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2030년대에 미니 빙하기가 올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 커뮤니티 사이트나 웹사이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저는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아마 잘 모르는 기자들이 잘못 알고 썼겠지...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 드물지 않으니까요. (기자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다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경우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자주 가는 과학 웹사이트인 phys.org 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를 읽고 난 후 과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 사건의 발단은
일단 이 사건의 발단은 올해 7월초 영국 국립 천문학 학회에 발표된 노섬브리아 대학의 발렌타나 자르코바 교수(Professor Valentina Zharkova, from Northumbria University)가 발표한 "Prediction of Solar Activity from Solar Background Magnetic Field Variations in Cycles 21-23" 이라는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처럼 태양 활동 중에서 특히 흑점에 영향을 주는 백그라운드 자기장(solar background magnetic field (SBMF)) 변화를 예측한 논문이죠.
그런데 나중에 문제가 커지자 자르코바 교수도 언급했듯이 이 논문에는 기후(climate)나 미니 빙하기(mini ice age)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 내용은 앞으로 올 태양 주기인 cycle 25 와 cycle 26에 solar background magnetic field (SBMF)이 감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죠. 진짜로 감소할지는 그 때가 되봐야 알겠지만,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내용입니다.
문제가 된 것은 이를 외신들이 잘못 보도하면서입니다. 영국 텔레그래프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The earth is 15 years from a "mini ice-age" that will cause bitterly cold winters..... (지구가 15년 후에 미니 빙하기에 들어가.... )
기사 보기 : http://www.telegraph.co.uk/news/science/11733369/Earth-heading-for-mini-ice-age-within-15-years.html
논문 내용에는 전혀 없는 새로운 예측이 들어간 셈인데, 기사 하나가 나가자 비슷한 기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게 됩니다. 과연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요?
- 위키피디아가 잘못했다?
사건이 커지자 자르코바 교수는 USA to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In the press release, we didn't say anything about climate change. My guess is when they heard about Maunder minimum, they used Wikipedia or something to find out more about it." (우리는 보도 자료에서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그들(기자들)이 마운더 극소기에 대해서 위키피디아나 혹은 다른 소스를 찾아본 것 같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팀이 쓴 논문에는 미니 빙하기나 기후 변화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언론 기사가 나갔을때 누구보다 놀랐던 사람이 아마도 그녀 자신일 것이라고 하네요. (No one is more surprised than Valentina Zharkova that her research prompted a worldwide media storm over the next ice age. That's because her research never even mentioned an ice age.)
기사 보기 : http://www.usatoday.com/story/news/nation/2015/07/16/scientists-dispute-ice-age-warnings/30257409/
만약 기자들이 결백하다면 문제는 위키피디아에 있는 것일까요? 위키피디아는 집단 지성의 승리라고 불리고 있으나 사실 잘못된 내용들도 적지 않은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만큼 잘못된 내용을 적어놓을 수도 있죠.
여기에 흥미를 느끼자 해당 페이지를 검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위키피디아의 마운더 극소기 부분을 참고해보죠.
위키피디아의 마운더 극소기 이야기를 보면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The Maunder Minimum roughly coincided with the middle part of the Little Ice Age, during which Europe and North America experienced colder than average temperatures. Whether there is a causal relationship, however, is still controversial, as no convincing mechanism for the solar activity to produce cold temperatures has been proposed,[10] and the current best hypothesis for the cause of the Little Ice Age is that is was the result of volcanic action.[11][12] The onset of the Little Ice Age also occurred well before the beginning of the Maunder minimum.[11]
위키피디아에도 마운더 극소기와 북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1300 - 1850년 (길게 보면 1850년까지) 있었던 미니 빙하기 사이의 인과 관계는 논란이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운더 극소기 자체가 미니 빙하기 보다 뒤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설령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실제로는 화산 활동 같은 다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그래프 (위키피디아 참조)만 봐도 위키피디아는 결백(?)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운더 극소기는 미니 빙하기로 불렸던 시기보다 훨씬 뒤에 나타납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참조한 마운더 극소기와 미니 빙하기 Comparison of group sunspot numbers (top), Central England Temperature (CET) observations (middle) and reconstructions and modeling of Northern Hemisphere Temperatures (NHT). The CET in red are summer averages (for June, July and August) and in blue winter averages (for December of previous year, January and February). NHT in grey is the distribution from basket of paleoclimate reconstructions (darker grey showing higher probability values) and in red are from model simulations that account for solar and volcanic variations. By way of comparison, on the same scales the anomaly for modern data (after 31 December 1999) for summer CET is +0.65oC, for winter CET is +1.34oC, and for NHT is +1.08oC. Sunspot data are as in supplementary data to [7] and Central England Temperature data are as published by the UK Met Office [8] The NHT data are described in box TS.5, Figure 1 of the IPCC AR5 report of Working Group 1.[9])
- 언론보도는 왜 잘못되었을까?
