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노르웨이에서 오슬로 정부 청사 폭탄 테러 및 우퇴위아 섬 노동당 여름 캠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총 77 명을 숨지게 한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Anders Behring Breivik) 에게 5명의 판사들은 만장 일치로 그가 범행 당시 정신 상태가 정상이었으며 따라서 의료 시설에서 정신 치료를 받는 대신에 교도소에서 최소 10 년에서 최대 21 년형의 예방적 구금을 받도록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재판에서 특이한 점은 예시당초 노르웨이 법률에서 사형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종신형이나 이에 가까운 장기 실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았지만 특이하게도 검찰은 그를 정신 이상자로 - 사실 생각하는게 정상이라고 보기도 힘들긴 합니다. - 몰아가려고 했으며 스베인 홀덴 검사는 그의 정신 상태를 정상으로 판결한 이번 판결에 불만을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범행이 정당하다고 믿는 브레이비크는 의료시설에서 정신 치료를 받는 대신 교도소 수감을 선호했으며 이날 판결이 나오자 얼굴에 미소를 띄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래 링크 영상 참조)
이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테러범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아직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분을 느낄만 한데 - 본인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 노르웨이 자체가 범죄가 별로 없고 형이 가벼운 국가라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민주 국가에서 이를 뒤집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Eurabia 라는 음모론을 신봉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법정에서 유럽의 이슬람화를 막기 위해 자신의 테러 행위가 필요했다는 주장을 반복한바 있습니다. 이 음모론은 유럽을 아랍화 시키고자 (Eurabia) 하는 음모가 1970년대 이후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결국 무슬림들이 유럽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황당 무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시행하는 다문화 정책이나 이민자 및 소수 인종, 소수 종교 보호 정책이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럽을 이슬람화 하려는 치밀한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부와 공공 기관, 학계에서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동기로 유럽 각국의 정부가 자신들의 국가를 이슬람화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1973 년 석유 위기 당시 유럽 경제 공동체 (European Economic Community - EU 의 전신) 가 아랍 연맹 (Arab League) 에 가입하려 했으며 이후 유럽 연합은 아랍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말이 안되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말이 안되는 내용이 유럽 재정 위기 이후 일부 극우파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음모론은 사회적으로 소외 계층이나 중하류층 이하에서 큰 지지를 받게 마련이고 특히 지금처럼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실업률이 높아지거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외국인 노동자 (특히 유럽에서는 아랍계) 들 때문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럽을 아랍화 시키려는 음모가 진행중 이라는 극단적인 음모론이 이들에 대해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큰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브레이비크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아니고 노르웨이 역시 사회적 안정망이 잘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경제 위기 이후로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곤 해도 이런 엄청난 범죄가 일어날 만큼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범죄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브레이비크 본인은 9년에 걸쳐 (2002 년부터, 즉 23 세부터 범행을 준비. 올해 33세) 준비했다고 진술했는데 그가 음모론에 빠지고 범행에 대한 계획을 세웠을 당시에 그가 그렇게 경제적으로 빈궁한 상황도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07 년 소득 신고에서는 그는 적어도 10 만달러 (USD)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9 년에 그는 Breivik Geofarm 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농장을 경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시기 부터 범죄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폭탄테러에 필요한 여러 물품들을 농사 짓는데 필요한 합법적인 물품인 것처럼 등록해 구매했다고 합니다.
비록 이시기에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노르웨의 사회적 안정망을 감안하고 그의 재산 수준을 감안할 때 그가 극단적 궁핍에 빠져 (사실 그는 범행을 위해 사용한 돈이 이런 저런 간접적인 것 까지 합치면 31만 7000 유로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돈이면 10년간 일하지 않고 살수 있는 금액인데 이걸 테러 준비에 사용한 것 자체가 경제적 궁핍이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닌게 분명합니다. 오히려 범죄를 준비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케이스입니다.
브레이비크는 평소에 이슬람 비방 블로그를 운영하고 자신의 Eurabia 및 이슬람 혐오 사상을 담은 2083: A Europ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라는 개요서를 인터넷에 유포하는 등 자신의 극단적인 반 이슬람 사상과 음모론을 유포해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경제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오래전 부터 음모론을 확신했고 이를 막기위해 자기 나름대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보면서까지 테러를 준비해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진짜 제정신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를 테스트한 심리치료사들은 처음에 그를 편집형 정신 분열증 (Paranoid Schizophrenia - 망상 (delusion) 을 주 증상으로 하는 정신 분열증으로 이 망상은 매우 체계적일 수도 있음) 으로 진단했으나 이후 여기에 대해서 계속 논란이 있어오다 결국 법정에서 정신 상태가 정상인 것으로 판결했습니다. 브레이비크 본인도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이 판결에 만족했습니다.
여기서 글을 쓰는 저야 그가 진짜 편집형 (망상형) 정신 분열증이나 혹은 인격장애 (Personality disorder) 가 있는 지 알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체계적인 범죄를 수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봤을 때 오히려 정신 분열증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긴 합니다.
아무튼 법정에서 미소를 띤 테러범이 노르웨이의 성숙한 민주주의와 사회적 안정망을 오히려 악이용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로 마무리 짓는 걸 자축하는 것만 같아 불편한 느낌입니다. 노르웨이의 교도소 환경은 매우 쾌적하며 형별 역시 이번 판결에서 보듯이 매우 가벼운데 사실 이런 사회가 모두가 꿈꾸는 사회일 것입니다. 즉 가혹한 형벌 없이도 법치주의와 사회 안전이 지켜지는 사회말이죠. 분명 지금까진 그래왔습니다.
그런데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희대의 엽기 범죄자에 의해 이 좋은 제도와 사회가 큰 결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 노르웨이 국민들의 피와 땀이 이런 식으로 배신을 받는 것을 보면서 저역시 매우 씁쓸한 느낌이네요. 현재의 법과 제도를 살리되 뭔가 이런 희대의 엽기 범죄자를 따로 처벌할 예외 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판결이었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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