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생명에 언어에 새로운 알파벳을 더하다 - 인공 염기쌍을 지닌 박테리아 탄생



 DNA  는 생명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정란의 핵안에 들어 있는 DNA 에는 앞으로 이 세포가 닭이나 토끼, 사자 혹은 인간이 되는 정보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안에는 수만개의 유전자가 존재하지만 사실 그 기초가 되는 알파벳은 매우 단순합니다.  


 한쌍씩 짝을 이루는 4 개의 염기인 A-T, G-C 가 그것으로 아데닌 (Adenine), 구아닌 (Guanine), 사이토신 (Cytosine), 티민 (Thymine) 라는 4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DNA 에 기록된 정보는 RNA 를 거쳐 각각의 단백질에 들어갈 아미노산의 종류와 순서를 정해주는데 이 단백질을 통해서 고유의 생명활동이 일어나게 되죠.  





(익숙한 DNA 의 구조.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지녀볼 수 있습니다. 왜 단지 4 개의 염기만이 존재할까요. 더 많은 종류의 염기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요 ? 실제로 과학자들은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에는 쓰이지 않기는 하지만 실험실에서 ATGC 이외의 다른 형태의 염기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4 개만이 (물론 RNA 까지 포함하면 우라실 (Uracil) 도 추가) 선택되었는지도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과연 인공적인 염기를 가진 생명체가 존재할 수는 없는지 역시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크립 연구소 (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 (TSRI)) 의 플로이 롬스버그 (TSRI Associate Professor Floyd E. Romesberg) 와 그의 동료들은 단순한 대장균에 A-T, G-C 외에 3 번째의 염기쌍을 지닌 유전자를 삽입하는데 성공해 이를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그의 연구팀은 1990 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염기쌍을 지닌 유전자가 실제로 단백질을 코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연구를 지속해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이 쉽지 실제로 A-T, G-C 외에 새로운 인공 염기쌍을 DNA 에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고 합니다. DNA 는 두가닥의 고분자가 지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두가닥으로 풀렸다가 다시 결합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인공 염기쌍들이 잘 달라붙지 않거나 다른 염기에 달라 붙는 경우로 이렇게 되면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DNA 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연구팀이 이 문제를 극복하고 실제 살아있는 박테리아에 이를 주입해 기능을 하게 만든 것은 인공 DNA 연구에서 한획을 그을 수 있는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추가된 염기쌍.  Expanding the genetic alphabet. Credit: Synthorx )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염기쌍을 넣으면 어떤 장점이 있는 것일까요 ? 연구팀에 의하면 이렇게 3 쌍으로 만들게 되면 현재의 64 코돈 (Codon - 3 개의 염기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단위) 에 비해 더 많은 216 코돈 (Codon) 이 탄생하게 되어 무려 172 개나 되는 아미노산 (자연적으로는 약 20 개 정도) 을 가진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새로운 신약이나 신물질 개발, 나노 테크놀로지등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무궁무진 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생각입니다.


 연구팀은 짧은 DNA 의 가닥인 플라스미드 (Plasmid) 에 새로운 염기쌍을 삽입했습니다. 그것은 d5SICS 와 dNaM 라는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염기쌍 (unnatural base pairs (UBPs)) 입니다. 이 분자들이 선택된 이유는 PCR 을 통해 쉽게 증폭이 가능하며 DNA 에 삽입되어 정상적으로 전사 (transcription : DNA 를 바탕으로 RNA 를 만드는 과정) 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염기쌍을 가진 DNA 를 가진 생명체가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 여기에 대해서 연구팀은 통제 되지 않는 위험한 박테리아가 실험실 밖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해놓았습니다.  


 새로운 DNA 염기쌍을 지닌 대장균이 증식하기 위해서는 본래는 존재하지 않는 d5SICS 와 dNaM 이 필요합니다. 자연계의 생물체 가운데 이 물질을 합성하는 능력이 있는 생물체가 없기 때문에 자연적인 염기와는 다르게 이 물질은 외부에서 계속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물질이 세포 내부로 들어가게 돕는 물질도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공급이 없으면 새로운 염기쌍을 지닌 유전자는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플라스미드가 삽입된 대장균은 본래 정상적인 DNA 도 가지고 있어서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겠지만 필요 없어진 추가 유전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버리게 되어 결국 정상 대장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래 그림 참조) 



(How to expand the genetic alphabet. / 클릭하면 원본 Credit: Synthorx )    


 사실 개인적으로 생명의 역사의 초기에서 ATGC 라는 분자 4 개가 유전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현재 다른 방식을 지닌 생명체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ATGC 만으로도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해서 생존에 문제가 없다면 그 이상 가지는 것은 쓸데없는 낭비이자 생존에 불리한 요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특수한 신물질 합성과 생산을 위해 인공적인 염기쌍을 추가한다는 아이디어는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 향후 안전성 이슈와 비용등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신물질 개발, 나노 기술, 신약 개발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가지 더 흥미가 가는 부분은 왜 ATGC 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입니다. 과연 어떻게 응용이 가능할지 궁금하네요.  


 참고  



Journal Reference:
  1. Denis A. Malyshev, Kirandeep Dhami, Thomas Lavergne, Tingjian Chen, Nan Dai, Jeremy M. Foster, Ivan R. Correa, Floyd E. Romesberg. A semi-synthetic organism with an expanded genetic alphabetNature, 2014; DOI:10.1038/nature13314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