연구자도 잘못이 없고 위키피디아도 결백하다면 이제 용의자는 하나 밖에 남지 않습니다. 바로 기자들이죠. 아마도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랬을수도 있고 뭔가 특종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The Conservation 의 마이클 브라운(Michael J. I. Brown)은 어쩌면 자르코바 교수가 사적인 인터뷰에서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언급을 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연구자도 완전 결백한 건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연구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죠.
아무튼 이런 잘못된 보도가 나간 것은 전문 지식이 부족한 기자들이 빠르게 기사를 써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도 논문 초록이라도 한번 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이번 사태에서도 다시 입증된 셈이죠.
사실 기자들은 바보가 절대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고 여유있게 기사를 쓰면 얼마든지 정확한 보도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충분치 않죠. 신속 정확한 보도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 아니라 신속성입니다. 정확한 내용의 보도라도 이미 이슈가 지난 기사는 누구도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문 지식이 좀 필요한 내용이라면 독자도 대부분 진위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잘못 기사가 나가도 문제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문제를 감안하면 이와 비슷한 사태는 이전부터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좋은 사례라면 바로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 http://blog.naver.com/jjy0501/100159921861 참조) 였을 것입니다. 역시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언론과 대중의 오해가 돋보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 사족: 그러면 2030년에 태양 극소기가 오면 미니 빙하기는 오지 않을까?
하지만 2030년대에 진짜 태양 활동 극소기가 올지도 모르고 미니 빙하기가 올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마운더 극소기가 다시와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solar background magnetic field (SBMF)이 감소한다고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가 극적으로 감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점은 지구가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데 중요합니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양이 극적으로 변한다면 지구가 빙하기와 간빙기를 수백년 주기로 겪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의 빙하기는 태양 활동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요인 (지구의 공전궤도, 자전축, 그리고 대륙의 위치) 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자르코바 교수는 1997년 발표한 논문에서 마운더 극소기에 태양밝기의 변화는 3W/㎡ 이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보다도 더 작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지구에 도달하는 복사 강제력으로 보면 0.5W/㎡ 이하입니다. 지구는 구형인데다 밤인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산화탄소에 의한 복사 강제력 증가는 이보다 훨신 큽니다. 지금까지만 거의 2W/㎡ 정도이고 앞으로는 이보다 더 커질 것입니다. 물론 태양 극소기가 다시 오면 온도 상승은 좀 주춤하겠지만, 이를 상쇄하기에는 어림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최소한 미니 빙하기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것이죠.
- 결론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와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제나 내용은 달라지더라도 언론 보도가 심각하게 오류가 있는 내용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위험성이 있다는 이야기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 내용이 여전히 더 많습니다)
일단 언론은 속보와 화제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정확성을 잃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만, 더 문제를 심화시키는 건 사실일 것입니다. 실시간으로 검색어가 바뀌는 세상에선 클릭 한번을 유도하기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다는 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실제로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나 혹은 과학 언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상당한 과학적인 소양를 갖춘 기자나 독자가 이전보다 많아졌다는 것도 희망을 가지게 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올바른 과학 저널리즘을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 역시 여기에 동참할 계획이고 말이죠.
마지막으로 중요한 부분은 바로 소통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해도 인간인 이상 실수는 존재합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이런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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