 냄새의 농도에 따라 먹이를 찾거나 위험을 회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실험했으나 그 결과는 놀랍게도 초파리가 충동적, 본능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하기 전 아마도 어떤 판단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수 mm 에 불과한 초파리의 뇌와 신경계가 얼마나 작은 지를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몸길이가 수 mm 에 불과한 초파리도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Drosophila sp fly. Credit: Muhammad Mahdi Karim/Wikipedia )


 연구자들은 초파리 (Drosophila fruit flies) 를 특정 농도의 냄새를 피하도록 훈련시킨 후 이 초파리를 좁은 방에 넣고 양끝에서 냄새의 농도를 달리하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 관찰했습니다. 냄새를 내는 화학물질의 농도가 아주 큰 차이를 보이면 초파리는 정확하고 빠르게 맞는 답을 찾아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농도가 구별하기 힘들면 정확한 답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 다른 특징이 없지만 연구자들이 FoxP 라는 유전자에 변형을 일으킨 초파리를 실험했을 때 정상 초파리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즉 이 유전자가 변형되어 제 기능을 못하는 초파리들은 애매한 농도에서 답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혹은 제대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초파리의 FoxP 유전자는 초파리의 뇌를 구성하는 20 만개의 뉴런 (neuron) 가운데 200 정도 뉴런이 모여 있는 작은 클러스터 주변에서 주로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위가 초피리가 경험과 여러 근거를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초파리의 FoxP 유전자는 한가지이지만 훨씬 고등한 동물인 인간은 4 가지 종류의 FoxP gene 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FoxP1 과 FoxP2 는 각각 언어 및 인지 발달에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동시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정교한 동작을 학습하는데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수많은 동물에서 이 유전자는 생각하는 능력과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유전자에 장애가 생긴 초파리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장애를 보였다는 점은 이 유전자가 초파리에서도 학습과 인지 능력에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동시에 초파리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애시당초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면 다른 감각기능은 멀쩡하므로 유전자에 이상 유무와 상관없이 같은 행동을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죠. 


 현재까지 과학자들은 언어 유전자 (language gene) 이나 혹은 의사 결정 유전자 (decision - making gene) 이라 불리는 FoxP  유전자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정신 활동에 관여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보다 훨씬 간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면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연구를 진행하기 쉬운 (인간에서 돌연변이를 유발해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 초파리를 이용해서 그 비밀을 조금더 다가선 셈입니다.


 아무튼 초파리도 '학습' 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는 흥미롭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귀찮은 초파리를 없애기전에 우리 인간들이 한번 더 생각을 할 이유는 없겠지만 말이죠.   


 참고   




Journal Reference:
  1. Shamik Dasgupta, Clara Howcroft Ferreira, and Gero Miesenbock. FoxP influences the speed and accuracy of a perceptual decision in Drosophila.Science, May 2014 DOI: 10.1126/science.1252114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