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병 (Lyme disease) 은 북반구 중위도 이상 지역에 널리 퍼진 진드기 매개 감염병으로 보렐리아 속 (genus Borrelia) 에 속하는 박테리아들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입니다. 북미에서는 주로 Borrelia burgdorferi 가 원인이 되고 유럽에서는 주로 Borrelia afzelii, Borrelia garinii 등이 원인이 됩니다. 이들은 특징적인 나선모양을 한 균들인 스피로헤타 (Spirochete) 과에 속하는 박테리아 들입니다.
본래 유럽에서 처음 라임 병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간간이 보고되다가 미국에서는 1975 년에 처음 보고가 되었고 역학 조사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진 후 현재는 가장 흔한 진드기 매개 질환 (Tick borne disease)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라임 병이라는 명칭도 이 때 조사가 이루어진 코네티컷 주 라임에서 유래) 과거에는 그다지 흔하지 않던 질환이 지금은 유럽, 아시아, 북미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진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이 병을 매개하는 진드기가 널리 전파된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또 이전에 진단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이전에도 어느 정도는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첫 케이스가 1970 년대 보고된 이후 1992 년에서 2006 년 사이에만 25만명의 환자가 CDC 에 보고되었습니다. 비록 년도별로 기복이 심한 질환이지만 매년 2만명 이상의 환자가 미국에서 보고되었으며 2007 년에는 27000 명의 환자가 보고되어 인구 10만명당 9.1 명까지 발병율이 증가했습니다.
(라임 병은 주로 북반구 중위도 이상 지역에서 널리 유행하는 새롭게 등장한 진드기 매개 감염 질환입니다. 갈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라임병 보고 국가. Vice regent at en.wikipedia )
(미국에서의 라임병 분포. 미국 전체에서 유행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발병율이 높습니다. Source : CDC )
한국에서는 2010 년 12월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몇차례 국내 보고 사례가 있었으며 2012 년 들어 법정 전염병 지정 이후 첫 감염사례가 보고되었다고 언론들이 전했습니다. 이 환자는 강원도 화천군 화악산에 등산을 갔다온 후 왼쪽 어깨를 참진드기에 물려 병에 걸린 것으로 역학 조사 결과 밝혀졌다고 합니다.
일단 진드기에 물려 보렐리아균이 주입되면 초기에는 아무 증상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드기에 물린 후 3일 에서 30일 사이 피부에 특이한 반점이 생기는데 이를 이동 홍반 (Erythema migrans EM 혹은 erythema chronicum migrans ) 이라고 합니다. 이 홍반은 붉은색으로 보이며 가운데 동그랗고 분명한 홍반 주위로 더 넓고 옅은 색의 홍반이 들러싼 것 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황소눈 (Bullseye) 이라고 하는데 눈 같이 보이는 붉은 피부 병변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대개 통증은 동반하지 않으며 피부가 부풀어 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이동 홍반은 전체 환자의 80% 에서 발생하며 이 때 감기 같은 두통, 근육통, 발열, 피로감등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초기 국소 감염 (Early localized infection) 부르는 이 시기가 지나고 보렐리아 균이 피를 타고 전신으로 퍼지면 진드기에 물린 곳 이외의 지역에서도 이런 홍반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동홍반이라고 부릅니다. (단 모든 환자에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초기에 균이 전신으로 퍼지게 되면 근육통, 관절통, 림프절 비대, 비장 비대, 인후통, 피곤감 등 감기 몸살 같은 증상을 일으키며 신경계를 침범하는 경우 뇌수막염이나 뇌염을 일으켜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기억력이 저하되는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 심장에서는 부정맥 (AV block) 을 일으키는 등 전신 질환으로 발전합니다. 이 시기는 초기 파종성 감염 (Early disseminated infection) 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 까지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일부 환자들은 수개월 후 후기 지속성 감염 (Late persistent infection)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는 보렐리아 균이 전신의 여러 부분에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육통 및 관절염 (특히 무릎 관절) 을 계속해서 일으킬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지속적인 신경계 감염을 일으키는 것인데 말초신경병증 (polyneuropathy) 를 일으켜 통증이나 손발 저림을 유발할 수도 있고 중추 신경계를 감염시켜 정신 분열증이나 혹은 공황장애등 정신 이상 증상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심한 신경 감염의 결과는 사지 마비가 오는 것입니다.
이런 감염의 결과는 보렐리아 균 자체의 감염에서도 오지만 일부는 잘못된 면역 병리 반응 (immunopathogenetic mechanism) 에 의해서도 일어나게 됩니다. 즉 본래는 몸을 지켜야할 면역 시스템의 원치 않은 작동으로 인해 더 큰 손상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아무튼 이런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험지역과 위험한 계절 (주로 6-7 월등 여름에 호발하는 질환) 에 산행을 할 때는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연계에서 매개곤충인 진드기 (Ixodes scapularis 같은) 들은 다양한 동물에 기생하지만 특히 쥐와 사슴등이 선호하는 숙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우연히 이들의 서식지에 들어오면 진드기가 사람을 물어 감염시키는 것입니다. 국내에는 해외에서 매개 진드기가 우연히 수입 목재등을 타고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전파 경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라임병이 전세계적으로 창궐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진드기가 사람과 야생/애완 동물, 기타 수입품에 뭍어서 전파되는 것으로 생각되며 교통이 발달하고 왕래가 활발해 지면서 전파 역시 활발해진 것이 아닌가 추정할 따름입니다.
(보렐리야 균 중 하나인 Borrelia burgdorefri, 스피로헤타 종류이기 때문에 나선으로 생긴게 특징 Using darkfield microscopy technique, this photomicrograph, magnified 400x, reveals the presence of spirochete, or “corkscrew-shaped” bacteria known as Borrelia burgdorferi, which is the pathogen responsible for causing Lyme disease. Borrelia burgdorferi are helical shaped bacteria, and are about 10-25μm long. Source : CDC )
(라임병을 옮기는 진드기 중 미국 동부에서 가장 흔한 Ixodes scapularis Source : A New View on Lyme Disease: Rodents Hold the Key to Annual Risk. Gross L, PLoS Biology Vol. 4/6/2006, e182. doi:10.1371/journal.pbio.0040182 )
진단은 특징적인 임상 증상 (예를 들어 이동 홍반) 과 더불어 이 병에 걸릴만한 병력 (등산을 했다든가), 그리고 혈정학적 검사등에 의존합니다. 다른 스피로헤타 균들처럼 보렐리아 균은 잘 배양이 되지 않으며 혈액배양등으로는 진단을 내리기 힘듭니다. 따라서 이동 홍반이 없거나 병력이 확실치 않은 경우 진단이 늦어질 위험이 존재합니다. 특히 한국처럼 최근에야 환자가 보고되는 국가에서는 라임병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동 홍반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 진단에 애를 먹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치료는 항생제를 통해 비교적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성인에서는 초기에 독시사이클린 (doxycycline) 치료가 추천되며 소아에서는 아목시실린 (Amoxicillin), 임산부에서는 에리스로마이신 (Erythromycin) 가 대신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 대안으로 세프트리악손 (ceftriaxone)/ 세퓨록심 (cefuroxime), 세포탁심 (Cefotaxime) 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질병에 각 단계와 환자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항생제가 선택될 수 있으며 기타 관절염이나 신경학적 증상, 심장 증상들에 대해서는 항생제 외에 각각의 문제에 맞는 치료가 선택될 수 있습니다.
라임병은 불치의 병이 아니고 치료를 받는 경우 사망율도 극히 낮습니다. 하지만 감염 후 제대로 치료 받지 않고 몇개월 후 후기 지속성 감염 단계까지 가는 경우 이런 저런 합병증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진드기에 물릴 행위 - 예를 들어 수풀이 우거진 곳에 들어가거나 진드기가 물기 쉽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경우 - 를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직 한국은 라임병이 매우 드문 질환이지만 미국 등의 선례를 볼 때 풍토병으로 자리잡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하네요.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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